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신앙

by SIEMPRE

그 당시 분위기가 어땠는지 교회의 조명이 어땠고, 목사님의 목소리는 어땠고, 예배당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모였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비석 모양의 '유아 세례패'가 오랫동안 집에 뒹굴고 있었던 걸로 보아 나는 유아세례를 받았던 것 같다. 당시 엄마가 다니던 교회는 부산의 지저분한 거리 틈에 있는 교회였다.


기독교는 곧 내 모태신앙이 되었다. 사실 그게 뭔지도 모를 나이부터 아무튼 열심히 믿었고 빠지지 않고 교회에 출석했다. 그리하여 교회의 모든 것은 내 삶에서 오랫동안 긍정적으로는 부정적으로든 분명히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겨 놓았다. 내게 자연스럽게 첫 세계관을 만들어 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것에 대해 생각하고, 그것을 따라 실천하고, 그리고 그것을 의심하고 마침내 벗어나게 되기까지, 지금까지 내 삶 전반과 얽혀 있다고 보아도 좋을 것 같다.


삶이 기독교와의 연관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독실한 신자인 우리 엄마에게 있다. 엄마 손을 잡고 교회를 다니며 나와 누나는 자연스럽게 그리스도인이 될 수 밖에 없었다. 엄마가 그리스도인이 된 건 어느 정도 우연적 이유 혹은 필연적 이유가 있다. 엄마는 기독교 계열 고등학교에 입학했고 친척들이 예상한 바는 아니었지만 그곳에서 신앙을 접하게 된다. 이후 친정 식구들 모두가 반대했는데도, 홀로 독실한 종교인이 된다.


엄마가 자주 이야기하는 일화가 하나 있다. 어느 날 저녁에 혼자 교회 예배당에 앉아 기도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불이 확 꺼지더란다. 칠흑같이 어두운데, 어린 나이에 두려움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엄마는 가만히 앉아 기도를 했고 기도에 응답하듯 다시 불이 환하게 켜졌다고 한다.


엄마에게 하나님, 예수님, 교인들은 모두 삶을 붙들게 해주는 구원의 끈과 같았다. 그건 이후 시대에 상업화 되는 대형교회의 가르침과는 명확하게 구분되는 것이었다. 녹록치 않고 희망을 꿈꿀 수 없었던 엄마의 십대 나날들을 위로할 수 있는 힘은 경제적 실력보다도 선한 삶을 권하고, 스스로 뭔가를 해내도록 강요하기 보단 전능한 신의 보호 속에 있음을 인정하도록 하는 기독교 신앙이었을 것이다. 엄마도 딱 그 정도만 바랐고 더 욕심을 부리지 않았던 것 같다.


그렇지만 엄마의 삶은 처음부터 엄마에게 너무나 냉담하기만 했다. 엄마는 어려운 가정 상황 탓에 고등학교를 원치 않게 자퇴해야 했고, 친척집의 가정부 노릇을 거쳐 공장에서 일을 해야했다. 엄마는 그 곳에서 만난 좀 더 나이든 남자와 만나 결혼을 하고 너무도 일찍 예고 없이 가정을 차리게 된다. 누나가 태어났을 무렵 엄마의 나이는 스물 하나였다.


내 어린 시절에 단단하게 새겨진 세계관은 사실상 엄마의 신앙이었고 엄마의 삶의 흔적이 짙게 베인 정서였다. 엄마와 함께 세상에서 처음만난 기독교는, 그러나 이해할 수 없게도 아빠가 못되게 반대하고 친척들이 경멸하는 그런 것이었다. 어느 날 아빠가 성경책을 집어던지던 기억이 난다. 그런 식의 싸움은 흔했다. 아마 엄마가 일방적으로 당했던 것 같다.


사실 교회에 대한 거부감은 집안에서만 그치지 않았다. 기독교는 그 밖 사회에선 더 많은 논란의 가운데 있었던 것이다. 이건 나중에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되고, 온통 교인들로 둘러쌓인 환경에서 벗어나게 되면서 더 분명하게 느끼게 될 것이었다.


20대 중반의 엄마는 그런 분위기 속에서도 순수한 신앙을 그대로 품고 있었고, 일요일 아침이면 우리 남매의 손을 잡고 교회로 나갔다. 우리 남매는 언젠가 한번 이름도 기억 나지 않는 친척에게 "예수귀신 붙은 자식들"이라는 소리도 들었다. 내 기억은 아니고 누나가 들려준 일이다.


당시 교회와 관련해서 내 기억에 어렴풋하게나마 남아 있는 건 교회에서 형들과 누나들과 지내던 시간들, 주일 저녁에 교회에서 돌아오며 아버지 몰래 동네 통닭집에서 엄마가 사주던 양념 통닭, 그리고 이사무엘이라는 독특한 이름을 가진 나와 동갑내기 친구 정도이다. 기억하기로는 교회의 이름은 금광교회였고,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상가에 들어선 작은 교회였다.


학교 공부를 중단해야 했던 엄마에게 교회는 모든 것이었다. 엄마는 전도사가 되고 싶어했다. 그게 소박한 꿈이고 사명이었다. 엄마도 아마 그저 나이듦에 따라 자연스럽게 외할머니나 그 이전 어른들의 삶을 답습하는 식의 삶을 살진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삶에서 정말 드물게 '배우고 싶은 어른'의 상을 보여준 건 종교인 정도 밖에 없었다. 성가대에서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 강단에서 설교하는 사람들, 교인들을 예방하며 도움을 주는 사람들.


특히나 엄마가 존경하는 '홍 전도사님'이 기억이 난다. 우리 집에도 몇번 찾아왔었고 엄마가 만든 것보다 더 맛있게 계란국을 끓여주기도 했다. 당시엔 그 계란국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었다. 홍 전도사님은 어렸던 엄마에게 실질적인 은사 역할을 해주셨다. 도움도 많이 주고 조언도 해주었다. 엄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아빠가 버티고 있는 집안에서 그런 꿈을 이루긴 불가능했다. 친척들 중 그 누구도 엄마의 꿈을 응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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