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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획자의 경험 Aug 22. 2021

막스베버 프로테스탄트의 직업윤리와 자본주의 이해

기독교 사명과 소명 관점의 변화 과정 그리고 부의 원리


이번 글에서는 자본주의의 정신적 뿌리를 찾아보는 과정을 기록해 보려 합니다. 



언젠가 자본주의에 대해 연구하고 정리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자본주의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현상이고 우리의 삶의 많은 부분이 자본주의의 체제 속에서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경제와 정치뿐 아니라 직업, 교육, 경영, 관계, 신앙 등 을 넘어 우리가 생각하는 과정까지도 무의식적으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많은 문제들의 중심에는 자본주의의 문제가 걸쳐져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본주의의 구조와 이해를 통해 어떻게 해석하고 살아가야 하는지를 볼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저에게 두 번째 이유가 있다면 신앙인으로서 그리고 교육자로서 어떻게 자본주의에서 기독교인들이 자세를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지를 알고 싶었습니다. 그러기 위해 선택한 책이 바로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이었습니다. 자본주의를 접근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자본주의의 정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독교 사상이 어떻게 사회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는지를 확인하면서 이해해 나갈 수 있습니다. 


자본주의의 시작은 유럽에서 시작하였고 유럽의 자본주의의 정신적 역할을 하는 것은 기독교였기 때문입니다. 또한 자본주의의 세계적인 모델인 미국의 경우 그 시작이 바로 크리스천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자본주의를 설계해 나가면서 그 자본주의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였습니다. 


성경을 사회에 풀어 내며 그들의 사회를 발전시켜 나갔습니다. 이들은 부지런하고 정직하여 자본주의에서 빠르게 부를 축적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부가 축적되면 부에 따른 문제로 인하여 기존의 자본주의 정신을 잃어버리는 현상들을 발견하였습니다. 이러한 것들의 문제로 인하여 사회주의가 발생하게 되고, 여러 가지 갈등들을 빚어 내게 됩니다. 





이번 글에서는 자본주의 관점이 너무 크게 벗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주제에 따라 글을 정리해 보려 합니다. 


전체적으로는 막스 베버의 시각으로 자본주의의 뿌리가 되는 


첫 번째는 자본주의 정신은 무엇이고 자본주의의 원리와 기본 뿌리를 이해합니다. 


- 이 과정은 기독교의 프로테스탄트 집단의 직업윤리를 이해하면서 자본주의 부의 원리를 찾아봅니다. 


두 번째는 자본주의의 직업 소명에 대한 부분을 사회에 제공하여 직업관을 만들어낸 루터를 분석합니다


- 루터는 직업의 소명의식으로 기존의 직업의 귀천을 없애고 부조리한 가톨릭의 사회적 비리들을 혁명하였습니다.   


세 번째는 루터의 직업 소명과 직업윤리를 발전시킨 칼뱅의 자본주의 관점을 분석합니다. 


- 자본주의를 확장하게 된 것과 미국의 자본주의는 칼뱅의 자본주의 직업윤리를 사회에 적용하여 시작하였습니다. 


네 번째는 프로테스탄트가 왜 자본주의의 주역이 되고 부유한지에 대해 분석해 봅니다. 


- 유럽에서나 미국에서 프로테스탄트들은 자본주의의 막대한 영향력을 미쳤고 나라를 부강하게 하였습니다. 


추가로 신앙적인 부분으로 루터와 칼뱅이 만든 예정론을 살펴보고 이에 종교에 끼친 영향을 알아봅니다. 


- 시대에 필요한 교리였고 발전적이었지만 그것이 성경적이었는지와 비판적 시각과 동시에 성경적 의미를 찾아봅니다.  


결론으로는 자본주의 정신의 뿌리에 대한 부분을 21세기에 적용하는 것인데 이는 루터와 칼뱅의 직업윤리를 비판하면 21세기의 자본주의 생각할 부분들을 찾아보려 합니다.


 루터와 칼뱅을 비판하는 이유는 당시의 자본주의의 직업관과 직업윤리는 그 시대의 사회현상과 사업, 정치, 경제, 문화를 반영하여 발생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이를 21세기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각 부분을 재정리하여 현시대에 적용 가능한지를 분석해 보는 것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를 통해 자본주의의 직업관과 직업윤리 그리고 크리스천들이 어떻게 지금 시대에 직업정신을 가져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을 제공해 보려 합니다. 이 과정이 저에게도 필요한 부분이었기에 함께 고민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추가로 이번글은 긴 글의 형태로 짜르지 않고 작성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내용들이 연결되어야 이해를 돕는 부분이 있기에 길지만 글을 분리하지 않았습니다. 자본주의 흐름을 여유있게 이해하며 이어나가시길 바라겠습니다.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책의 저자 막스 베버의 전개 과정 


이 책은 자본주의를 해석하는 아주 중요한 책 중의 하나입니다. 자본주의의 정신적인 뿌리와 작동 방법을 밝히고 있는데 이 책을 통해 자본주의의 정신을 읽어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유럽의 자본주의를 미국이 가져와 자본주의 정신을 정립하면서 엄청난 성장을 이뤄 냈고 전 세계로 자본주의를 전파하여 그것을 받아들인 나라들을 부유하게 만들었습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로 미국으로부터 자본주의를 배워 적용한 결과 빠른 성장과 도약을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자본주의의 원리는 적용하였지만 자본주의의 정신은 적용하지 못하여 자본주의의 부정적 결과들이 발생하였습니다. 그것이 바로 물질 만능주의입니다. 이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를 축적하려고만 하도록 사람들을 부추기게 됩니다. 


