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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인

아직도 권위적 한국 기업에서는...

by 서상원

저녁을 먹고, 선선한 바람이 부는 정원의 의자에 앉아, 옛 추억에 잠겨 본다.

필자의 프로필에는 의도적으로 넣지 않았지만, 금융 경제학사로서, 2002년 8월 5일부터 2004년 10월 31일까지, 당시 네덜란드 금융 그룹의 한국 현지 법인인 (주) ING생명보험 서울 중부본부 역삼지점을 FC (Financial Consult)로 working을 했다.


필자는, 93년 8월, 첫 직장인 경동원 그룹, 삼성전자 R&D 관련 Pager 제조 기업인 (주)스탠더드텔레콤 제품의 해외 마케팅 전문회사인 (주) Everon Mobilcom의 중국, 동남아 지역 담당으로, 한국 기업 첫 발을 내디뎠다. 당시 중국 33 개성을, 삼성물산 통신기기팀, (주)쌍용 통신기기팀, 효성 물산 통신기기팀과 공동으로 시장 개척을 했으며, 수도 없는 국내 오퍼상 대표들과 Sampling (무선통신 제품은, 미국의 FCC승인, 중국은 우정국의 형식 승인이 나와야 수출이 가능함) 하면서, 너무나도 재미있는 수출의 역군으로 일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당시 (주)두산의 일반기기팀에서는 필자의 마케팅 능력에 반해(?) 두산 신제품 소주를 10 Box 나 Everon 사무실로 선물하여, 필자는 전 직원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그런 직원이었다. 그 외 삼미특수강 계열 (주)삼미의 당시 고대 러시아어과 출신의 이명호 대리는 필자의 자택까지 와서, 당시 유행하던 뻐꾸기시계 최상품도 선물하기도 했다. 자랑질 그만하고...


그때 태평양 생명보험의 영업 아줌마가, 자꾸 필자를 방문하여 생명 보험을 들어라고 했는데 의도덕으로 피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영업의 "ㅇ"자도 모르는 사람이었다고 생각이 된다.

사람의 일은 운이 따라야 한다고, 2002년 8월, 필자가 ING와 Join 했을 때는, 마침 네덜란드 출신 히딩크 감독이 이끄는 월드컵 한국 축구가, 기적의 4강에 오르는 바람에, 한국민들의 네덜란드에 대한 인식이 꽤 좋았고, 당시 강남 테헤란로에 네덜란드계 ING, 미국계 푸르덴셜 생명 보험의 종신 보험과 연금상품의 위상은 하늘을 찔렀다고 과언이 아니다.


첨에 필자는 선후배, 지인들에게 ING 역삼지점 FC 명함만 전달해도


"상원아! 네가 ING에 있으면 하나 들어줘야 한다."라고 말하고, 필자의 몽블랑 볼펜으로 자연스럽게 Sign을 해 주는 것이었다.


또, 하버드 의대에서 수련의 과정을 한, 현재 국립의대 성형외과 교수인, 필자의 중고 절친은


"뭐, 미국에서 ING 일 한다고?" 등...


필자의 영업 전략으로, 당시 필자의 고교 절친 (서울대 의대 출신) 이 서초동에 BT 사업을 시작했는데, 마케팅을 도와준다고 했더니, 피부과 원장님들을 만나 보라고 해서, 당산역 모 피부과에, 소위 개척 영업을 나갔다.


당시 그 피부과 상담실장 간호사에게 ING 명함을 건네주며, 원장님 뵈러 왔다니까, 바쁘시다고 담에 오라고 하면서


"FC님! 그 ING 종신보험 제가 들 수는 있는 것인가요?"라고 했다.


야 ~~! 이 내용을 이해하는 독자는 당시 ING 종신보험과 연금 상품인 Free Style의 상품 위상을 금방 알아차릴 것이다.


필자는 그 상담실장 간호사에게


"여부가 있겠습니까? 당장 Sign 하시죠 ~~ "


하니,


"토요일도 일 하세요? 일 하시면 월납 100만 원으로 해서 컨설팅 부탁 드려요"


라고 답해서 결국 월납 100만 원으로 5년 납 Free Style을 계약에 성공을 했다.


당시 김정태 행장의 국민은행은 ING와 전략적으로, 3천 명 되는 ING FC를 전국 국민은행에 배정하여 방카슈랑스 사업을 도모한 적도 있다.


그리고 필자는, 당시 ING Korea, CEO, 요스트 케네만즈 (네덜란드 본사에서는 과장급 정도의 직급 수준인데, 경영 마인드가 우수하다, 당시 FC를 Foundation of Company로 정의, 보험업의 기본을 꿰고 있음, 그에 비해 한국 영업 본부장, 지점장, 팀장들은 FC가 자기들을 먹여 살리는 데, 여전히 한국 기업의 권위적 태도로 일관, 어찌하겠는가?! ~ 한국 기업의 한계인걸.. 필자는 그와 본사에서 여러 번 만났고, 2004년에는 ING 생보 4위 조기 진입 축하, 덕수궁 렘브란트 축하 연회에, 일간지 경제부 기자 안내 봉사도 했다.


그날 저녁, 네덜란드 금융그룹에서 온 임원으로 보이는 분이 영어로, 당신 항공료만 부담하면 네덜란드 본사로 초청하고 싶다고 했던 기억도 난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제안을 받아들이고, 되든 안되든 네덜란드 ING 금융그룹에 취직하고 싶다고 강력히 말해, 네덜란드로 이민을 갔으면, 또 필자의 인생이 어떻게 되었을까, 솔직히 상념에 잠기게 한다.


필자는 그 당시 한국의 금융기관 분석부터 했다. 아직까지도 한국의 금융은 관치 금융으로, 그 옛날 금통위원이면, 재벌 부럽지 않게 돈은 마음껏 주무르는 그런 관치 금융의 나라이다.


유럽처럼 금융기관 인가가 싶지 않고, 은행원이 마치 공무원처럼 업무를 하는 그런 나라이다.


필자는 당시 늘 외치고 다녔다.


금융기관을 접하는 순서는 은행, 보험사, 증권사, 투신사라고 말이다.


그래서 필자는 동학개미니 하고 은행에 적금이나 들 수준의 사람이 증권사의 공매도나 운운하며 들락거리는 것을 아직도 안 좋게 본다.


증권사 주식 투자는 장기 투자로, 자금도 충분하고, 장기적으로 돈에 대한 여유가 있는 사람이 적합하다고 본다.


첨엔 보험사도 오지 말고, 한 3년 적금을 들고, 20대에만 보험사에 생명보험 상품을 가입 고려 해 보면 된다. 좀 조심스러운 것은 요즘 싼 보험료의 손보 상품도 많으니, 그건 알아보고, 온라인으로 가입하든, 보장을 받으면 된다.


내친김에 현재 보험 영업을 하시는 분들에게 한 말씀드리고자 한다. 절대로 보험 가입은 쪼으는 것이 아니다. 굳이 보험 영업을 꼭 하고 싶으시면, 대리운전이라도 해서 먹고사는 것은 해결해 놓고, 농사짓듯이 슬슬 즐기면서 해야 된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보험 회사 영업인은 월급쟁이가 아닙니다!


결론적으로, 필자의 강조점은, 세상에서 돈벌이는, 자신의 혼신의 힘을 다해서, 천부적인 끼가 있으면 더 좋고, 올인을 해야 한다는 말씀드리며 이만 줄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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