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서 무언가 떨어졌다. 어스름한 새벽 퇴근길에 그걸 맞은 택시 운전사는 놀라서 바닥에 넘어졌다. 그가 넘어지는 게 계기가 된 것처럼 무언가는 하나에서 열, 열에서 백. 이내 셀 수 없이 후두두둑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택시 운전사는 감히 하늘을 올려다볼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처마를 친, 아직 문 열지 않은 가게 앞에서 쪼그리고 앉아 그것이 제 몸에 닿을까 벌벌 떨었다. 그게 그의 마지막이었다.
몇시간 뒤 정부는 이것이 물(H2O)라고 발표했다. 기타 문제되지 않을 몇 가지 불순물을 빼면 이것은 물이라고, 시민들은 그것을 맞는다고 심각한 질병에 시달거나 문제가 있는게 아니라고 말했다.
사람들의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단순 물 따위를 왜 몇 시간이나 있다 발견하는거냐며 질책했고, 그래도 정부를 믿어보자는 의견, 분명 뭔가의 음모라고, 드디어 세상 멸망이라고 주장했다.
정부의 발표를 곧이곧대로 믿기엔 벌써부터 고통을 호소하는 이도 있었다. 사람들은 냉소적인 반응이었다.
어쨌거나 인터넷 상에서 헐뜯으며 수많은 데이터가 서버에 흘러넘치는 사이에도 하늘에서 내리는 물은 한 번도 쉼이 없었다.
그 사이에 물은 훗날 강수량이라 부르는 기준에 10000mm 정도에 달했다. 이미 성인 평균키를 넘어선 물에 세상이 출렁거렸다.
인류는 이 같은 현상을 겪은 적이 없었다. 샤워기에서 물이 떨어지듯, 바닥에 있는 호스에서 분수가 솟구치듯, 뭔가의 지지대 없이 물이 그냥 하늘에 뚝 떨어지는건 그들이 상상할 수 있는 범위 밖에 있었다.
인터넷에 떠도는 가장 강력한 주장 중 하나는 구약성서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였다.
전국 소방서에서 물을 빼기 위한 작업이 투입되었다. 역부족이었다.
대통령이 나와 시민에게 호소했다. 가능한 모든 인력을 동원해달라고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시민들은 제 집앞에 있는 물을 빼서 어디에 버려야할지 알 수 없었다.
하수구가 꽉 차서 물이 역류하기 시작했다. 덕분에 수위가 더 빠르게 상승했다.
오후 4시가 넘어가자 단층 또는 5층이하의 건물 대다수가 물에 잠겼다. 도심에서 구명보트를 기다리는 회사원들은 창문 밖에 얼굴을 바짝 댄채 하늘을 올려다보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도시에 여러가지 사이즈의 배가 등장했다. 그 중 자신을 노아라고 주장하며 확성기로 사람들을 선동하는 자의 말에 모두의 이목이 쏠렸다.
그는 자신이 만든 방주를 타고 떠나자고 외쳤다. 커다란 나무 배에는 이미 사람이 그득했지만 그보다도 많은 사람들이 그 배를 타고 싶어 했다.
오후 8시. 75층 타워 팰리스에 살고 있는 아직 세 살밖에 되지 않은 한 아이는 자신의 집에서 그 광경을 보고 있었다.
아이의 부모는 회사에 발이 묶인 채였고 아이는 베이비시터와 함께였다. 아이의 부모 회사가 각각 3층 7층짜리 건물에 있다는걸 알고 있는 베이비시터는 패닉상태였다. 통화는 되지 않았고 이미 20층 넘는 건물이 잠겼다. 속도는 시간이 지날수록 가속해서 이제 100층 기준으로 약 2시간 정도면 잠길거라는 것만 확실했다. 그 또한 집에 돌아갈 일은 요원해보였다.
"바다"
아이는 물이 일렁이는 창밖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큰 건물의 강한 빛이 주위를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하지만 물 밑은 어두컴컴해서 전혀 보이지 않았다. 집밖을 볼때면 항상 너무 높아 무섭기만 했는데, 바로 아래 물이 있으니 괜찮아보였다.
쿵---.
강한 소리에 베이비시터가 서둘러 아이 근처로 왔다. 창밖을 내다본 그가 새된 비명을 질렀다.
나무로 만든 배가 건물을 들이 받았다. 사람들이 물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건물의 창이 깨지면서 50층에 구멍이 났다는 비상경보가 울렸다.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베이비시터는 아이를 부둥껴안고 아이처럼 울었다. 그 목소리가 너무 서글퍼 아이도 같이 울었다.
훗날 두번째 인류가 복구해낸 정보를 바탕으로, 가장 많이 들린 소리를 기준삼아 이것의 명칭을 정했다.
비(非). 사람들은 하늘과 땅을 보며, 물에 잠기며 그 말을 반복했다.
이틀 뒤 오후 23시 58분. 세상이 조용해졌다.
무인 위성에서 바라본 지구는 거울에 비춘듯 투명해졌다.
- fin.
비가 내리지 않는 세상에, 처음으로 비가 내린다면? 이라는 물음에서 시작하여 끝난 소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