막스 베버는 마르크스와의 쌍벽을 이루기도 하는데요. 50년 뒤늦게 태어난 막스 베버는 마르크스의 주장을 비판하고 보완하기 위해 <프로테스탄트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마르크스가 생각한 자본주의의 개념은 크게 <자본가>와 <노동자>로 나누어지고 자본가는 노동자를 착취한다는 개념을 생각했습니다. 이 둘은 서로의 이윤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노동자는 약자이기 때문에 자본가의 이기심에 착취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를 사회에서 통제하여 공정한 분배를 만들자고 하는 개념이 '사회주의'입니다. 여기서 사회주의로 가기 위한 통제집단 '공산주의'가 나오게 됩니다. 


하지만 막스 베버는 그렇게 한다고 해도 노동자의 억압과 착취는 사라지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오히려 국가가 부를 통제하게 되면 더 심한 억압과 착취가 다른 형태로 존재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사실상 사회주의 그리고 공산국가인 북한의 경우 사유재산을 가지지 못하는 것 자체가 억압과 착취였습니다. 


막스 베버는 이러한 억압과 착취 현상이 자본주의의 특징이면서도 본질은 아니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권력을 가진 곳에서 권력을 가지지 않은 쪽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현상은 어디에서나 있어 왔기 때문이죠. 막스 베버는 자본주의를 그러한 관점이 아닌 '합리적 조직'에 주목하였습니다. 


그는 미국을 관찰하면서 자본주의가 성장하는 것은 자본가와 노동자의 관점이 아니라 그들의 태도에서 즉 미국인들이 초기에 가진 자본주의에 살아가는 정신이 자본주의를 성장시킨다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그 태도는 5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기독교 정신 즉 성경을 사회에 적용하여 일하는 철학이기도 하였습니다. 


첫째.  일하는 것은 그 자체로 가치 있는 것이다. 


둘째. 정직하고 근면한 노동을 통해 돈을 버는 것이 인생의 최고 목표다. 


셋째. 시간을 허비하는 것을 경멸하고 계획을 세워 실천하는 생활을 한다. 


넷째. 일하기 위해 쾌락, 행복, 즐거움 등을 포기하고 쓸데없는 휴식과 게으름을 물리친다. 


다섯째. 돈을 모으기 위해 절약하고 검소하게 생활한다. 


자본 가든 노동자든 이런 생활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이 미국의 자본주의였고 이것은 성공적이었습니다. 이들은 돈보다 자본주의 정신을 더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이러한 정신은 자본주의를 성공적으로 만든다는 것을 막스 베버는 발견한 것이었습니다. 


사실 생각해 보면 돈에 대한 욕망은 누구나 가지고 있습니다. 자본주의 형태는 세계 각국에 있어왔습니다. 하지만 어느 나라도 자본주의 속에 자본주의 정신을 가진 나라는 오직 서양에서만 가질 수 있었습니다. 특히 영국과 미국에서 먼저 나타나 지구에 퍼지게 된 것이죠. 


이전에는 서양은 동양보다 더 낙후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본주의가 생겨난지 얼마 되지 않아 급속도로 발전하여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었습니다. 자본주의는 나라를 부강하게 발전하는 힘을 키워 주는 것입니다. 


이전 한국이 쇄국정책(다른 나라와 통상과 교역을 금지하는 조항)을 흥선대원군이 내세워 막은 것과 중국 또한 쇄국정책을 썼습니다. 그러나 일본은 서양의 자본주의를 빨리 받아들여 강한 국가로 만들었고 한국을 식민지 삼고 중국을 굴복시키고 러시아까지 뻗어 나갔습니다. 


자본주의가 나라를 부강하게 만드는지 아닌지는 지금 남한의 자본주의와  북한 사회주의를 선택하여 이끌어온 현재를 확인하면 더 분명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본주의 정신이 없는 자본주의는 천민자본주의 즉 물질 만능주의로 사회를 윤리적으로 타락하게 만들고 직업적으로도 귀천을 만들어 내게 만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자본주의를 건강하게 만드는 자본주의 정신이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을 이해하는 과정에서는 기독교 역사 속에서 우연한 결과 속에서 만들어지게 됩니다. 그것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프로테스탄트의 탄생 과정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서 그 탄생을 만들어낸 혁명의 주인공인 '루터'와 '칼뱅'을 알아야 합니다. 바로 프로테스탄트의 정신이 자본주의 정신의 뿌리이기 때문입니다. 





루터의 종교개혁과  캘뱅주의를 통한 자본주의의 확장 


자본주의의 정신이 나타나게 된 것은 종교개혁과 함께 시작되었습니다. 중세 시대에는 가톨릭이 국교로 잡으며 황제와 교황이 막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권력의 중앙에 있던 가톨릭은 힘이 커지면서 종교가 타락하게 되고 부패하게 됩니다. 면제 부를 판다던가 무리한 기부를 이끌어내어 자신의 부로 축적하였던 것이었습니다. 그런 가톨릭이 극에 달할 때 마틴루터가 등장하여 가톨릭의 행태를 비판하는 95개의 반박문을 비테 베르크 교회 정문에 붙여 놓는 일이 발생합니다.  당시 목숨을 걸고 하는 것이었죠. 


이를 계기로 프로테스탄트 즉 개신교의 시작점이 됩니다. 하지만 이를 성장시키고 널리 보급시킨 것은 루터가 아니라 칼뱅이라는 프랑스 사람이었습니다. 칼뱅이 설계하고자 했던 것은 이미 뿌리 깊은 가톨릭을 대신하는 새로운 기독교 왕국을 세우려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유명한 <그리스도 강요>라는 책을 쓰게 됩니다. 이 책은 성경 다음으로 많이 팔린 기독교 책으로 전 세계에 큰 영향을 끼치고 그 출간을 통해 그는 종교개혁자의 지도자가 됩니다. 


프로테스탄트는 사실상 이때부터 용어가 정착되고 확산하게 되는데 당시 정확히 지칭하는 것은 칼뱅의 기독교 사상을 따르는 무리를 지칭하는 것입니다. 이들을 청교도라고 부르는 말입니다. 



