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해’
그리고 옆에 누군가 서 있었다. 시계를 움켜쥐고 고개를 돌렸을 때, 그는 물끄러미 서서 자신을 바라보는 선생님의 환영을 마주했다.
거기서부터 그의 인생은 다시 채워진다.
그가 명명한 '중심'에는 두 가지 일면이 있다.
굳이 일일이 설명하기도 애매할 뿐더러 얘기해줄만한 사람도, 이유도 없었기 때문에 그는 꽤 오랫동안 그것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실상 창준을 만나기 전까지 다 알면서도 모르는 그런 애매한 상태를 유지했다. 머릿속에만 떠도는 '직감'같은 건 대체로 말로 표현했을 때 붕 뜬 헛소리처럼 들린다는 걸, 그는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언제나 가장 강력한 중심을 찾았다. 능력만큼이나 명확한 그 송곳은 작은 힘으로도 큰 것을 부수거나 깨는데 효과적이었다. 창준의 중심은 그의 중심과 엇비슷한 면이 있었다. 그녀라는 그림자를 겉돈다는 것. 치호의 경우 몸을 던진다면 창준은 주위만 맴돌며 몸을 사린다는 것. 결국 치호와 창준의 가장 중요한 시기는 구 년 전 그 시절에 머물러 있다는 것.
이수진 이라는 이름을 꺼낸 걸로 어느 정도 확신했다. 그 뒤로 몇 마디. 두 번째 만남에서 병원에 가 있는 찰나의 시간동안 파악은 끝났다.
창준은 회피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차마 그 과거의 시간을 버리지 못한 사람이었다. 어스름한 기억 또는 그 너머의 시간. 과거의 기억이 추억이라는 이름말고 다른 것으로 기억될 수 있는 점에 대해서는 치호가 더 잘 알았다.
어떤 시간을 겪었든 그 시간에 수진이 있었다. 그러니 그녀를 떨치기 힘들 것이었다.
중심이자 강한 결핍. 신창준은 그 스스로도 모르는 새 죄책감에 허우적거리고 있는 남자였다.
창준을 이용해야했다. 선생님은 점점 선명해졌다. 그럴수록 그의 모든건 심해로 가라앉는 것 같았다. 치호는 점점 더 버티기 힘들어졌다. 그러니 이건 자신을 위해서이기도 했다.
허술해 보이는 이 아저씨를 어떤 장기말로 두어야 하는가 고민할 무렵 DM클럽 명단에 대한 정보를 알아냈다. ‘프라이빗’이라는 이름으로 철저히 베일에 쌓여 신비주의를 표방했지만 그는 알 수 있었다. DM이 이번엔 제대로 움직인다는 신호였다. 창준이 빠르게 움직여주길 바랐다.
전달하고자 다시 만난 창준 옆엔 작은 아이가 있었다.
아이의 작고 오목조목한 이목구비를 멀뚱히 보던 그는 신윤주가 신창준의 또 다른 중심이 아닐까 생각했다. 아이의 행동과 얼굴과 말에서 한시도 떼지 않는 시선. 반사작용인가 싶을정도로 빠른 반응속도. 가끔씩 아무것도 아닌 상황에서 지어보이는 미소.
저게 부모의 얼굴인걸까.
그는 아버지의 엄숙한 얼굴을 떠올렸다. 성격으로 따지자면 창준과는 하늘과 땅만큼 정도 차이가 있었다. 그래도 아주 어릴 적 가끔 자는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던 아버지의 기억이 있다. 그게 없었다면 자신이 친자라고 확신할 수 없었을 거다.
그때 아버지의 얼굴이 저랬을까.
‘그 아이가 당신 중심이구나..?’
말을 꺼내고 나서야 깨닫는 것이 있다.
창준의 얼굴이 순식간에 온화해졌다. 그가 어떤 사람의 가장 중요한 부분에 다가섰을 때 마주했던 건 언제나 비슷했다.
놀람. 화남. 당혹스러움. 불편함. 치호를 향해 온전히 쏟아지는 악의의 감정.
부정과 긍정은 상반되는 의미구조같지만 가진 힘의 측면에서는 비교가 안 된다. 강한 슬픔. 강한 분노. 강한 허무. 이들은 다른 어떤 기쁨과 환의보다 힘이 셌다. 애석하게도 부정이 긍정보다 감정을 뒤흔드는 데에는 더 효과적인 것 같다. 그래서 그가 파고드는 건 언제나 부정적인 감정이 더 포함된 중심이었다.
하지만 창준은 달랐다. 그는 타인에게서 그런 얼굴을 본적이 없었다.
이런 중심도 있었다.
건들면 모든 것이 무너지는 중심이 아닌 모든 것이 무너져도 굳건히 남아있는 중심.
고맙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그 말을 들어야하는 게 자신이 맞는 건지 그는 확신할 수 없었다. 그 날 이후로 선생님이 나타나지 않았다. 너무 피곤하거나, 남의 중심을 꿰뚫는 날에는 어김없이 선생님은 그의 눈 앞에 서 있었다.
조금 비껴서서, 치호가 바라봐주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눈이 마주치면 항상 말했다. 미안해. 무섭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그가 처음 선생님의 환영을 마주했을 때 그는 열 다섯이었다. 소리를 질렀다. 사람들이 왔다. 그들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걱정말라고 했다.
하지만 그의 눈에는 너무나 선명히.
미안해. 미안해. 선생님은 계속 읊조렸다.
아버지는 어느 순간 그가 그러는 것을 어머니의 탓으로 돌렸다. 그는 입을 다물었다. 현재의 마음이 어떠하든 어머니에 대한 아득한 기억마저 훼손하고 싶지 않았다.
표출하지 못하자 선생님의 사과하는 목소리는 그를 미치게 만들었다. 해가 지면 물 속에 잠긴 듯 모든 감각이 둔화되었으나, 선생님의 목소리만은 예외였다.
모르겠어. 정말로.
그냥 어떻게든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다시 눈을 떴을 때는 병원이었다. 왼손에는 붕대가 감겨 있었다. 아
버지와 할아버지. 치호를 업어 키운 이모님이 엉엉 울고 있었다.
그 날 이후로 아버지는 그가 하는 일에는 일절 간섭하지 않았다. 그 전까지도 제제가 별로 없는 편이었지만 그 날 이후로는 무조건이었다.
조용한 방 안에서 창문을 바라보았다. 이 평화가 언제까지 이어질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는 창준을 이용하고자 하는 방향에 대해 다시 재고해보기로 한다. 선생님이 그것을 바란다면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정해져 있으니까.
여기까지 읽어주신 분들에게
정말로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항상 혼자서 글을 쓰고, 세상에 내보이고 있었기 때문에
저는 스스로가 소설에 대한 반응에 대해 무딘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한 분이라도 인상깊게, 즐겁게 읽어주었다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지만
저 역시 사람인지라 라이킷이 많이 달릴 때면 기분이 좋고
반응이 없을 때는 문제가 있는건지 고민하며 시무룩해졌습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동안 연재를 진행하면서
브런치스토리는 참 따스한 공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이곳에 제 소설을 내보이는게 행복하고 뿌듯합니다.
주절주절 이야기가 길어졌는데요..
브런치북 글 발행 개수 제한 (30개) 를 모르고 있었던지라...ㅎ
바로 이어 도명제약 제록부2 로 돌아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