스즈키 유이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
도서제공리뷰
범죄 하나를 끝낸 뒤 도이치는 거실까지 걸어갔다. 바로 지금 망각의 강으로 흘러가려 하는 꿈의 실감과 여태껏 경험한적 없는 범행의 둔탁한 감촉이 뒤섞여 자유가 주는 가벼움과 범죄에서 오는 무거움이 그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요동치는 심정을 어찌할 수 없어서 거의 기어오르듯이 겨우 소파에 기대어 앉았다. 지금 시각은 3시 22분 혹은 3시 42분. 평소라면 어느 쪽이든 상관없을 테지만 어째서인지 그때만큼은 둘 중 어느 쪽인지 공연히 신경 쓰였다.
-122p
인용과 도용에 대한 사건사고는 문학이 존재하는 한 끝없이 이어질 것이다. 나는 텍스트 기억력이 없어서 인용과 마찬가지로 도용 역시 ‘하고 싶어도 못 한다’고 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실은 그렇지도 않다. 나의 생각과 ‘어디선가 읽은’ 생각을 칼같이 나눌 수 없기 때문이다. 내 생각이라고 생각해서 썼는데 (물론 텍스트 기억력이 0에 수렴하기에 워딩은 전혀 다를 수밖에 없지만) 나중에 제3자의 서평을 통해 ‘이미 원작자가 있었음‘을 발견했던 적도 있다.
더 나쁜 건 ‘하지 않은 말’이라는 확신이 없는 것이다. 내가 ’미움도 사랑이다‘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는 뚜렷한 증거(?)가 없다. 내가 덕질하는 작가가 이 말을 하지 않았다는 확신도 없다고 하자. 누가 이 문장을 인용하면나 출처를 나 또는 그 작가라고 명시했을 때, 내게 그 말을 (나 또는 그가) 한 기억이 없다면 ’그거 나(그 사람) 아니야‘라고 말해야 하는데 그럴 수 없다. 내가 한 말(특히 가십이 될 수 있는 내밀한 관계의 대화가 나로 인해 누설되었을 경우)의 정확한 주술관계를 기억하지 못하는 건 치명적이다. 주기적으로 은둔하고 싶어지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큰 사건을 몇번 겪고 나서 말과 사람을 조심하지만 태생적으로 말도 많고 사람도 많고 하여간, 쉽지 않다.) 비밀이 붙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은데(작가로써는 불리하겠군.) 뭘 해도 비밀이 붙는 건 운명이려니. (하여 중요하지 않은 글이라해도 실존인물은 일단 가명처리하고 본다.)
시카리 날조사건을 품은 도이치의 명언찾기 프로젝트는 문학덕후 한정 스릴러(그런데 이 세계에 조금만 발을 들여놓아도 너무 자주 접하게 되는)인 한편 덕후들에 대한 덕후의 공개고백 같은 소설이다. 한국에서 주목받기 힘든 일본 신인작가의 소설이 단기간에 유행책이 된 것도, ’고비를 넘기면 꿀잼‘이라는 포인트가 리뷰에 자주 등장하는 것도 읽고 나면 전부 이해가 된다. 제목 또는 연관키워드가 기억나지 않는 작자 미상의 민담을 찾고 있던 중이라(어떤 작품은 책을 읽던 중, 이 책과는 별개의 사건으로 떠올랐지만) 도이치에게 과몰입을 안할 수가 없다.
시카리를 개인적으로 존경하고 아끼는 자신조차 그러한데, 시카리를 이토록 미워하는 이신은 몇십 년이나 눈에 불을 켜고 시카리의 책을 읽어왔단 말인가? 그건 분명 일종의 사랑이 아닌가? -179p
자신의 명언 찾기는 결코 의미 없는 짓이 아니었다. 모든 것은 반드시 이어져 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은 무언가로부터 생겨났고, 우리는 아직 살아 있으니까. -212p
이 줄거리는 한마디로 ’어느 독문학자의 괴테 명언 출처 찾기 여정‘이라고도 요약할 수 있는데, 이렇게만 들으면 다소 심심할 듯한 작품이 두 번, 세 번 반복해서 읽을수록 점점 더 재미있어지니 참 신기한 일이다(나는 지금까지 이 소설을 여섯 번쯤 통독했고, 그때마다 새로운 요소와 의미를 발견했다). 모두가 알다시피 세상에는 수많은 책, 수많은 명언, 수많은 말이 있다. 작중 ’선생님(괴테)‘의 말처럼 ”모든 것은 이미 말해졌고, 우리는 기껏해야 그것을 다른 형식이나 표현으로 되풀이할 뿐“인지도 모른다.
-243p, 옮긴이의 말
역자의 말대로 반복해서 읽어보고 싶은 작품이다. 소설 속 다양한 실존인물이 진입장벽으로 느껴질수도 있지만 다독가의 텍스트를 읽다보면 고유명사를 적당히 통독하는 요령이 생긴다. (작품 속 도이치의 자기반성 참고) 혹은 그런 배경지식 자체를 즐기는 방법도 있다. 책덕후라면 후자를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