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된 가정

by SIEMPRE

기독교는 욕망의 절제를 강조하는 종교다. 세속적이고 자연스러운 욕망을 다소간 절제하고 세속으로 향하는 에너지를 그리스도를 향한 열망으로 방향을 틀도록 권장한다. 또 하나 중요한 속성으로 공동체를 강조한다는 것이 있다. 로마제국 시절부터 기독교는 피식민지 약자들의 종교였고, 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을 함께 뭉쳐서 자신들을 지키는 것일 수 밖에 없었다.


이를 현대적으로 풀어내자면, 세속적 오락거리처럼 다른 방향성으로 튀어나갈 방향성을 차단하고 그리스도를 구심점으로 삼아 가정이 하나로 뭉치는 형태가 될 것이다. 우리 엄마의 이상이기도 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된 가정'.


첫번째 남편과 사별하고 엄마는 외할머니의 요구에 따라 새로운 남편을 받아들이게 된다. IMF 금융위기 시절이었고 혼자남은 젊은 엄마가 우리를 부양하는 건 너무나 위태롭고 불안정한 일이었다. 그러나 예수님을 싫어하는 남편에게 시달리고 억압받은 엄마의 입장에선 새로운 남자에게 또다시 같은 경험을 반복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이번엔 새 남편을 그리스도인으로 전도한다는 생각을 품었다.


새아빠는 흔쾌히 받아들였다. 어쩌면 그쪽도 의지처가 필요한지도 몰랐다. 무역선을 타고 스페인어를 쓰는 남미까지 한 두달쯤 오가는 사람이었는데, 그리 편안한 일은 아니었다. 의지할 곳도 필요하고 가족도 필요했을 것이다.


그러나 외할머니의 기대와 달리 새아빠는 집안에 어려움을 주게 된다. IMF 금융 위기를 거쳐 카드 대란이 발생할 무렵 순진한 이 사람은 잘 타던 무역선에서 내려 친구 말만 듣고 사업에 끼었다. 그러나 잘 될 리 없었고 그 이후 우리 가족은 오랫동안 벗어나기 힘든 난국에 빠져들게 된다. 엄마, 새아빠, 누나, 나, 새로 태어난 어린 두 동생들. 모두 단칸방에 살던 순간의 기억은 지금도 괴롭기만 하다.


새아빠에겐 별다른 취미가 없었던 것 같다. 그 시절 그 나이대 남자들에겐 그래도 가장 접근하기 쉬운 취미가 있다면 술자리에 가는 것이다. 술을 많이 마셨다. 술냄새를 풍기면서 집으로 돌아오는 일이 많았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된 가정'을 꿈꿔왔던 엄마에겐 너무나 지독한 일이었다. 모든 걸 용서해줄 수 있지만, 그래도 교회 집사라는 사람이 술에 취해서 돌아다니는 멍청한 꼴만은 봐줄 수 없다는 것이다. 엄마가 생각하기에 '하나님을 더 사랑하고 잘 믿으면' 술 정도는 자연스럽게 끊을 수 있다. 고작 술이 뭐라고. 하지만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그럴 일은 요원해 보인다.


사실 우리 집안에서 정녕으로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으로 만족하면서 세속의 오락거리에 눈길을 주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 당시에도 그렇고 지금도 물론 그렇다. 엄마는 사실 본인부터 쇼핑을 좋아한다. 그러지 말아야 한다고 본인 스스로 다짐하면서도 매번 다시 새로운 물건을 사오곤 하는 것이다. 또 누나와 나는 엄마 몰래 연예인과 아이돌 이슈 잡지를 사오다 들켜서 혼나기도 했다. 우리가 보는 만화영화도 엄마는 썩 좋아하질 않았다.


초등학교 5~6학년 때 내 방엔 컴퓨터가 들어왔다. 그 당시에 엄마는 그게 얼마나 파괴적인 물건인지 전혀 알지도 못했다. 내가 무슨 짓을 할 수 있는지 전혀 몰던 것이다. 나만 아는 비밀이지만 야후 코리아 검색창에 '야한 사진'을 타이핑하면 일본 그라비아 모델들의 수영복 사진이 주르륵 뜬다. 와우!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까지 야한 사진들은 아니었던 것 같지만 그 때 엄마 몰래 그런 걸 볼 수 있다는 사실이 꽤나 큰 배덕감을 안겨주었다.


그보다 좀 더 커다란 죄책감을 느꼈던 일은 포장마차를 하는 엄마 앞치마를 털어서 게임CD를 산 것이다. 반친구들이 떠드는 게임 이야기에 나도 끼고 싶었다. 게임CD 가게 앞에 진열된 화려한 게임 케이스들은 내가 감당할 수 없는 강한 유혹을 안겨준다. 결국 나는 엄마 주머니에서 훔쳐 온 구겨진 만원 짜리 몇 장을 들고 그 가게를 찾았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나쁜 일이라는 걸 알아서 잔뜩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점원에게 CD를 달라고 했다.


물론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이다. 두어번쯤 그런 짓을 더 하다 들키고 만 것이다. 엄마가 일을 마치고 돌아올 때까지 벌벌 떨면서 기다려야 했다. 어디 숨거나 도망칠까 하는 생각도 잠깐 했다. 하지만 결국 운명의 순간이 닥치고 만다. 그날이 아마 내가 살면서 가장 크게 얻어맞은 날일 것이다. 우리를 잘 때리지 않았던 엄마가 그날만은 빗자루 하나를 부러뜨릴 기세로 호되게 때렸다. 그게 아팠던 기억은 나지 않는다. 사실 맞은 부위가 아팠다기 보단 마음이 괴롭고 고통스러웠던 기억이다. 아마 그 무렵에 한 번 '세속의 욕망이 나쁜 것이다'는 종교적 가르침(사실상 엄마의 가르침)을 확실히 깨달았던 것 같다.


시간이 많이 지난 지금, 엄마와 이야기를 해보면 엄마가 그 시절 너무 어린 나이에 자녀를 기르다 보니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 전혀 몰랐다고 한다. 우리에게 미안한 마음이라고 한다. 게임이나 대중가요, 만화 같은 걸 너무 색안경을 끼고 봤다고. 그저 세상의 욕망이 언제든 우리를 망가뜨릴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 모든 걸 막아내는 게 당시 엄마에겐 최선의 교육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었던 것 같다.


다만 그렇더라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된 가정'을 이상으로 삼는 엄마의 기조는 변함이 없다. 물론 집안 풍경 역시 여전히 변한 건 없다. 고향에 내려가 보면 마치 녹화된 비디오처럼 새아빠는 늘상 술에 취해서 느지막히 들어오고, 엄마는 인상을 찌푸린 채 화내곤 한다. 그게 좀 답답하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희극적이기도 하다. 그저 사람이란 모두가 불완전한 존재니까, 반쯤은 죄책감을 가슴 한 켠에 두고 흔들리면서 살게 되는 것 같다. 계속해서 어쩔 수 없이 반복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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