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뉴스

<레베카 스톤> 34화

(전편에서 계속됨)



미나는 거미가 된 마리의 한을 짐작할 수 없었다. 메리를 통해 조르주와 폴이 그림 속 거미가 사라진 것을 발견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르네가 지하실을 털었다는 걸 짐작할 뿐이었다. 르네 본인을 위해서라도 지하실의 존재를 모르는 게 나았을텐데. 이제와서 그 모든 비밀이 무슨 소용이 있겠냐마는 급한 건 대책이었다. 르네는 미나가 차단기 속에 숨겨둔 열쇠를 찾아서 갖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애초에 메리는 지하실 근처에 호기심이 없었기에 비상열쇠의 존재도 몰랐다.


-서점에서 달라진 건 그것 뿐이야? 차단기 속에 열쇠나 다른 물건이 있는지 꼼꼼하게 확인해봐.


이제 미나는 가능한 빠른 시간 안에 자기 서점을 직접 확인해야 한다. 아기가 운다. 폰을 들고 아기방으로 가면서 베키의 마지막 문자를 다시 확인한다. 아기방 문을 열자 울음소리가 그친다. 지우가 먼저 와있었다.


“나 파리 가야할 듯.”

“어차피 영혼은 파리에 있잖아. 급한 일 끝나면 다시 오든가. 나 모레부터 휴가야. 앨리스는 엄마한테 이틀만 부탁할게.”

“미안. 너도 좀 쉬어야 하는데.”

“어차피 올해는 앨리스 데리고 여행갈까 생각했는데 누나 빼고 가도 되면 그렇게 할까?”

“그래주면 나는 고맙지.”


지우에게 안겨서 함박웃음을 짓는 앨리스와 볼을 비비고 미나는 아기방에서 나왔다. 지우는 아기와의 시간을 좋아했다. 지우가 앨리스를 좋아하고 앨리스도 지우를 좋아하니 한동안 같이 살아도 괜찮을 것이다. 다만 미나는 이제 파리에 가면 또 언제 돌아올 수 있을지 모른다. 미나의 일이라는 것이 그렇다.


도어락의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들리더니 애정이 들어왔다. 어제는 분식집이 쉬는 날이라 친구들과 1박 2일로 강원도에 다녀왔다. 집에 반찬도 많고 미나와 앨리스도 있지만 애정은 지우와 아침식사를 하는 게 낙이라 일찍 왔다. 그래야 분식집 오픈 준비를 하기 전에 자신의 식사도 챙길 수 있었다. 미나는 아침에 아기 분유만 챙기고 다시 자거나 잠이 안 와도 과일만 먹는다. 애정은 자신과 지우의 출근을 위해 쉬는 날에도 모닝루틴을 지키는 게 편했다.


“저는 오늘 파리에 가야 해요.”

“이제 가면 언제 와. 아기는 두고 갈거지?”

“지우가 맡아준대요.”


문소리와 말소리를 듣고 아기방에서 나온 지우가 애정의 가방들을 거실로 옮겼다. 애정은 냉장고 앞으로 이동했고 미나와 지우는 식탁까지만 따라왔다.


“앉어. 정신 사나워.”


미나와 지우는 식탁에 앉아서 바나나를 한 개씩 들고 껍질을 벗겼다.


“누나 비행기 시간 보고 출발하기 전에 엄마가 와서 애기 좀 봐주세요. 저 퇴근하면 제가 볼게요.”

“미나는 짐도 싸고 해야 하는데 내가 집에 있을게. 이러려고 사장하는 거지. 안 그러냐?”

“제가 서점을 비웠더니 사고가 생겼어요, 엄마. 엄마는 다른 사람한테 가게 맡기지 마.”

“안 맡겨. 거기가 어디라고 맡겨. 어제 쉬는 날이라 ‘금일휴업’ 붙어 있으니까 그냥 안 떼면 돼.”


애정은 그새 밥과 국을 데워서 상을 차렸다. 하루종일 상을 차리는 게 일이지만 집에서 차리는 상은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으로 자식들을 먹이는 것이라 힘을 써도 힘이 났다. 게다가 미나가 파리로 돌아가야 한다면 올해 미나와 먹는 마지막 밥이 될지도 모른다. 애정은 아침에 꺼내지 않던 미나 전용 반찬을 꺼내고 냉동실에서 반건조 생선도 꺼내 구웠다.


“미나도 오늘은 밥 먹자.”

“네, 엄마. 그런데 표는 검색 좀 할게요.”


미나는 국을 떠 먹으면서 항공사에 접속했다. 아기를 낳고 서울과 파리를 두어번 왕복하긴 했으나 작년까지는 서울보다 뉴욕에 자주 갔었기에 대한항공 마일리지는 별로 쌓이지 않았다. 그보다도 시간이 문제였다. 오늘 안에 도착하려면 지금 당장 공항에 가야하는데 그러자니 마음이 너무 복잡했다. 오후에 출발해서 내일 아침에 도착하는 경유편을 예약해도 집에서는 두 시간 내에 출발해야 했다.


“일단 밥 먹고 다시 해.”


멘탈이 나가는 소리를 들었는지 지우가 휴대폰을 가져가서 소파 앞 테이블에 놓고 왔다.




