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기도원의 음울한 가르침(2)

by SIEMPRE

웅장한 교회, 불편한 자리. 방방 뛰면서 찬송을 부르고, 흐느끼고 울부짖으며 기도를 하고, 그러다가 권위있는 목소리를 가진 목사님이 설교를 반복한다. 성경의 가장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은 두려움과 전율을 일으키게 한다.


목사님은 일종의 종말론을 말한다. 그러면서 타락과 타성에 젖은 청중들을 가혹한 목소리로 질타한다. 미래에 언젠가 그날이 오면 그때까지 남아있는 기독교인들이 고립되고 박해받을 것이다. 성경은 모두 불태워지고 교회도 무너진다. 예배는 용서받지 못한다. 살아남은 자의 예배와 죽은 자의 무덤이 뒤섞인 어둡고 축축한 로마의 카타콤과 같은 지하교회에서 극소수의 기독교인들이 비참하게 하루하루를 견뎌내 갈 것이다.


그 때가 되면 세상이 지금과 전혀 같지 않고 타락하여 그토록 무시무시한 간음과 기이한 성벽들, 폭력과 살인이 거리낌 없이 벌어지는 무서운 세상이 된다. 그런 참혹한 세상에서 절대로 유혹에 물들지 않고, 나약해지지 말고 담대하게 신앙을 지켜야만 한다. 신앙이 없는 자들과 구별되어 박해를 받을 것인데 그 박해 앞에서 절대로 겁을 먹어선 안 된다. 고통스럽게 죽게 되더라도 끝까지 버터야만 한다. 그것이 신앙의 표시이며 그렇게 버텨낸 자만이 그 뒤에 올 영원한 행복을 향유할 수 있다.


이런 설교가 초등학생이던 나에겐 어마어마한 충격을 주었음은 두 말할 필요 없다. 마치 영혼을 넘어 심장을 뚫고 지나가는 느낌이었다. 처음으로 그렇게 어두운 성경을 접하며, 또 처음으로 집에서 오랫동안 멀리 떨어진 기도원에서 낯선 이들 틈에서 힘겨운 하루하루를 보내며 나는 분명히 어떤 메시지를 받았다고 느꼈다.


우리는 돌이킬 수 없는 길을 넘어선 죄인이다. 그렇기에 역겹고 끔찍하고 수치스러운 죄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런 죄의 굴레는 세상의 역사가 전진하면서 더욱더 기대하고 암울해저서 결국 세상 전체를 뒤엎고 그나마 남아있는 그리스도와의 고리를 끊기 위해 폭압적으로 행동할 것이다. 그리고 그 끝에서,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의 징벌을 받아 참담한 지옥으로 내쫓길 운명을 갖고 있다.


비록 우리가 아무 것도 하지 않았더라도, 우리 안에는 우리의 선조들이 저지른 죄악 때문에 얻은 죄를 향한 강렬한 경향성이 자리 잡고 있고, 그리고 바로 그 사실 때문에 우리는 우리를 창조한 하나님 앞에서 고개조차 들 수 없는 수치스러운 죄인이다. 그 와중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길은, 물론 예수의 구원을 믿는 것이다. 그러나 다만 그것 만으론 만족스럽지 못하다. 우리는 우리의 온 마음과 정신과 몸을 정결하게 해서 어떤 타락한 것 하나 스며들지 못하게 만들어야 한다.


시험의 시대가 곧 도래한다. 그 때의 유혹은 삶 전체를 옥죄고 위협하는 그런 유혹이다. 그 유혹에 견딘다는 것은 거룩하지만 끔찍한 죽음. 곧 순교를 택한다는 것 이상을 의미하지 않는다. 어느 모로 보아도 다른 어디로 도망칠 구석이 없다.


설교가 끝나면 불이 모두 꺼지고, 다들 숨이 느끼며, 혹은 거대하게 부으며 서로를 끌어안고 기도를 한다. 그 기묘하고 음산한 광경, 나는 그 자리에 어찌할 바 모르고 있으면서도 이런 세계에 태어난 우리의 술픈 운명이 그 곳에서 그대로 발산된다고 느꼈다. 영원히 비탄과 고통에 잠기게 될 지옥에 갈 수 밖에 없는 우리에겐 단 하나의 구원의 길이 열려 있는데, 그 길조차 고난의 길이다.


