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살아온 듯한 이야기

카멜 다우드 <후리>

by 산책덕후 한국언니

도서제공리뷰



망각을 강요당한 역사인 알제리 내전의 ‘살아있는 증거’이자 역사 그 자체인 오브는 그녀에게 허락된 것 이상으로 독립적인 사업을 하는 동안 이웃하고 있는 모스크의 이맘과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몸에 남은 내전의 흔적은 일종의 통행권으로 작용하기도 하지만 그녀를 마주하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심연을 들여다보듯 어색한 순간을 갖게 된다. 가족이 몰살당한 오브를 거둔 양모 하디자가 오브의 목소리를 되찾으려는 시도를 하느라 자리를 비운 사이, 오브는 뱃속에 태어날 수 없는 아이를 품고 이드 당일 그 모든 일이 일어난 범죄 현장으로 여행을 떠난다.


​도로에서 몇가지 사건을 겪고 또 다른 생존자를 만난 상태로 2부가 시작된다. 오브가 후리에게 한 것처럼 아이사는 오브에게 잊기를 강요당한 내전 이야기를 끊임없이 쏟아낸다. (이에 대한 오브의 불편함은 괄호 속에 담겨 다시 후리에게, 독자에게 그대로 전달된다.) 고향 마을에 도착한 오브에게 함라의 증언이 닿고, 오브는 당나귀 형제에 의해 다시 한 번 제물이 될 위기에 처한다. 삶의 끝에서 오브는 결국 이곳으로 돌아온 이유와 살아남아야 하는 이유를 깨닫는다. 목숨이 반만 남은 것이 아니라 두개였고, 후리를 품은 뒤로 세개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종교에 따른 세부사항에 조금만 적응하면 익숙하다못해 이미 살아온 듯한 이야기였다. 날짜가 충격적일 정도로 최근이지만 수차례 대규모 민간인 학살이 일어났던 20세기 한반도가 자연스럽게 겹쳐진다. 그래서 증언 문학이 불러오는 고통과 침잠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거리두기가 가능한 쪽은 차라리 디스토피아일 것이다.


진실을 알기 위해 애써오는 동안 역사적으로 고립된 특정 지역이라는 한계를 느껴본 적이 있다면 마음을 단단히 먹고 읽기를 시작하기 바란다. 이 소설만으로 충분해질 수 없겠지만, 박혜진 평론가의 말처럼 이 소설을 모른다면 더욱 충분하지 않다.




난 이제 떠돌이, 부랑자다. 처녀와 영원한 첫날밤을 꿈꾸는 이 나라 남자들의 이상적인 먹잇감. 여자가 아버지, 형제, 남편, 심지어 아들에게도 속하지 않을 때 사람들은 그를 ‘떠돌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남자들은 그녀를 빈터처럼 말한다. 한 달에 한 번 피 흘리는 자산처럼, 땅에서 파낸 동전처럼, 전리품처럼.

-351p


그냥 내가 죽었어야 했는지도 몰라. 그럼 저 아이에게 수치심이 아닌 새로운 삶을 줬을 텐데. 하지만 하느님께선 우리로선 알 수 없는 의도를 가지고 계셔요. 결코 용서받지 못하는 테러리스트인 내가 바라는 건 이게 전부예요. 완전히 잊는 것, 아니면 완전히 기억하는 것. 완전히 밤, 아니면 완전히 낮. 우릴 영원히 잊거나, 아니면 모조리 기억하길 원해요.

-428p


왜 같은 말이 끊임없이 반복되는가? 그만큼 아프기 때문이다. 그만큼 끔찍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말해도 그 상처가 낫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누구와도 공유되지 않기 때문이다. 병적일 정도로, 강박적일 정도로 외쳐 대는 그들의 증언을 우리는 결코 편히, 관대하게 들어 줄 능력이 없을지도 모른다. 증언 문학의 아이러니와 그 비극성은 이렇게 암묵적으로 계시된다. -535p, 옮긴이의 말(류재화)



본국의 만행을 폭로한 다른 국가의 다른 작가들과 마찬가지로 카멜 다우드 역시 이 작품으로 인해 블랙리스트가 되었다. 그에게 국제 체포영장이 발부되었고 알제리에서는 그의 책이 금서가 되었다. 지금 한국어로 이 작품을 읽는 것은 당사자들에게조차 허락되지 못한 권리이자 소외당한 이를 보듬어야 하는 문학독자로서의 의무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