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셀 에메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
사람들은 경이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을 아이들이나 하는 일로 여기기가 십상이다. 아이들이 자라서 어른이 되면 현실과 단절하는 능력을 잃게 된다고 흔히들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어른들 역시 경이로운 것을 대단히 좋아하는 경향을 보인다. 기담은 어른들을 괴롭히는 어떤 형이상학적인 불안에 대해 때로는 친절하고 때로는 비통한 해답을 제공해준다.
-185p, 역자 후기(마르셀 에메, <프랑스의 환희>
1946 크리스마스 호에서 재인용)
환상문학은 때때로 낭만적이기도 하지만 대체로 풍자적이다. 현실의 쓰라림에 위트를 더해, 꿈과 희망의 나라를 잠시나마 맛볼 수 있는 반투명한 다리를 놓아주는 듯하다. 일부는 동화나 아동문학으로 인식되지만 어른을 위한 환상문학 또한 다양하다. 마술적 사실주의(에는 대하소설에 못지 않게 19금 썰이 등장하고)와 이미 수없이 영상화된 (본격) 장르(로의) 판타지(마찬가지이며) 그리고 환상적 요소가 짙은 과학소설(역시 초기엔 낭만주의 계열이었다고 한다)을 읽다보면 허구의 세계를 통해 상상력은 물론 현실적 사고의 지평도 넓어지는 걸 느낀다.
정통 판타지는 잘 몰라도 베르나르 베르베르, 로알드 달 등의 작품을 읽었던 젊은 시절 (현실보다) 청량한 (독서경험이라는) 기억을 품고 있다. 내가 설계한 ‘통과 가능한 벽’은 <기묘한 이야기>의 그것과 유사하고(얼핏 과학소설로 보일 수 있으나 괴담에 더 가까운 설정) 배경이 파리였을 뿐이지만 <아트 하이딩 인 파리>에 실린 마르셀 에메 광장 이야기를 보고 흥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의 신남은 누북(noobook)에서 제작한 ‘일십백북페어’ 브이로그에서도 볼 수 있다.
<아트 하이딩 인 파리>를 통독하고 (다이소) 지나가는 길에 들른 서점에서 문제의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를 발견해버렸다. 표제작은 그날 밤 아무벤치에 앉아 읽어버릴 정도로 호기심을 자극했고 그주 내내 한편씩 읽으며 기력을 충전했다. 소설의 현실도피적 기능이 특히 필요할 때, 마음 잡고 긴 소설을 읽기엔 부담스러울 때 이만한 책이 없겠다는 생각도 든다.
표제작도 해피엔딩은 아니다. 심지어 ‘생존 시간 카드’와 ‘칠십 리 장화’는 기담의 형태로 현실을 날카롭게 고발하는 풍자극이다. 특히 ‘생존 시간 카드’는 평행우주나 가상의 미래를 통해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는 과학소설(디스토피아)에 가까운 매력이 있다. 이 세계관을 확장할 무언가를 더 만나고 싶다.
그러나 특별한 능력을 지닌 사람들은 하찮은 일에 자기 능력을 사용하는 것에 이내 불만을 느끼게 마련이다. 게다가 벽을 통과하는 행위가 그 자체로 하나의 목적이 될 수는 없었다. 그것은 모험의 출발이며, 후속과 발전, 요컨대 어떤 보람을 요구하는 행동이다. 뒤티유일은 그 점을 아주 분명히 깨달았다. 그는 자기 안에서 확대의 욕구, 자기 능력을 온전히 발휘하고 자기 한계를 뛰어넘고 싶은 열망이 새록새록 더해가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22p,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
자기 생존 시간 배급표를 팔겠다는 그의 제안은 나를 몹시 난처하게 만들었다. 나 자신이 마치 동화에 나오는 식인귀나 사람을 공물로 받았다는 옛날이야기 속의 괴물처럼 느껴졌다. -55p, 생존 시간 카드
제르멘은 오랜 경험을 통해 한 가지 깨달은 것이 있었다. 프리올라의 어머니처럼 우월한 사회적 조건에 있는 부인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가난한 여자들과 자기들을 대등하게 놓는 상황에 처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라메 거리에서 남편과 함께 식료품점을 운영하고 있는 이 여자는 사회적 체면이 반듯하게 서지 않는 것에 신경을 쓰고 있는 거였다. 미혼모인 것이 너무나 뻔한 여자와 같은 배를 타게 되었다는 사실에 그녀의 마음에 자기의 사회적 지위에 대한 독한 회의가 일고 있는 게 분명했다.
-124p, 칠십 리 장화
책과 책 사이를 연결하는 이런 발견은 짜릿하다. 쌓아둔 책더미에서 의도치 않게 밀려나는 책도 있지만 거기 쌓여있다보면 또 언젠가 연결된 책이 들어와 존재감을 뽐낼 순간이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