수련회에서 돌아온 나는 이전과는 돌이킬 수 없이 달라졌다. 암울하고 가혹한 우리의 미래를 접하고 난 뒤, 나는 어린 나이에 장래의 박해를 견뎌낼 만큼 성스러운 사람이 되기로 나름대로 마음먹었다. 그게 초등학교 6학년 여름방학, 2002년 8월부터 한 달 넘게 지속되었을 것이다.


마음을 잡고 결단을 내린 나는 꽤 긴 시간 흔들리지 않고 음란하고 타락한 모든 것에 완벽하게 거리를 두었다. 그러다 보니 세상의 많은 것들을 혐오하게 되었다. 점차 성적인 호기심에 들떠 변해가는 학교의 남자 아이들에 대한 반감도 품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저 허세일 뿐인데 나는 그런 나 자신에 대해 뿌듯해 했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그리고 매 끼마다 기도를 했고, 교회에서 언젠가 들은 기억을 되살려 '감사-회개-간구-예수의 이름'으로 이어지는 기도의 순서를 철저하게 지키려 했다. 교회는 성실하게 나갔다. 나가서 한 동만 정좌로 앉아 설교에 귀를 기울이고 끝난 후의 기도도 열성적으로 해냈다. 비록 종종 눈에 보이지도 않고 여태 만난 적도 없는 존재에 대한 마음을 품는데 의문이 생기기도 했지만, 나는 하나님과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품기 위해 애썼다. 가끔 좋은 일이 생기면 우선 기도로 감사를 표했다.


성경을 처음으로 읽어보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인데, 나는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교훈이 끊임없이 나열되는 잠언을 택해서 읽기로 했다. 잠언을 읽으면서 마음에 드는 부분을 필기해서 벽에 붙여 놓고 그 것을 내 삶의 지침으로 삼기로 했다. 잠언이라는 책 자체가 '- 하라', '~을 하지 마라', '~은 좋다. ~은 나쁘다' 식의 단순한 명령과 충고가 이어지는 책이었기에 이걸 삶의 행위 기준으로 삼기에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잠언에 따라 행하기란 복잡한 이해가 필요한 다른 책들과 달리 전혀 어려울 바가 없어 보였고, 그만큼 '나는 신의 뜻에 따라 성실이 살고 있다'는 모습을 보이고 증명하기 쉬우리라 믿었다. 그렇게 내 삶에 도덕적 가치관은 처음으로 명확하게 자리를 잡았다. 직선적이면서도 개신교 특유의 금욕적 가치관을 담은 것이었다.


성경은 진리요 선이며 성경에 반대되는 것은 분명 거짓이요 악이다. 성경에는 우리의 일상에 대해 많은 지침을 하고 있는데, 그 지침들을 따르는 것은 선한 삶이며 그 지침들과 반대되는 마음을 품는 것, 예를 들어 부모를 공경하라는 명령에 반대되게 불효하는 마음을 품는 것은 악행이며 회개하지 않으면 지옥으로 가게 될 행위이다.


무엇보다 내 마음에 끌린 것은 정결하고 순결해야 한다는 가르침과 선하게 살아야 한다는 가르침이었다. 가치관이 복잡하고 혼란스러워져 오는 사춘기 시절에 최초로 받아들인 것들이다. 일단 교회에 나가지 않는 다른 아이들 보단, 또 성욕에 줄곤 이끌려 요란해지는 다른 아이들보단 내가 더 잘 지키고 있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일종의 선민의식이라고 할만한 무언가가 내 속에 자리잡았다. '나는 너네랑 달라' 말하고 싶어 하는 그런 감성. 나는 선택 받은 신앙인이라는 것이다.


다만 그때 처음. 갑작스럽게 접한 강렬하고도 암울한 종교적 전망을 그대로 직시하기엔 나는 아직 너무 어리고 연약했기에, 그 것을 더 감내하지 못하고 차츰 현실의 타성에 젖어드는 편을 택했다. 아직 교회를 열심히 다니고 신을 사람하고 믿는 마음을 저버리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만이 가슴 속에 남아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뜨거웠던 마음은 차차 미지근해졌다.


사실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당시의 과장된 공포와 정결함에 대한 요구가 과연 적절한 것이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너무 어린 나이에 세상에 대한 비관적인 인식만 얻은 건 아닐까 싶다. 미리부터 저 세상사람들의 삶에 대한 깊이 모를 두려움과 좌절감을 안은 채로 거기서 회피하기 위해 신앙심에 더 매달리게 되는 심리 구조가 만들어진 건 아닐까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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