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처음 자취를 시작한 곳은 건대 부근 옥탑방이었다. 부동산에서 계약을 하고 그곳에 올라선 첫인상은, 촌스러운 초록색 도료가 잔뜩 깔린 멋대가리 없는 공간이라는 것. 그리고 한 쪽 구석에 심오하게 자리잡은 말라붙은 고양이 똥의 강한 존재감.
옥탑방 건물 바로 아래로 사람 다니는 길목에 누가 가져다 놨는지, 사람 먹는 밥그릇에 고양이 사료가 가득 뿌려져 있었다. 퇴근길에 돌아와보면 산만하게 어지럽혀져 있고, 한 여름엔 냄새가 났다. 그땐 온라인에 캣맘을 욕하는 분위기가 있는지도 잘 몰랐고, 그저 이 '선한 의도'가 좀 난감하게만 보였다.
아침마다 출근길을 나서면, 못생긴 초록색 옥상 위에 새롭게 말라붙은 고양이 똥이 보이곤 했다. 한강변을 공간 가득 가리는 거대한 고속도로와 함께. 그 날은 퇴근 후에 가방을 내려놓고 곧장 옥상 청소를 해야하는 날이다. 회사에 있는 내내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옥상엔 고무 호수도 없어서, 라면 끓여먹는 냄비에다 싱크대 물을 가득 담아 뿌려대며 힘겹게 배수구로 비릿한 썩은 내를 밀어넣어야 했다. 그러고 나면 식욕도 달아났다.
이런 하루하루가 되풀이되는 건 너무 싫어서 고양이 퇴치제를 샀다, 두 종류를. 하나는 오래 맡으면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로 싱그러운 레몬향 퇴치제로 가루형이었다. 다른 건 물뿌리개처럼 뿌리는 것인데 코를 찌르는 후추향이 났다. 잔뜩 쟁여놓고, 매일 같이 의식처럼 가루를 뿌리고, 물뿌리개를 칙칙쳤다. 덕분에 고양이똥은 더 이상 안 볼 수 있었지만, 대신 택배나 배달기사들이 옥탑방에 올라오면 표정이 안 좋아졌다.
싱그러운 레몬냄새, 촌스러운 도료가 깔린 옥상, 후추가 썩어들어가는 냄새, 비릿한 고양이의 흔적들. 후추냄새와 레몬냄새는 초록색 옥상 위에서 뒤섞였다. 고양이들 사이에서 아주 안 좋은 소문이 났는지, 더 이상 퇴치제를 안 뿌려 냄새가 안 날때까지 그랬다.
한 몇 개월쯤 그랬다. 옥탑방이라는 감성이 좀 많이 바래긴 했지만 그래도 아늑한 곳이 되었다. 옥탑방답지 않게 한 여름에 날벌레가 별로 없었는데, 아마 방 거주자인 나부터 열기에 쓰러질 만큼 뜨거운 곳이라 다 말라죽어서 그랬을 것이다.
미니 빔프로젝터로 영화를 볼 수 있다고 호언 장담했지만, 야속하게도 프로젝트 화면에 자막이 안 나와서 전 여자친구와 그냥 컴퓨터에 파일을 띄워 보았던 영화 코코도 그 시절 기억이다. 이런 유치한 만화영화에 눈물 흘리지 않는 척 하려고 애쓰던 감정.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짐을 내리고 그곳을 떠나던 날, 손이 닿지 않는 외진 구석에서 아직까지 남아 있는 레몬냄새와 후추냄새가 뒤섞인 그런 냄새를 맡았다. 감정이 어땠는지 흐릿하지만, 아마 그리웠을 수도.
고향으로 돌아오고 언젠가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는 꿈을 꾸었다. 가파른 계단과 촌스러운 초록색 옥상은 반가웠지만, 문을 열자 거대한 공간에 내가 가져보지 못한 웅장한 가득한 가구들로 가득했고, 뜨거운 열기가 아닌 아늑한 햇살이 쏟아졌다. 그 날 꿈에서도 레몬 퇴치제와 후추 퇴치제 냄새가 뒤섞인 그런 냄새를 맡았다. 기억하는 마지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