칼뱅의 5대교리  


1. 전적 타락(전적 타락과 무능력, Total depravity) 롬 5:12-21


2. 무조건적 선택(Unconditional election) 롬 4:4-8


3. 제한 속죄(Limited atonement) 제한적이며 특별한 속죄 웹 1:4 마 1:21


4. 불가항력적 은혜(Irresistible grace) 요 6:37-40, 롬 8:18-39


5. 성도의 견인(굳게 참고 견딤, Perseverance of the saints) 벧전 5:10




칼뱅은 5대 교리를 정립하여 전파하였는데  이것은 앞 글자를 따서 TULIP(튤립) 교리라고도 불립니다. 이 교리는 크게 세 가지를 담고 있습니다. 이는 당시 종교개혁을 위해 기존 가톨릭을 개력하기 위한 것으로 정립한 기독교 교리입니다. 



1. 절대주권 - 신이 전적으로 인간사와 우주를 다스리고 결정한다. 


2. 운명 예정 - 신은 처음부터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죽음을 예정해 놓았다. 


3. 신의 영광 - 인간은 신의 영광을 증대시키기 위해 살아야 한다. 



칼뱅은 이러한 교리는 개혁을 위한 것이었지만 의도치 않게 사회의 사상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루터에서 시작한 종교개혁의 원리를 칼뱅은 사회에 잘 정착하여 확산하여 프로테스탄트 들을 세례로 뻗어나가게 한 것입니다. 위의 교리가 사회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직업관과 직업윤리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는지 마틴루터와 칼뱅을 심층적으로 들어가서 알아보겠습니다. 





루터의 소명의식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의 시작은 마틴 루터로 부터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전에는 직업에 귀천이 있었습니다. 중세 시대에서는 귀족들은 누리는 삶이었고 노동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비천한 존재로 여겨졌습니다. 


마틴 루터는 아주 독창적인 생각을 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소명의식'입니다. 소명이란 '신의 부르심'으로 자신의 직업을 소명으로 여기도록 만든 것입니다. 이전의 직업이 단순히 먹고사는 활동으로 여겼다면 루터는 이에 의미를 부여하고 이익 추구 이상의 것을 추구하도록 이상을 제시한 것입니다. 마틴 루터는 직업을 소중히 여기고 이를 발전시키고 하나님의 일을 하듯이 하도록 사람들에게 소명의식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이익을 추구하는 것을 멀리하며 일을 하나님을 섬기고 다른 사람을 섬기는 도구로 가치 있게 여기도록 하였습니다. 이러한 직업관은 프로테스탄트들에게 보이는 특징적인 현상이자 중심이 되는 교리였습니다.  



이러한 교리의 칼날이 향하는 곳이자 비판을 받는 것이 바로 가톨릭의 이중도덕이었습니다. 당시 가톨릭은 도덕적으로 선한 행위를 해야 구원받는다고 주장했는데 이 선한 행위는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납니다. 



첫째의 선한 행위 - 명령 



1. 거록한 날들을 무조건 지키는 것 


2. 매주 일요일과 축일마다 미사에 참여할 것 


3. 지정된 금식 일을 지킬 것 


4. 적어도 1년에 한 번은 고해 성서를 할 것 


5. 적어도 1년에 한 번은 영성채(빵과 포도주)를 받을 것  



등으로 일반 성도가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이와 반대로 두 번째는 선택적인 요소로 작용합니다. 



두 번째 선한 행위는 - 복음적 권고  



1. 자발적인 청빈 


2. 자기 부정과 영적인 우월지에 대한 완전한 순종 


3. 영속적인 정결 



마틴루터는 수도원 생활을 하며 가톨릭 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를 지키려고 하면 할수록 이중적인 자신이 되어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며 이렇게 결론짓게 됩니다. 




인간은 불완전하다. 때문에 어떤 인간도 완전하게 선한 사람이 될 수 없다. 따라서 "인간은 '선한 행동'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다. "고 정의 내리게 됩니다. 구원은 오로지 '믿음으로만 구원' 받을 수 있다는 '오직 믿음'을 전파하였습니다. 



가톨릭의 구원관이 '행위를 통한 구원'이라면 루터의 구원관은 '믿음을 통한 구원' 이라고 정의 내릴 수 있습니다. 이는 기존의 가톨릭의 부패한 행위들에 대해 드러내며 사람들을 일깨우는데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루터의 소명의식은 직업 노동을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정의 내리고 모든 사람이 자신의 직업을 갖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사회의 모든 것은 협력하여 이루어진다는 것을 강조하며 어떤 분야든 귀하게 여기도록 전파하였습니다. 루터의 사상은 자본주의 사상의 시작이기는 하지만 이때까지는 관련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직업이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것에 부정적이었고 특히 금융의 이자 받는 것과 이익을 추구하는 행동에 대해 매우 부정적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루터가 영향이 주었던 것은 사회에서 각자에게 주어진 것은 신의 섭리이자 지상에서 주어지는 명령으로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이를 더 올라가거나 벗어나는 것은 악하게 보았습니다.



 루터의 후계자들은 이를 더 강화시키며 사람들이 열심히 일해서 더 나은 직업을 얻으려고 하는 것을 죄악시 여기기까지 하였습니다. 이러한 요인이 루터의 사상을 뒤로 갈수록 더 후퇴하게 만들었습니다. 



직업에 대한 개념을 확립한 것은 루터이지만 이 소명의식을 받아 완전히 발전시킨 것은 바로 칼뱅입니다. 루터가 직업 노동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였다면 칼뱅는 이를 더 깊게 파고들어 사회에 적용될 수 있도록 확립해 나갔습니다. 






칼뱅의 청교도 정신의 시작 


루터가 직업 소명론을 제시하였지만 그의 개념은 소극적이고 수동적이었습니다. 특히 신은 모든 사람들에게 특정한 신분과 직업을 주었으므로 자신의 신분과 직업을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것이 큰 특징이었습니다. 그러나 칼뱅은 이를 적극적으로 능동적으로 발전시켰습니다. 신은 특정한 신분과 직업에 묶어둔 것이 아니라 자유롭게 자신이 원하는 직업을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누구나 자신의 능력에 맞는 일을 찾아 이동할 수 있는 것이죠. 