영영 오지 않을 것 같던 수요일이 왔다. 줄리앙의 생사는 확인했으나 밤새 깨어나길 기다리기엔 너무 피곤했고 명분도 없었기에 베키에게 시간표 얘기만 해주고 곯아떨어졌던 헨리크는 새벽같이 일어나 마르셀의 연락이 없었는지 확인했다.


이럴때 미나 이모는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했다. 노르웨이어로 Inter nytt er godt nytt인데 한국어로는 굿보다 해피. 어쩐지 미나 이모는 말이 없을 때 더 행복한 상태에 가까웠던 기억이 난다. 한국 사람들은 마을잔치급 자랑이 아니라면 동네방네 떠들어봐야 좀 모자란 사람처럼 보인다는 이야기도 들은 것 같았다. 그래서 베키나 미나 이모는 마르셀 선생님이나 조르주 삼촌처럼 비밀이 많은 사람들과 죽이 잘 맞는 걸까. 미나 이모도 비밀이 많고 이제 베키마저 비밀이 많아졌겠지만 지금까지 베키는 헨리크와 비밀을 공유하는 사이였다. 헨리크는 가슴 한 쪽이 아려왔다. 어쨌든 아무 연락이 없는 걸 보니 줄리앙은 살아있을 것이다. 해피한 소식이다.


아래층은 아직 조용하다. 헨리크가 주방에 있는 아침식사 테이블에 도착할 때까지 아무도 아무런 소리를 내지 않았다. 제이미 자매들은 자고 있겠지만 메러디스 할머니까지 늦잠을 주무시다니. 헨리크는 욕실에 두고 잊은 휴대폰을 찾으러 다시 올라갔다. 가는 길에 벽시계가 일곱시 반을 막 지나고 있는 걸 발견했다. 할머니가 이 시간까지 주무신 적은 없었다. 이건 굿뉴스가 아닌 것 같은데? 어젠 할머니도 피곤하셨을테고, 오늘은 하숙생들도 수업을 못할 것 같으니 알람을 꺼두신걸까.


“넌 어제 늦게 잤는데 더 쉬지 그러니.”


휴대폰을 찾아서 다니 내려오는 동안, 할머니는 주방에서 물주전자를 올리고 있었다. 아직도 주무시는 건 아니었다. 할머니는 그저 아침식사 준비를 아주 천천히 하고 계실 뿐.


“할머니도 연락 못 받으셨죠?”

“응. 밤새 아무 일 없었을거다. 계란 먹을래?”

“네.”


헨리크는 허기보다 체력을 생각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식량을 남김없이 먹으리라 다짐했다. 그래도 베키에겐 소식이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미나 이모 오는 중. 오늘 밤 도착한대


베키를 떠올리자 베키에게 문자가 왔다. 이제 나에게도 초능력이 생긴건가? 헨리크는 순간 들떴지만 계속 들떠있기에는 증거가 부족했다. 여태 줄리앙과 마르셀을 생각했는데, 그쪽에서는 아무런 연락이 오지 않은 것이다. 할머니의 반응을 봤을 때 당사자들을 제외하면 아무도 모를 가능성이 컸다.


-줄리앙은?


헨리크는 무엇에 떠밀리듯 베키에게도 질문할 수 밖에 없었다. 베키가 밤새 예지몽이라도 꾼게 아니라면 같은 입장이겠지만. 그보다도 오늘 첫 문자가 미나 이모로 시작하는 걸 보면 줄리앙에 대한 업데이트가 없음이 1000% 확실함에도.




베키는 자신이 자는 동안 출발 소식을 참았을 이모를 상상해봤다. 아침 6시에 이모가 ‘이륙한다’고 보낸 문자를 보고 동봉한 사진을 확인했더니 기내에서 촬영한 14시 탑승권이었다. 도착하려면 꼬박 하루를 기다려야겠지만 지금 이 순간 이모는 말그대로 ‘날아서 오는’ 중이다. 서점에 일이 생긴 모양이다.


어제 베키가 줄리앙의 시간표를 보내줬을때 이모는 ‘폴과 조르주에게 확인해야 하는데 거기 밤이지?’라는 질문 이후로 연락이 없었다. 베키는 잘 시간이 이미 지났기에 폴이 혼날까봐 연락을 망설였고 망설이다 늦게 보낸 문자를 폴이 확인하지 못했을거라 짐작했다. 이모에게는 ‘폴에게 확인중’이라고만 보냈고 베키 역시 잠들었기 때문에 그 이후로 연락을 하지 못했다.


-선생님은 좀 어떠세요? 미나 이모가 오고 있어요.


헨리크의 질문을 계기로 베키 역시 줄리앙과 다른 사람들이 궁금해졌다. 이모가 마르셀 선생님에게도 연락을 했으려나. 파리에 베키가 있고, 베키에게 연락을 했으니 소문을 내는 건 베키의 재량인가. 베키는 이모에 대한 정보를 가족 외엔 어느 정도 통제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헨리크, 마르셀에게는 빨리 알려줘야 한다. 하지만 조르주와 폴에게는 직접 만나서 전달해야겠다. 폴은 아직 자고 있으니까 연락이 없는 거겠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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