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 댁 옆 우리집

by SIEMPRE

우리 가족은 경남 김해에 있는 새로 지은 벽돌교회에 보금자리를 마련하였다. 아빠가 죽은 이후 몇 개월인가 지나서였다. 홀로 남은 20대 후반의 엄마는 우리 남매를 부양할 길이 막막했다. 다니던 교회가 김해 외동의 신도시인가 하는 곳으로 이전했는데 마침 그 1층, 사택 바로 옆집에 세를 들어 살기로 했다. 말하자면, 우리는 교회에서 살게 되었다.


교회 3층에는 선교원이 들어선다. 선교원이라는 건 일종의 개신교식 어린이집 내지 유치원이라고 보면 된다. 간간히 찬송시간이 들어가는 걸 제외한다면 사실상 커리큘럼은 동일하다. 일종의 유치원 미션스쿨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제 갓 서른을 앞둔 엄마가 그곳의 원장이 되어 아이들에게 율동과 찬송을 가르쳤다. 시간이 많이 지나고 그곳에 다시 찾아간 적이 있는데, 3층엔 아직까지 선교원 시절에 창문에 붙였던 장식들이 남아 있었다. 엄마 시절인지 아님 그 이후 인수 받은 사람들 시절인지는 불명확하다.



돌이켜 보면 그 시절은 행복했다. 동이 트기 전 무렵부터 따뜻한 이불을 걷고 우유 배달을 나가는 엄마의 움직임을 잠결에 눈치 채면서도 말이다. 또 자주 앓아 눕는 엄마가 그대로 돌아가시면 이제 우리를 사랑하고 보호해줄 사람이 없다는 걸 알아 두려움에 떤 적도 많았다. 그런데도 그 시절은 대체로 행복했다.


그 당시 김해 외동은 갓 개발이 시작되는 곳이었고, 아직 개발이 안 된 그 교회 주변에선 계절에 따라 야생화도 달리 피고 풀벌레도 많이 살았다. 나는 교회의 형들과 누나들과 풀벌레도 잡고 꽃잎도 따고 그냥 풀밭을 뛰어 다니기도 하면서 나름대로 그 곳의 좁다란 자연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우리 누나는 교회누나들과 함께 교회 앞 작은 텃밭에 핀 해바라기에서 해바라기씨를 뽑았다. 나도 한 번 먹어봤는데 썩 맛있단 생각은 안 들었다.


주위를 둘러싼 모든 것이 그리스도적이다. 옆집엔 목사님이 살고, 종종 목사님은 우리 엄마와 누나, 그리고 나를 초대해서 같이 식사를 하곤 했다. 교회 3층에 올라가면 엄마가 준비한 선교원 교육자료들이 있다. 일종의 '성경적인 것'이었다. 크리스마스 시즌엔 교회당 내부에 트리가 들어서고 십자 첨탑을 따라 내려오는 줄에 환한 전구 장식이 늘어선다.


교회 안에 있는 집에서 산다는 게 나에겐 모종의 특권의식마저 느끼게 해주었는데, 정확히 알진 못하지만 그토록 신성한 공간 만에 산다는 게 아무나 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가끔 옆집, 사택에서 목사님 가족은 우리 세 가족을 초대해 같이 밥을 먹기도 했다.


그러니 그리스도교적 경건함을 느끼기는 아주 쉬운 일이었다. 다만 그 경건함은 서양의 오래된 성당이나 교회가 환기하는 그런 엄숙하고 장엄한 분위기와는 상당히 다른 것이었다. 말하자면 우리 가족들의 삶에서 느껴지는 애잔하고 질박한 감정이 깃든 것이었다. 더불어 도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건물들과 비슷한 재료로 지어진 교회의 영세함을 통해 느끼게 되는 것이기도 했다. 그리스도는 그렇게 엄숙하고 권위적인 분도 아니었고 그저 일상 속에서 만나는 사람들처럼 왠지 친근하고 다정한 존재였다. 무엇보다도 유약한 우리들을 보듬어주고 보호해 주는 힘은 가졌지만, 그 힘을 당장 눈앞에서 보여주지는 않고, 그런 힘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통해 우리에게 위안을 느끼게 해주는 존재였다.


그리스도는 어둡고 스산하고 질곡이 많은 교회사를 곳곳이 거쳐 오면서 강건해졌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친숙함과 다정함을 포기하지 않고 있었다. 밤새워 기도를 하는 엄마를 따라가 예배당 안에 자리를 펴고 자는 기분은 무언가 신성하면서도 왠지 모르게 또 익숙하고 편안한 감정을 느끼게 했다. 더 이상 세상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만큼의 정력을 갖지 못해 은퇴했지만 그래도 세상의 존경을 잃지는 많은 채 멀리 떨어진 시골에서 은거하고있는 온화한 노인을 만나 뵈러 가는 그런 반가운 기분.


그리스도는, 그리고 교회사의 숱한 순교자들과 민중들은 엄마의 삶과 우리네 삶에 쉽게 동치 되었다. 그들은 그리 넉넉하지 않은 삶을 살면서도 성스러움을 유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또한 세상으로부터 모진 대접을 받고 야유를 받으면서도 힘겹게 버텨가곤 했다. 말하자면 식민 지배를 받아온 민족 중에서도 가장 낮은 위치에 처한 하층민의 절박함과 그 속에서의 순결함을 지키려는 노력을 쉽게 공감하는 것이다.


우리는 단순히 심적으로 약한 존재일 뿐 아니라, 살아가는 한 순간 한 순간이 세상에 의해 가장 약하고 낮은 위치에 처해 있도록 위치 지어진 존재였다. 그렇기에 한편으로는 약한 심성을 기댈만한 곳이 필요했다. 세상은 너무 어지럽고 복잡하고 위험하다. 그 가운데 아무런 방어막없이 홀로 서 있기란 불가능 하다. 엄마가 우리를 보호해 주고 길러주듯, 그런 엄마를 포함해 우리들 모두를 위험한 세상 가운데서 보호하고 살아가도록 양육해줄 존재가 필요하다. 그 것이 그리스도이며, 그 공동체인 교회에서 사는 것이 바람직하다. 뚜렷이 의식하고 이해하고 표현해낼 순 없었지만, 유년 시절의 내가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이란 그런 것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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