루터의 직업소명설이 특정한 직업을 숙명으로 여기고 평생 그것에만 종사하는 것이었다면 칼뱅의 직업 소명 설은 자신의 능력에 맞는 직업을 선택해서 그 일에서 신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칼뱅이 중요하게 여긴 것은 어떤 직업에 종사하든지 깨끗한 양심으로 정직하고 근면하고 성실하게 열심을 다하여 신의 영광을 드러내라는 것었습니다. 따라서 평생 특정 직업에만 종사해야 한다는 강박 관념을 가질 필요가 없었습니다. 



또한  그는 기존의 가톨릭에서 미신적인 것들을 없애기 위해 "예정론"을 교리화하였습니다. 이러한 예정론은 로마서 9장을 활용하며 유명한 토기장이 비유를 하였습니다. 이 교리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신은 절대적인 주권을 가지고 있고 신은 사람들에게 자유의지를 주었다. 태어나기도 전부터 구원받을 사람과 저주받을 사람이 이미 예정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의 입장에서 보며  황당해 보이기도 합니다. 신이 지옥 갈 사람 천국 갈 사람을 미리 정해두었고 세상에 살아가도록 한다? 이러한 생각은 지금으로서는 황당하지만 당시 가톨릭의 미신적인 것에 의지하려는 사람들의 정신을 바로잡는 것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칼빈이 사실 관심을 가진 것은 인간의 나약함이 아니라 신을 중심에 놓고 그의 사상을 형성한 것입니다. 신이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신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이고 세상 만물이 그 자체로는 가치가 없고 신의 영광과 위엄을 나타내는 수단이 될 때에만 가치가 있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칼빈이 겨냥한 것은 당시 인간의 종교적인 생각이었습니다. 인간이 착한 행동을 통해 신의 마음을 움직여 구원을 받으려는 태도를 종식시키기 위한 위도가 있었습니다. 이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절대적인 하나님의 형상을 사람들에게 품어주었고 신이란 인간의 이해를 넘어서 있는 초월적인 존재로 정의 내렸습니다. 



이러한 예정론은  영국과 미국의 '개인주의'의 시초가 되었습니다. 당시 믿음에는 하나님과의 중재자들이 있었고 심지어는 신의 마음을 사기 위해 주술적인 사람들이 성행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성찬식 고해성사 등의 예식은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과정이라 생각하였습니다. 칼뱅은 예정론을 통해 이미 정해진 상태에서 이런 것들은 소용이 없고 오직 개인적으로 하나님과 마주해야 함을 강조하였습니다. 



즉 사람에게 의존하지 않고 오지 신만이 신뢰의 대상이 되어야 함을 강조하였습니다. 이러한 가르침 속에서 '더치페이'라는 문화가 나왔다고 합니다. 칼뱅의 사상이 가장 먼저 보급된 나라가 네덜란드인데 이들은 자기가 먹은 음식은 자시가 내던 것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더치'라는 말은 네덜란드 사람이라는 뜻이고, '페이'는 지급한다는 말입니다. 



칼뱅의 이러한 예정론은 사회적으로 사람들이 교회생활은 함께 하지만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은 각 개인의 역할로 만들었습니다. 즉 구원의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이것이 사회에 흘러들어 갔습니다. 



당시 개인은 집단주의 사회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였습니다. 하지만 칼뱅주의자는 자신이 존재하는 유일한 목적을 최선을 다해 신의 영광을 증대시키는 것에 두었고, 신의 영광을 증대시키는 목적을 위해 동료 사이의 수평적으로 결합하는 조직의 형태를 만들어 낸 것입니다. 칼뱅주의는 전통적 집단에서 나와 각 개인들이 모인 집단을 형성하는데 이것이 새로운 형태의 조직이면서도 전문화된 조직의 형태였습니다



이것은 사람들은 규칙에 의해 합리적으로 조직화되어 각 개인의 사명을 위해 조직에 충성하며 어던 조직보다 탁월한 효율성을 나타냈습니다. 또한 칼뱅주의자들은 인간들 사이의 전통적이면서도 권위적인 풍습을 개혁하였습니다. 이러한 반 권위적 태도가 칼뱅주의를 받아들인 나라들의 민주주의 문화를 만드는 기초가 되었고 특히 미국 민주주의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신의 소명을 위해 일하는 것이 칼뱅주의의 직업 소명론이라면 일터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는 곳이었습니다. 이곳에서 분업화로 전문적인 협업이 일어났습니다.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이러한 효율성을 제조핀으로 비유하며 증명하였습니다. 



"한 사람이 제조핀을 만들면 하루에 20개 정도 만든다. 하지만 다섯 명이 분업을 하여 한 사람은 철사를 자르고, 한 사람은 철사를 곧게 펴며, 한 사람은 철사를 끊고... 이러한 협업은 한 사람이 하루에 4800개의 핀을 만들 수 있다." 



칼뱅주의자들은 이러한 것을 깨닫고 자기 분야에서 최고 전문가가 되는 것이 신의 영광을 증대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이런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이웃을 사랑하는 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예정론이 사람들을 어떻게 이끌어갔는가? 


칼뱅의 예정론은 미신적인 부분을 없애주고 각 개인이 하나님께 의지하도록 만들었지만 남아 있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바로 '자신이 선택받았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지?'  이미 신이 사람의 운명을 예정해 놓았는데 누가 받았고 누가 받지 않았는지 알 수 있을까? 사람들은 이러한 부분에 의심이 올라오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때 칼뱅주의는 두 가지의 대책을 내어 놓습니다. 



