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행

<레베카 스톤> 35화

by 산책덕후 한국언니

(전편에서 계속됨)



조르주는 혼자 남겨진 것도 모르고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미나처럼 조르주도 숙면이 필수였다. 어쩔 수 없이 잠을 설치는 날이 많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마음 편히 잘 수 없는 날이라도 피곤해서 곯아떨어지면 십 분이나 열 시간이 순식간에 사라져버리는 것이 차라리 다행이다. 아직 충분히 잠들지 못했는데, 다시 행동해야 할 시간이 다가오는 것만큼 초조한 일도 없다. 삶에 등장하는 다양한 초조함이 있지만 잠을 충분히 잔 후에는 그 어떤 불안과 긴장도 다르게 읽힌다. 보다 해석가능한 방향으로.


폴은 잠에서 완전히 깨어났다. 줄리앙은 마르셀과, 르네는 조르주와 있어야 한다. 그러나 폴이 자기 방에 와서 누웠을 때 무언가 허전한 느낌이 들었다. 베키와 떨어져 있기 때문일까. 정작 베키가 보낸 문자를 확인할 생각은 못했다. 폴은 이불 속에서 이 느낌을 되새기며 잠이 달아나는 것을 지켜봤다. 몸에서 나른함이 빠져나가고 있었다. 폴은 아직 억지로 자는 척을 해본 적은 없었다. 일어나기 싫었던 적도 없고, 움직이기 귀찮았던 적도 없었다. 한밤중에 완전히 깨어있어 본 적도 없었다. 이 시간에 깨어있던 건 엄마와 게임을 하거나 아빠와 영화를 보다가 잘 시간을 놓쳤을 때 뿐이었다. 엄마와 아빠가 자러 가기 전에 폴은 먼저 잠들어서 눈을 떠보면 아침이었거나 오늘처럼 비슷한 시각에 각자의 방으로 헤어지는 날이 대부분이었다. 폴은 자기 방에 자러 와서 또 무언가를 할 정도로 힘이 넘치는 아이가 아니었다.


거실에서 무언가가, 누군가가 움직이고 있다. 조용하지만 충분히 조심하지 않고 있는 살짝 초조한 발소리, 테이블에 와인잔을 놓는 소리, 병에 남아있던 와인을 따르는 소리. 엄마는 아까 위스키를 마시고 있었다. 폴과 함께 집에 온 아빠도 위스키 한 잔을 들고 드레스룸으로 들어갔다. 그 다음은 기억나지 않는다. 폴이 씻고 와서 잠을 청했을 때 어수선한 분위기가 있었지만 곧 멍해졌다가, 어떤 기운과 함께 잠이 달아났었다. 거미가 엄마를 잡으러 온 걸까.




서점에 불이 켜진 걸 보고 르네는 자신이 방금 돌아나온 모퉁이 뒤로 숨었다. ‘저건 위장이야.’라고 머리는 말하지만 몸은 긴장했다. 서점 안에 메리가 있다면 불을 켜두었기 때문에라도 밖에서 무슨 일이 있는지 알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조명의 효과는 엄청났다. 서점에 가까워질수록 CCTV에 얼굴이 잡힐 가능성이 커지는데다, 무엇보다도 서점에 들어가려는 시도를 남기게 된다. 서점이 영업준비중이라는 데 따르는 무의식적 두려움도 있었다. 그래봐야 메리일텐데, 그게 하필 메리인 것이다. 르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너무 잘 알고 있을 단 한 사람.


르네는 서점이 있는 블록을 끼고 측면에서 접근하기 위해 경로를 재탐색했다. 왔던 길로 돌아가서 크게 한 블록을 돌아온 다음, 가장 환한 출입구의 좌측에 있는 작고 막다른 골목 속으로 들어가 숨을 고른 뒤 다시 주변을 살펴볼 것이다. 계획대로 진입경로를 수정해 서점의 좌측 벽을 타고 창문 옆에 섰을 때, 서점의 불을 꺼져있었다. 르네 침입 사건으로 출동한 메리가 이제야 퇴근한 걸까, 그때 불을 켜두고 갔다가 다시 출근한 걸까. 저 조명에 타이머 기능을 맞추어둔 것일지도 모른다. 시간을 확인했다. 휴대폰을 포함한 전자기기는 가져오지 않았다. 르네의 손목 시계 바늘이 아침 여섯 시 일분을 지나고 있었다.




모퉁이를 돌자마자 뒤돌아서 왔던 길로 되돌아오는 르네를 보고 폴은 옆에 주차되어 있는 자동차 뒤로 숨었다. 르네는 같은 구역을 빙글빙글 돌아 다시 서점 근처로 갔다. 폴 역시 급하게 르네의 뒤를 밟으러 집을 나섰기에 휴대폰을 챙기지 못했다.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갑자기 무슨 일이 생겨도 아빠나 베키에게 연락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자 손에 땀이 났다. 지금까지는 ‘아직 내 엄마인’ 엄마를 몰래 따라왔을 뿐이라, 들켜도 그만이었다. 엄마가 몰래 나왔으니 엄마는 물론 아빠도 폴을 혼낼 수 있는 구실이 없다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엄마가 이상해진 건 서점에서 갑자기 사라진 후였기 때문에 엄마가 서점으로 돌아온 지금 불길함도 돌아왔다.


분명 엄마는 거미를 꺼내주었을 것이다. 엄마가 어떻게 거미를 탈출시켰는지 아빠나 메리 누나는 모르는 눈치였다. 거미 자신은 탈출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엄마는 그 짧은 시간에 그런 방법까지 알아낼 정도로 신통하지 않다. 폴은 자격지심이라는 단어는 몰랐어도 엄마가 미나 이모를 엄청 의식한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미나 이모가 파리에 있을 땐 어디든 폴을 데리고 다녔다. 역시 폴은 전리품이라는 단어는 형태만 알았을 뿐이어도 자신이 엄마에게 어떤 의미인지는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뉴올리언스나 마이애미에서 폴이 아무리 귀여움을 받아도 엄마는 그들의 칭찬에 만족하지 못했다. 폴을 만난 미나 이모가 너무도 반가워하면서 살짝 슬퍼하는 모습을 보고서야 엄마는 행복해졌다. 마치 이 순간을 위해 폴이 존재한다는 듯이.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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