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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만의 행복하고 건강한 생활을 영위

40년 전에는 그랬지만...

by 서상원

주말이라 여유로는 시간을 보내다가, Z 세대들에게 지금의 기성세대인 50~60대 이해를 구하는 의미에서 필자의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의 학창 시절을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지난호에서 얘기한 대로, 필자는 대구 삼덕초 6학년 초 당시(1980년) 대구 중구 대봉동 청구맨션(당시 대구상고 뒤편에 위치)에서 남구 앞산네거리 인근으로 이사를 하는 바람에, 남도초로 전학을 갔다. 당시 대구의 초등학교 중에 경북대 사대부속초, 교대부속초, 가톨릭 재단의 효성초 등이 굳이 서울로 비유하자면 리라초와 같은 사립초였고, 남도초는 현재 강남 역삼동에 위치한 도성초와 같은 소위 부촌의 공립 초등학교였다. 지난호에서 얘기한 대로 필자는 삼덕초에서는 전혀 못 느낀 대단한 경쟁을 실제 체험하며, 초등학생이 밤을 새워 공부를 했다고 이미 얘기를 했다. 다들 남에게 지고는 못살겠다는 열정이 대단했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그 해 가을운동회 때, 차전놀이로 6학년 남학생 청군과 백군의 결승이, 가을 운동회의 하이라이트였다. 차전 위에 장군의 구성은 청군과(당시 1학기 전교회장, 경북대 의대 안과 의학박사) 백군(당시 2학기 전교회장, 고대 물리학과 졸업 후 Microsoft Korea 입사)으로 나눠어 1:1로 두 번째 차전 싸움이 끝난 상태였다. 당연히 청군과 백군은 한 치의 양보도 못 하겠다는 기세가 대단했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그래 세 번째 차천 싸움이 극에 달아서, 장군들은 계속 차전을 높이 올려 하늘을 찌를 듯했다. 몇 번을 반복하며 차천이 위아래로 왔다 갔다 하며 단 1도 양보 없이 싸움을 했는 바, 결국 그렇게 새끼줄을 단단히 맨 차전의 머리 부분이 부러지게 되어, 심판이신 체육선생님께서 무승부 판정을 하게 되었다. 그러자마자, 차전 싸움의 최전방수들은 너무나 애석하여 "에이씨~~"라고 외쳐 심판 선생님의 꾸중까지 받는 살벌한 운동회였다. 요즘 초등학교에서는 아마 상상도 못 할 그런 상황이 사실이었다. 당시 한 반에 약 70명의 학생으로 상위권 학생들은, 당시 정부의 과외 금지 조치 전에는, 대구의 경우, 김인환 영어, 이구형 영어 등 중학교 영어 교과서를 통째로 암기하는 그런 영어교육이 성행하였다. 필자의 경우도 당시 영어 국정 교과서를


"I'm Tom. I am a student. You are Jane. You're a student, too." 이런 식으로 영어 공부를 하였다. 빨간 영문법 책으로 Be 동사부터 차근히 영문법 공부를 한 기억이 떠 오르곤 한다. 중2 때 외운 such의 용법 문장은


"I don't know what to say about such a topic."은 필자가 Cellular phone 해외 영업 시에도 유용하게 활용한 기억이 난다.


그래 경복중(현재 대구 협성경복중학교)을 84년 2월에 졸업하고 당시 3 학군인 능인고등학교로 3월에 진학하였다. 당시 3 학군은 대구고, 심인고, 경원고, 능인고였다. 2 학군 ( 대구 수성구 학군) 간 친구들은 덕원고나 경신고로 많이 갔는데, 당시 이들 학교는 대구에서 소문난 스파르타식 학교로, 서울대 농대라도 좋으니 서울대 진학률을 올리기 바빴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도 여태껏 지독한 학벌사회인 한국 사회니까, 서울 농대 나왔어도, 4대 일간지에, 소위 언론고시에 합격하여, 논설위원으로 지금껏 활동하는 친구도 있다. 나의 모교인 능인고의 경우는, 경북도내에서 대구로 유학온 친구들이 50%나 되었다. 안동, 영덕, 상주, 칠곡 심지어는 포항 구룡포, 울릉도까지 말이다. 다들 공통적인 의견이 촌에서는 다들 전교에서 1,2등 했는데, 대구에 나오니 반에서도 1등은커녕 5등 하기도 힘들더라는 얘기였다. 아마도 이 글을 읽는, 84년 당시 강남 8 학군의 독자들은 이 이야기가 가소롭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그래 결국 필자의 때는 대입학력고사 세대라 내신을 뒤집고, 서울대는 절대 아니고, 연대나 고대로 진학한 경우도 흔히 있었다.


여기서 필자가 Z 세대에게 들려주고 싶은 것은 약 40년 전의 한국은 이랬고, 다들 정이나, 무언가 다소 부조리가 있다 하더라도, 엘릭슨의 주장대로 자기 정체성은 나름 확립하고 지냈다. 필자의 친구들 중에는 굳이 SKY를 나오지 않아도, 당시 대구소재 3개 의대 출신 의사, 약사, 한의사, 판사, 육사 출신 장군, 항공대나 공사 출신 항공사 기장, 공기업 임원, 금융기관 임원 및 지점장, 대학 교수, 중소기업 대표 등 현재 한국 사회의 리더급이라고 자부하는 친구들이 많이 있다.


Z 세대 여러분은 학창 시절 봉사활동도 대입시에 필수 요소였고, 지금은 없어졌지만, 대입 수시에 필요한 자기소개서의 공통 문항인, 학업 중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했는지를 누구나 다 생각하며 학창 시절은 보냈다. 필자는 늘 '교육은 바람직한 인간행동의 계획적인 변화'라고 정의하고 있는 바, 현재 글로벌 G2 기술 경제 패권 다툼이 날로 치열 해 가는 이 시대에, 그 어느 누구와도 자신을 비교하지 말고, 디자인 스쿨도 다녀 본 적이 없는, 랄프로렌처럼, 사회의 테두리 안에서 자신만의 행복하고 건강한 생활을 영위해 나갈 것을 당부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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