첫째. 의심은 악마의 속삼임이다. 강력한 믿음으로 걷어내라 



칼뱅은 이러한 부분에서 인간의 신의 결정을 결코 알 수도 없고 알려고 해서도 안된다고 했고 오직 자신이 선택받았다는 참된 믿음을 통해 의심을 물리칠 수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일반 성도들의 상황은 그렇지 않았고 더 강한 확신을 필요하였습니다. 칼뱅은 스스로 구원받았다고 확신하고 모든 의심을 악마의 유혹으로 여기라는 것이었습니다. 많은 칼뱅주의자들은 이러한 확신을 가지게 됩니다. 



이런 예정론에 기반한 믿음은 사람들에게 공포와 불안이라기 보다 신뢰의 기반이 되어 강한 확신을 가지게 됩니다. 또한 이들은 강력한 행동주의자가 되어 많은 분야에서 개척자들을 만들어 내게 됩니다. 신이 나와 함께 하면 구원으로 인도할 것이라는 믿음이 강철같은 의지를 제공하게 되는 것이죠. 미국의 개척자들은 이러한 믿음을 소유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둘째. 성공은 구원받았다는 증표이다. 



예정론에 따르면 아무리 많은 선행을 해도 예정된 운명에 영향을 끼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선행을 통해 성공했다는 것은 구원받았다는 징표가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마태복음 7장 17절~20절의 좋은 나무 비유를 듭니다. 좋은 나무에서 좋은 열매가 나오듯이 구원받은 사람에게는 성공이 나온다는 것이었습니다. 



즉 성공하여 선행을 베풀 수 있는 것은 구원받은 증거라는 것이었죠. 그래서 칼뱅주의자들은 구원의 징표를 삼기 위해 자신의 직업 노동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이들은 성공을 위해 생활계획표를 세워 계획대로 살고 자신의 욕망과 성격을 지배하고 통제하며 삶 전체를 철저히 관리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이는 이전의 가톨릭의 선행과 비교가 되는 개념인데 이유는 그러합니다. 



가톨릭은 사람을 선행과 악행을 할 수 있는 존재로 보고 악행에 비례하여 선행을 하면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칼뱅주의자는 잠시의 선행이 아니라 삶 전체의 선한 것을 요구합니다. 자신이 선택된 사람이라는 것을 선한 행위로 구분하며 삶 전체에서 나타나는지를 보고 자신의 삶에 오점이 안 생기도록 통제하며 살아갔습니다. 



이러한 생활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들에게 부를 쌓게 만드는 원리를 만들어 주는데 다음 장에서는 칼뱅주의의 정신과 자본주의 정신을 연결하고 자본주의의 부의 원리와 한계성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칼뱅주의 정신과 자본주의 정신의 연결 그리고 부의 형성 



칼뱅주의는 쉬지 않고 규칙적으로 작업 노동을 수행하는 것을 최고의 금욕 수단이 자 참된 신앙의 가장 명백한 증명방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예를 들면 일을 하지 않을수록 세상의 유혹에 빠져들게 되니 이를 경계하며 자신의 일  즉 소명에 집중할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이러한 종교적 태도는 자본주의 정신을 확장시키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 되었습니다. 칼뱅주의자들은 작업 노동을 중요시하며 이익 추구 활동을 하면서도 소비를 억제하며 사용하기에 결과적으로 자본이 축적되었습니다. 신앙심 깊은 사람들이 큰 재산을 모으고 투자를 하는 부자들이 많이 생겨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이들은 돈을 모아 과시용으로 쓰기보다 근검절약하며 돈을 생산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투자를 하였고 이들이 있는 곳에는 경제가 부흥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청교도들의 인생관은 자본주의의 경제 요람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 다음이었습니다. 



청교도 신앙을 받아들여 부유하게 된 시민과 농민들은 초기의 금욕적인 신앙을 거부하기 시작하였고 타락하게 되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하였습니다. 역사 속에서도 수도원에서 엄격한 노동과 근검절약으로 돈이 쌓이면 이 돈 때문에 수도원이 귀족이 된다던가 수도원 규칙이 엉망이 되어 개혁이 일어나는 과정이었습니다. 우리나라로 보면 세상을 잊으려 수행하러 들어갔던 절에서 땅값이 올라 그것으로 욕심을 더 생기는 것이죠. 



감리교의 창시자인 존 웨슬리는 이러한 금욕적인 신앙이 부의 증가를 가져오고 증가된 부가 금욕적 신앙을 무너뜨리는 역설적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감리교의 창시자 존 웨슬리 

어디서나 부가 증가하는 만큼 종교의 본질이 훼손되어 왔다는 사실에 나는 두려움을 느낀다. 나는 사물의 이치상 참된 신앙을 오랫동안 계속 부흥시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알지 못한다. 왜냐하면 종교는 반드시 근면과 절약의 태도를 길러내는데 이런 태도는 부를 낳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부가 증가하면 교만과 분노와 세상에 대한 사랑이 사방에서 증가한다. 감리 교인들은 어디서나 부지런하고 검소하므로 그들의 재산은 증가한다. 그러나곧이어 교만과 분노와 육체적 욕망도 증가한다. 따라서 종교의 형식은 남아 있을지라도 그 정신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말 것이다.

종교의 순수성이 계속 부패되어 가는 과정을 막을 방도는 없는가? 우리는 사람들이 부지런하고 절약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우리는 기독교인들에게 가능한 한 많이 벌고 가능한 한 많이 저축하도록 그래서 결국은 부자가 되도록 격려해야 한다. 



