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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덕후 한국언니 Mar 23. 2023

뒤집힌 세계와 요상한 녀석들

넷플릭스 오리지널 <기묘한 이야기>

시즌 4의 마지막 에피소드가 좀 늘어지긴 했다. 편의상 드라마로 분류하지만 시즌별 약 8시간짜리 영화 시리즈라고도 할 수 있는 <기묘한 이야기>의 시즌 1-3은 2년 전에도 봤었다. 뭐에 홀린 듯, 얼마나 열심히 그리고 빠르게 봤는지, 다른 OTT투어를 하는 동안 기억은 리셋이 되었다.


몇 안 되는 외출 때마다 전철역에서 시즌 4 광고를 봤는데, 보면 볼수록 의아했다. 한국인들은-나와 반대로-미국 영화와 한국 드라마를 선호한다. 덕후스러운 미국 드라마가 이렇게 대대적으로 광고를 한다고? 케이블 채널에서 방영 중인 <브루클린 나인-나인>의 광고를 비교적 저렴한(?) 심야버스 안의 스크린으로 내보내는 건 차라리 이해가 됐다.




넷플릭스에서 만들어 준 <기묘한 이야기> 마작 게임으로 배경음악과 등장인물을 복습해 봐도 히로인 일레븐(엘)과 더스틴의 외에는 기억이 안 났다. 다시 처음부터 볼 수밖에 없었다. 완전 재주행(몰아보기, 빈지왓칭; bingewatching)은 아니었고 식사 시간에만 20-30분씩, 하루에 한 편 정도 보느라 한참 걸렸다. 엘이 폭풍성장하는 시즌 3부터는 몰입도가 급상승했다. 없던 머리카락이 무럭무럭 자라는 걸 보면서, 그래 이 맛이야, 했는데 웬걸. 시즌 4에서 부녀가 삭발을 하는 것도 모자라 역대급으로 고생한다.


주인공 엘과 마이클, 윌을 포함한 호퍼-바이어스 가족이 컨퍼런스(!)와 지하감옥 등에서 따로 굴려지는 동안 본부인 호킨스에서는 진주인공 더스틴과 맥스, 루카스 남매와 누나 친구들이 활약한다. 특히 낸시와 전남친 스티브, 새 친구 로빈은 옛날 영화 <괴물>을 떠올리게 하는 전투신을 펼친다.


그보다 훨씬 옛날 배경인 <기묘한 이야기>는 80년대 호러 판타지 시조새 같은 영화들을 다양하게 오마주한 것 같지만, 나는 윌러네 막내 홀리보다도 어렸기 때문에 아무것도 알아볼 수가 없다. (그나마 알아보기만 하는 <고스터 버스터즈> 원작은 1984년에 나왔지만 21세기에 리메이크도 했고 패러디가 많다.) 판타지와 더불어 그때 그 시절 추억 소환용 드라마인데 당시 신생아였던 나로서는 이모 삼촌뻘인 캐릭터들이 자라나는 게 귀엽고 또 귀여울 뿐이다.




외동이 더스틴이 회개한 스티브와 펼치는 브로맨스가 귀엽다. 현실남매에서 전쟁의 주역으로 떠오르는 루카스와 에리카가 귀엽다. 여러 팀으로 헤어져서 진행된 시즌 4 러닝타임의 99%를 정신적 감응으로만 소통했지만, 빨리 감기로 소환하는 시즌3 시절의 엘과 맥스가 짜릿하게 귀엽다. 우리의 좀비보이는 처음부터 본인이나 주변인들 통해서 게이라는 힌트를 그렇게 주고 또 주는데도 공식적으로는 극 중에서도 아무도(?) 못 알아채고, 나는 대체 윌이 엘을 왜 저렇게 질투하나(관종인가?) 했었다.


윌이 엘과 마이크를, 정확하게는 본인이 짝사랑하는 마이크에게 엘과의 사랑을 포기하지 말라고 응원하면서 펑펑 우는 걸 보고서야 뒷북을 쳤다. 그의 말 못 할 소외감과 고독에 두배로 감염된 느낌이다. 미국인이라고 해도 퀴어감수성 떨어지는 일반인이 훨씬 많은 걸 감안하면, 그래서 윌 역할을 맡은 노아 슈나프가 무려 2023년(최근)에 커밍아웃을 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건 마이크에게는 반전일 수 있지만 관객에게는 제발 눈치 좀 채라고 떡밥을 뭉텅이로 던진 거라 스포일러가 아니다. (남다른 조나단과 엘은 이러한 형제의 성향을 눈치채고도 모른척하는 듯? 관련 암시는 아직도 못 찾아냈다.)


스티브의 <미스터 맘마> 패러디는 개그코드로 소비하지 않고 싶지만, 밈을 보면 웃을 수밖에 없다. 윌러 삼 남매의 아빠처럼 전형적인 그 시절 아빠가 있는 한편, 짐 호퍼처럼 딸에 한 맺힌 딸바보 아빠도 있다. 동생들 감독하는 역할에 고정된 스티브가 '왜 맨날 나만 애보기냐'라고 투정하지만, 그러면 안 될 이유는 또 뭔가. 옛날 아빠는 존재감이 없으니 그렇다 치고, 옛날 일진들이 나대지만 40년이 지난 현재 시점에서 이 복고풍 드라마가 핫한 이유는 사춘기 아이들의 심리를 현미경처럼 들여다보고 감정선을 적재적소에 배치했기 때문이다.




낸시와 조나단이 잘 나가는 스티브를 압도한 것도 한참 동생인 더스틴에게 져 주는 것도 스티브의 천성이 양심적이고 낸시와 동생들을 너무도 좋아했기에 가능하다. 스티브를 강타했던 쿨병이 시즌 4에서는 루카스에게 넘어갔지만, 시국이 시국인지라(저세상 괴물의 존재를 진심으로 믿고 엘과 과학동아리 팀을 지원하는 사람은 극소수이며 위급한 상황에서는 이들의 의리가 최우선이다.) 루카스는 이틀 만에 정신 차리고 덕후들과 맥스에게 돌아온다.


자기도 모르게 덕후들의 여왕이 돼버린 맥스와 엘은 서로의 존재가 어색했었는데(이런 설정 싫지만 현실적이긴 하다. 게다가 80년대.) 이들을 '다른 종족'으로 의식하기 시작한 남친들의 바보짓으로 급 친해진다. 로빈의 비밀은 스티브만 알지만 이들의 뒷이야기가 너무도 궁금하다.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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