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은, 모두가 천국으로 갔다

by SIEMPRE

엄마와 아빠는 단칸방에서 살림을 꾸리고 가정을 이루었다. 내가 어렴풋이 기억을 갖기 시작할 무렵엔 나름대로 3칸방을 가진 규모있는 집으로 이사를 간 상황이었다. 나와 누나는 그곳을 '아파트'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오랜 시간이 지나 주소를 찾아서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 보니, 그저 낡아빠진 저층 맨션일 뿐이었다. 아빠는 딱 거기까지만 해놓고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만다.


어릴 때 아빠에 대해 기억나는 건 엄마와의 종교갈등이 아니라면 교통에 관한 것이 전부다. 엄마는 그 당시 똥차를 모는 아빠가 멋있어서 만났다고 한다. 아빠는 조그마한 자가용 차를 갖고 있었고 트럭도 몰았다. 그리고 중국집에서 오토바이로 배달을 했다. 바로 그 오토바이를 타고 도로를 달리다 세상을 떠난 것이다.


아빠는 항상 엄마의 교회, 엄마의 예수님, 엄마의 종교를 싫어했다. 어느 날은 우리 남매에게 교회에 가지 말라며, "마귀 아저씨가 왔다"하는 식으로 짖궃은 장난을 치기도 했다고 한다. 내 기억엔 그 아빠가 성경책을 집어 던지며 엄마에게 마구 화를 내던 적도 있었다.


그렇지만 엄마는 그런 아빠가 죽었을 때 놀랍게도 우리에게 의외의 말을 전한다. 아빠는 지금 천국에 갔을 거라고. 어째서인지 모르겠지만, 아빠는 병원에서 사경을 해맬 때 신념과 신앙에 대해 후회와 아쉬움을 드러낸 적이 있었나 보다. 엄마는 그것을 아빠가 천국에 가게 됨을 증명하는 일종의 실마리로 받아들였다.


어리고 순진한 우리 남매는 항상 그렇게 생각했다. 아빠는 천국에 갔다. 그땐 천국이 뭔지 정확하게 모르고, 죽음 이후의 시간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사실상 아빠의 죽음이 '죽음'이라는 삶의 필연적인 최종 단계를 알게 해주는 일종의 매개체가 되었다.


아빠의 장례식을 치르고 돌아온 순간부터 간혹 그런 두려움에 잠기던 기억이 난다. 나도 어른이 되면 늙고 병들어서 죽고 말거야. 아니면 아빠처럼 어느 날 갑자기 비명횡사를 할 수도 있다. 그건 너무나 공포스러운 현실이다.


그땐 나이듦이 너무 무서워서 어린 시절이 아주아주 길어서 내가 감당하기 힘들 정도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삶의 필연적인 과정들을 확실히 받아들일 준비를 하기 전까지 나이듦이 현관 앞에 멈춰서서 차분히 기다려 주었으면 좋겠다 싶었다.


그러나 아빠가 죽어서 천국에 가 있다는 생각을 할 때면 그런 두려움이 어느 정도는 누그러진다. 사람은 누구나 천국에 갈 수 있다는 것, 교회에 열심히 다니며 성경말씀대로만 하면 된다는 것, 그게 구원이라는 것, 그 정도만 머릿속에 넣어두고 다니면 된다. 죽으면 아빠도 만날 수 있다. 사실 난 그 아빠에 대한 기억이 그리 많지도 않고 감정적으로 많이 그립지도 않았지만 누나가 아빠를 정말 좋아했다. 언젠가 우리 모두 다시 만날 것이다.


신기하게도 그 이후 엄마가 사랑했던 사람, 그리고 더 나가서 우리 가족이 사랑했던 모든 사람들이 세상을 떠날 무렵엔 모두 다 천국에 간 걸로 되었다. 항상 그랬다. 시간이 흘러서 엄마의 두 부모님, 그러니까 우리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모두 다 천국에 갔다. 내 기억엔 두 분 모두 평생 엄마의 신앙을 싫어하고 성가셔했는데 그럼에도 천국으로 갔다.


외할머니는 우리 남매에겐 조그마한 방에 불러 돌아가신 아버지를 위해 기독교식의 추모 기도라도 드리라고 강요하기도 했었다. 언젠가 아버지의 묘에 추모하러 갔을 때도 그 묘지에 준비해온 술을 부으며 넋두리를 하던 사람이었다. 엄마는 우리 아빠가 지금 그 자리에 없으며 저 멀리 떠났기 때문에 거기에다 말을 해봐야 들을 리 없다고 했다. 그냥 흙봉분에 불과하니까. 하지만 외할머니는 꿋꿋하게 준비한 넋두리를 한다.


그런 분들이 모두 다 천국에 갔다. 외할머니의 조그마한 시신이 병실에서 나올 때 엄마는 조용히 속삭였다. 외할머니도 천국에 갔을 거라고 말이다. 사실 외할머니는 늘그막에 "나도 한번 예수 믿으러 느그 교회에 가보긴 해야겠다" 정도의 말을 하긴 했다. 엄마는 그것을 할머니가 천국으로 가셨을 실마리로 삼았다.


이후 혼자 남은 외할아버지는 엄마에게 확실히 전도를 당해 교회에 나갔다. 그 교회 목사님은 외할아버지가 누구보다 열심히 성경 말씀을 읽더라고 전했다. 그렇게 모두가 천국에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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