역사적으로 종교와 경제는 연결되어 있는데 종교운동이 일어나면 경제발전으로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종교 정신이 사람들의 생활에 정착되어 습관이 되어야 그 효과가 나타나게 됩니다. 그런데 효과가 나타날 때쯤이면 종교운동의 열기가 최고조를 지나 서서히 식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부가 쌓일수록 사람들이 초기의 신앙심이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과거 산업혁명 때 가장 신앙적인 운동들이 많이 일어났었고 순수할 때였습니다. 하지만 경제성장과 세대가 바뀌며 초기의 순수성을 많이 잃어버렸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정리해 보며 칼뱅주의의 금욕적인 정신과 직업 소명의식은 사회에서 각 개인이 부를 쌓고 그 부의 결과들이 산업의 경제성장을 일으켜 왔습니다. 금욕적인 삶은 사람들 사이에 신용을 높여주고 신용을 통해 얻은 돈을 가지고 수익을 창출해 부를 만들어 냈습니다. 부라는 것은 자신의 열매로서 열매가 많을수록 구원의 증거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경제성장이 정점을 다다를수록 사람들은 금욕적인 정신과 소명감은 사라지는 역설적인 현상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 자본주의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자본주의가 결국 자본주의를 멸망하게 만든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회주의 경제학자인 슘페터 역시 이와 같이 자본주의는 사람들의 이기심으로 부를 가진 사람들은 더 가지려 하기에 자본주의가 성장할수록 내부의 갈등은 더 커진다고 말하였습니다.  



자본주의에 비판한 마르크스는 이러한 사회에서 자본가와 노동자의 투쟁이란 관점이었지만 막스 베버는 이러한 사람들의 문화, 종교, 정치 등 다양한 관점으로 해석하며 자본주의를 풀어냈습니다. 이러한 관점은 자본주의의 역사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자본주의의 성장과 현재를 분석하는데 좋은 관점을 주고 있습니다.  







프로테스탄트 집단은 왜 부유한 것일까? 


여러 종교로 이루어진 나라의 직업에 대한 통계를 보면 재미있는 사실 하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바로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 중에 유난히 프로테스탄트 신자가 많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의 자본주의가 급속히 발전하는 시기에 직업을 선택한 주민들의 종교집단에 관한 통계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프로테스탄트 집단이 부유한 몇 가지 이유를 찾아보면 



첫째 조상들에게 많은 부를 물려받아 경제적 생존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고 그 결과 경영자, 자본가, 고급 노동자가 많이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그들의 삶의 태도입니다. 그들은 삶을 엄격하게 통제하면서 일을 래서 돈을 벌었고 부를 함부로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태도는 사업을 하며 주위의 신뢰를 쌓고 그 기반으로 부를 확장해 나갈 수 있었습니다. 



칼뱅주의이자 프로테스탄트는 16세기에는 스위스의 제네바와 스코틀랜드에서 17세기 념아 어가는 시기에는 네덜란드 대부분에서 그리고 17세기 미국의 뉴잉글랜드 지방에서 지배적인 세력으로 영향력을 미쳤습니다.  당시의 국가의 정상들은  프로테스탄트의 오는 것을 환영하고  이들을 유치하기 위한 정책을 내어 놓기도 하였습니다. 



미국의 급속적인 발전은 이러한 부와 능력을 가진 인력들이 미국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추가로 막스 베버는 또한 재미있는 견해를 내어 놓았는데요. 이들의 검소한 생활과 열심히 일하는 태도는 신뢰를 만들어 내는데 신뢰를 통해 투자를 유치하여 부를 만들어 내는데 탁월하였고 이런 투자를 기반으로 사업을 일으켜서 부자가 된 이들도 많았다는 것도 함께 설명해 놓았습니다. 







칼뱅주의 신앙적 보완의 필요



칼뱅의 예정론은 정치적으로 많은 영향을 미쳤을 뿐 아니라 신앙적으로 사람들의 패러다임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당시 이들의 신앙은 정치, 사회, 생활에 밀접한 관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중의 예정론 은 아직까지도 많은 논의가 되고 있는 주제입니다. 이미 사후세계가 결정되어 있느냐 아니면 인간의 의지로 사후세계가 결정되느냐는 문제인데 한국의 교파 사이에도 많은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이슈의 핵심은 예정론의 대표적인 것이 '한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 이냐라는 것과 예지 예정 즉 '구원은 예정되어 있지만 사람의 자유의지에 그 결과를 맡기셨다."라는 것입니다.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전자는 사람들이 나중에 타락을 하여도 한번 구원을 받았기에 천국에 갈 수 있다는 부끄러운 구원이며, 후자는 한번 구원받은 사람일지라도 죄를 지으면 구원이 취소될 수 있기에 지속적으로 자신의 구원을 지켜 나가며 거룩을 지켜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 주제는 큰 주제이기에 많이 다루지 않고 예정론의 오류를 잡아주는 사랑하는 교회 담임이신 변승우 목사님의 책 '예정론의 최고난제  토기장이의 비유 풀이'에 해당 성구와 함께 잘 나타나 있습니다. 


       


        예정론의 최고난제 토기장이의 비유풀이!저자변승우출판펜립발매2019.03.25.




예정론이라는 것은 신이 절대주권으로 예정되어 있기에  미래는 결정되어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러한 예정론은 당시 가톨릭의 부패와 사람들의 미신적인 것에 의존하는 문화를 철폐하는데 큰 공을 세웠습니다. 하지만 신앙적으로 예정론은 성경적이지 못하였습니다. 신이 절대주권으로 사람들이 복종해나가는 것은 기독교라기보다는 오히려 이슬람문화에 가까운 것이었습니다. 




