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윤 Sep 01. 2019

벌레의 빛

어둠 속에서 빛에 관해 쓰는 사람의 마음은


벌레의 빛

야근이 끝나고 회사 옥상 흡연구역에서 담배를 피운다. 이미 밤이 되었고 주변에 조명이라곤 없어서 휴대폰 플래시를 켜고 더듬더듬 옥상 벤치를 찾아 앉는다. 그때 날벌레 한 마리가 빛을 향해 뛰어든다. 나는 손을 휘휘 내저으면서 날벌레를 내친다.

벌레들이 빛을 따라가는 이유는
출구나 피난처를 찾기 위해서라고 한다.

벌레들에게는 온 세계가 재난일까. 아니면
간신히 출구를 찾았지만 내쳐지는 상황이 더 재난일까
나는 플래시 빛을 끄고 담뱃불에 의지한다. 살아있는 누구도 빛에 이끌리지 않도록.

너는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이지. 애인은 내게 말한다.
나는 ‘누가 다정하면 죽을 것 같았다.’로 시작되는 시를 안다.

벌레들이 빛에 이끌리듯 나는 유려하고 매끈한 다정함에 쉬이 이끌린다. 빛이 자신의 빛을 볼 수 없듯, 다정함은 자신의 얼굴을 보지 못한다. 자신이 어떻게 웃고 있는지, 어떻게 웃어서 울리는지.

그 유려한 다정함에 나도 모르게 마음이 기울어져, 기울어진 마음에 미끄러져 자주 다친다는 것도, 다정은 모른다.

애인은 입버릇처럼 말한다. 나는 그 누구에게도 기대치가 없고 너에게도 없다고. 길을 가다가 누가 내 뺨을 때리면 그 사람은 애초부터 내 뺨을 때리기 위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그러던 애인이, 너는 사람을 왜 기대하게 만들어놓고 이렇게 구냐고 화를 냈을 때. 그때 나 혼자만 가졌던 은밀하고 독한 빛.
사람이 사람을 죽일 수도 있는 빛.

지난 두어달간은 회사에서 사람 취급을 못 받았다.

얼마 전 ‘사람, 장소, 환대’라는 책을 읽었다. 사람이란, 인간과는 명백히 다른 범주. 어떤 (도덕적) 공동체에 소속되어 그 공동체의 ‘성원권’을 획득하는 게 사람이라고. 그러나 그 공동체는 도덕적이지도 않았고 나는 성원권을 얻지도 못했다.

밤마다 스탠드 불빛을 켜놓고 일기를 쓰면서 조금씩 자주 울었는데 그때도 나는 스탠드 불빛을 향해 달려드는 벌레들을 내쫓고 있었다.

그러던 공동체의 사람들이 가만히 내 어깨에 손을 얹고 지나갈 때 나를 언니라고 불러줄 때 손에 사탕이며 젤리를 한 움큼씩 쥐어줄 때 점심시간마다 커피를 마시며 수다를 떨 때를 나를 향해 잘했다고 웃어줄 때 나는 습관처럼 사람을 좋아해볼까, 하다가도 과거의 일기를 복기하면서 유려한 다정에 다치지 말아야지. 생각한다.

빛이 자신의 빛을 모르듯
다정이 자신의 다정을 모르듯
빛이 자신의 뜨거움을 모르듯
다정이 자신의 잔혹함을 모르듯

누구에게나 벼랑 같은 얼굴이 있어서 우리는 서로의 벼랑을 맨 몸으로 오르고 마침내 벼랑 끝에 서서, 발끝을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작은 돌조각들이 밑을 모르는 밑으로 떨어지는 높은 벼랑 위에 서서, 우리는 비로소 그 사람의 조감도를 그린다. 그이의 질곡이나 단 샘물, 깊은 숲이나 메마른 사막, 축축한 이끼같은 것들을.
그러나 유려한 다정함은 그런 부분들을 감추어버린다.
오로지 다정밖에 없는 얼굴로 웃으면서.

벌레들은 빛을 향해 뛰어들고
나는 당신의 벼랑으로 기어 올라가는 게 두려워
피난처같은 다정함으로 뛰어들지

어째서 사람은 신 아니면 사람을 구원으로 삼는 걸까?
그렇다면 사람이 신이 되는 걸까?
인간됨이 지워진 신, 메마른 샘물, 꽃 피는 사막, 불타는 눈과 얼음이 지워진 신은
너무 밝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빛처럼 사람을 뛰어들게 만드는 걸까?
경전을 쓰는 사람은 죄다 눈이 멀어버린 걸까?
그 사람도 누군가에게 또 다른 빛이 될까?

모든 빛을 끈 채로 글을 쓴다.
 암순응에 적응하지 못한
 나는 차라리 눈을 감는다.

  이렇게 흐트러진 글자라도,
  흐트러진 마음이라도
 감싸 안아주는 다정이 있다고 한다면
  언젠가 그 다정이 나를
      내쳐버릴 것이라는 것도 알아.

눈 감으면 눈 감은대로 어둠 속에서
 눈 뜨면 눈 뜬 대로 어둠 속에서

      빛과 다정에 관하여
      쓰는 사람의 마음은

작가의 이전글 어디서부터 이야기하면 좋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