또한 현대 개신교 신앙에 교리로 들어와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고 "한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는 예정론의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이는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신앙을 가진 사람들을 한번 믿음을 가진 경험만으로 구원받았다는 확신 속에 살아가게 만드는 여지를 만들었습니다. 물론 신실한 크리스천들이 있지만 많은 이들이 신앙의 여정에서 중도 포기하며 기복 신앙적 구원으로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칼뱅주의의 유산이 지금까지 내려온 것이고 개신교의 교리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교회 변승우 목사님은 토기장이 비유 풀이를 통해 칼뱅의 예정론을 비판하고  하나님의 사랑과 각 사람의 자유의지를 존중해 주는 "예지예정론"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성경적으로 칼뱅의 오류들을 정리하여 재해석하였습니다. 사회에서 그리고 개혁을 위한 교리라 할지라도 성경적 진리는 변할 수 없는 것이기에 칼뱅의 교리보다 성경이 무엇을 말하는지에 크리스천들은 더 집중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마틴루터의 소명의식과 이를 확장시킨 칼뱅의 프로테스탄트보다 바울의 소명의식을 관찰하며 바울이 어떤 소명의식을 가지고 일했는지를 보며 성경적인 직업윤리를 되짚어 볼 수 있습니다. 기독교인이라면 이 부분은 한번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교회에서 직접 성경과 역사를 자세하게 알려주지 않을뿐더러 이에 관심 가지고  배우려고 하지 않는 태도는 맹목적인 신앙을 낳게 됩니다. 이것이 현시대의 개신교의 문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21세기 자본주의를 위한 자본주의 정신의 적용 



이제 마무리를 지어야 할 것 같습니다. 자본주의라는 것은 시대적인 사회, 경제, 종교, 문화 등의 요소에 맞춰 변화되고 진화되어 왔습니다. 같은 자본주의이면서 과정과 결과가 나라마다 다른 이유는 이러한 것이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자본주의의 핵심에는 마르크스가 말한 자본가와 노동가만 있다고 하기에는 시대가 너무 많이 변화하였습니다. 요즘은 IT 기술로 들어서면서 자본가는 오히려 노동가를 유치하기 위해 오히려 반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노동자라는 개념은 이제 사회에서 쓰이기에는 야만스러운  지식사회가 되어 버렸습니다. 



자본주의는 분명 개인의 재능을 통해 나라와 개인, 조직에 부를 창출해 주는 시스템인 것을 역사적으로 보아 왔지만 그것에 대한 문제들은 아직까지 풀리지 않은 것들이 많이 있고, 어쩌면 시대에 따라 문제의 형태가 달라지는 것은 영원히 풀어야만 하는 과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무엇보다 기억해야 할 것은 자본주의의 정신을 이어나가는 것과 시대에 맞게 그것을 풀어나가는 것이 그 시대의 과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미국의 현재 자본주 의자들의 리더들 '보보스' 


2001년에 출간된 재미있는 책이 있습니다. '보보스'라는 책은 미국의 자본주의를 통해 얻은 부르주아와 속세를 떠나 관습이나 규율 따위를 무시하고 사는 보헤미안을 합친 말입니다. 



       


        보보스저자데이비드 브룩스출판동방미디어발매2001.01.01.




초창기 미국에서 자본주의는 국부들의 위대한 철학과 정신을 이어받아 미국에서 부를 창출하고 각 분야에서 영향력을 펼치고 있었습니다. 그러는 과정에서 보헤미안들이 자본주의 사상에 반항을 하였습니다. 그들은 돈 많은 일벌레보다 자기의 꿈을 자유롭게 추구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한 것이었고 이러한 사상은 대학가와 청년들에 퍼지고 가난한 도시로 몰려들어 예술적인 공동체와 운동을 시작하였습니다. 



이들이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히피' 족입니다. 긴 수업과 긴 머리를 하고 질서에 도전하고 문란한 성생활을 하며 퇴폐적인 행위를 하며 창의성, 반항, 새로움, 자기표현, 반물질 주의, 강렬한 열정, 독특한 감정, 특별한 행위 등을 추구했습니다. 이들은 자기만의 세계관을 추구해 나갔고 기존의 부르주아와는 큰 문화전쟁을 벌여 왔습니다. 



물론 이러한 문화전쟁에서 부르주아들이 오랫동안 일방적으로 승리해 왔지만 1960년대와 1970년대가 되면서 보헤미안의 반격이 시작됐습니다. 대학가에서 히피 문화를 대부분 한 번쯤은 경험하고 사회에 나온 이들은 정치와 경제분야에서 세력을 넓혀 갔습니다. 



실리콘밸리를 이끄는 벤처기업가들과 월가의 금융전문가들도 1960년대와 1970년대 보헤미안 스타일에 흠뻑 젖어 있던 사람들입니다. 



자본주의 지식인들은 이러한 사회에서 자본주의는 무너질 것이라 생각하였지만 기존의 자본주의 세력인 부르주아와 새로운 문화의 보헤미안은 적절히 균형을 이루어 가며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냈습니다. 이것이 바로 '보보스'입니다. 



그래서 지금의 우리가 알 수 있듯이 실리콘밸리 사업가들은 부를 벌어도 권위적이지 않고 전통적이지 않으며 수평적이며 자유로운 문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높은 위치에서 아랫사람을 경멸하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일들을 즐기며 사는 것입니다. 즉 이들은 보헤미안의 상상력과 창의성을 기업의 이윤에 적절히 결합시켜 나갔습니다. 



현재의 정보사회에서 IT 가 글로벌화되면서 보헤미안의 상상력에 나오는 아이디어와 부르주아의 비즈니스 기질이 결합하여 컴퓨터 산업을 주도하는 정보사회의 엘리트들이 바로 현재의 '보보스'입니다. 이들은 지속적인 변화, 최대한의 자유, 젊음의 열정, 진본적인 실험, 전통의 타파 등 새로운 것의 추구 등으로 기업 이윤과 연결시키는 방법을 찾았습니다. 



미국의 자본주의의 형태는 이러한 것이 새로운 형태를 가지고 왔습니다. 







한국의 자본주의 문화의 수준은? "현재 어떤 자본주의를 추구하는가?" 



자본주의는 생산으로 이루어진 생산 자본주의, 거래로 이루어지는 상업자본주의, 금융 이윤을 추구하는 금융자본주의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7080 세대에 생산 중심의 수출무역을 중심으로 나라를 성장시키고 점점 상업자본주의를 만들어 가며 금융자본주의를 형성하였습니다.  현재 자본주의를 옹호하면서도 비판하는 이들의 목소리는 우리가 미국을 롤 모델로 자본주의의 껍데기만 가지고 왔다는 것입니다. 


즉 자본주의의 정신이 없이 자본주의를 키워온 결과 부패와 부정 그리고 사회적 불평등을 야기하고 있다고 합니다. 



분명 6.25 전쟁 이후 남한과 북한이 갈라지고 소련의 원조를 받으며 사회주의로 성장한 북한은 그전까지 남한보다 우수했지만 현재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낙후되었습니다. 반면에 남한은 미국의 원조와 모델링으로 세계 강국에 들어서고 선진국 대열에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사회적인 요소와 문화적 갈등은 점점 커지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특징들을 보면 역사 속의 자본주의 국가들의 성장 뒤에 고민이 우리에게도 남아 있는 듯합니다. 물질 만능주의로 빠진 사람들의 인식과 자신의 소명과 사명을 다하지 않고 직업에 오직 이윤의 창출로만 보는 문화는 분명 사회적으로 문제인 것이고 이러한 부분은 개혁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지난 코로나로 금융에 눈이 뜨인 청년들은 투자시장에 관심 가지며 금융자본주의를 동경하며 주식, 부동산 등 일을 통한 수익보다 더 추구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직업이 될 수는 없는 것이라 봅니다. 분명 이것을 전문직으로 하는 것이면 모르지만요. 



사회에서는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는 수단 중의 하나가 직업이고 직업은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상품, 서비스를 제공하며 벌어들이는 가치교환입니다. 이것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발견하게 됩니다. 직업을 통해 자신의 지식, 가치, 재능 등을 창출하며 사회에 기여하고 자신이 살아가고 그 나라에 기여를 하게 됩니다. 작은 단위의 합은 전체의 합으로 곳곳에서 일어나는 작은 가치가 전체의 가치를 만들어 냅니다. 



한국 사회에 스타트업 열풍이 불고 있는데 자칫 위험한 것은 이것을 통해 로또복권처럼 수익을 창출하는 방식으로 접근한다면 사회적으로 큰 리스트를 지게 됩니다. 스타트업의 목적은 가치 있는 사업을 육성하고 청년들의 재능에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성공에 따라 일자리 창출이라는 기여도 할 수 있고 세금으로 국가와 지역에 기여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것을 단지 물질적인 것으로 접근한다면 문제가 되겠지만 장기적인 지속도 어려울 것이라 봅니다. 







마무리 - 자본주의 시대의 미래의 리더상 '브살렐과 오홀리압' 


자본주의는 나라와 개인의 부를 만들어 주는 효과적인 시스템이고 역사적으로 증명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자본주의가 발전할수록 사람들의 이기심과 부정부패로 인하여 문제를 발생하게 됩니다. 이러한 것을 역사에서는 자본주의 정신으로 해결했습니다. 



막스 베버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자본주의에 자본주의 정신이 깃들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기독교 세계관을 통해 이웃사랑이 실천되는 사회여야지 자본주의 사회가 성장하여도 문제가 없음을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또한 직업에 대한 윤리 즉 소명에 대한 분을 가지고 사회 구성원이 임하여야지 건강한 사회가 형성되는 것과 효과적인 분배와 역할이 작동한다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기업교육에서 왜 직업윤리를 교육해야 하는지 그리고 기업윤리가 기업의 부를 만들어 준다는 것을 보여주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기업에서는 기업의 인재상, 기업문화, 기업철학을 넘어 각 개인의 꿈과 비전을 심어주는 것 자체가 거시적으로 전체의 부를 창출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신앙적인 부분으로 인해 정직하고 검소하며 남을 배려하며 사랑으로 이끌 수 있는 것 또한 부를 창출하는 데 영향을 미칠 수 있고요. 막스 베버의 관점은 국가적 자본주의뿐 아니라 기업적 자본주의 접근에 많은 시사점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현재의 어떠한 롤 모델이 필요하다면 성경의 브살렐과 오홀리압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내가 유다 지파 훌의 손자요 우리의 아들인 

브살렐을 지명하여 부르고 ...

... 내가 또 단 지파 아히사막의 아들 

오홀리압을 세워 그와 함께 하게 하며 

지혜로운 마음이 있는 모든 자에게 내가 지혜를 주어 그들이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을 다 만들게 할지니"

(출 31:2, 6)



브살렐과 오홀리압은 당시 기술자였습니다. 브살렐은 지혜와 총명과 지식과 다양한 재주로 여러 가지를 연구하고 생각하여 금, 은, 놋으로 만드는 것과 보석과 나무를 깎고 조각하는 것을 하였습니다. 오홀리업은 여러 조력자들과 함께 회막과 기구들과 제사장 예복들과 관유와 향을 만들었습니다. 이 모든 일은 그들이 지혜롭고 뛰어난 것도 있지만 하나님의 영이 그들에게 가득하였고 합니다. 


바로 영감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영감은 그들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따르는 기술자들에게도 큰 영감과 감동을 주어 일을 하나 되게 하고 탁월한 것들을 만들어 내었습니다. 



2021년 코로나로 인하여 비대면이 길어지며 온라인화가 보편화되었고, IT 개발자들의 몸값이 상승하였습니다. 이전의 사업의 방식과도 많이 달라져서 기술과 아이디어만으로도 시작할 수 있는 스타트업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이때 하나님의 영감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정직하고 탁월한 영적 리더가 이 시대 자본주의 사회의 정신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우리나라의 필요한 리더는 탁월한 리더를 더하여 정의롭고 사랑이 많은 리더가 자본주의 모델이 되길 기대해 봅니다. 






<강의 요청> 


이 글은 자본주의를 이해하는 과정으로 교육으로 구성될 글입니다. 막스 베버의 자본주의 이해를 위한 강의는 1시간~2시간 구성으로 진행 가능합니다. 


강의문의 : 010-9004-7602

EMail : tribesleader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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