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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윤 Sep 17. 2019

천국

사랑은오래참고사랑은온유하며



우리집 빌라 1층에 신당의 간판이 붙었을 때 모친은 말 그대로 뒤로 넘어갔다. 트럭에 실린 불상이 안으로 옮겨지는 것을 본 모친은 그날부터 교인들에게 중보기도를 요청했다. 여러 사람이 힘을 모아 타인을 위한 기도를 하는 것. 모친은 온 교인들의 힘을 빌렸다. 마치 그때처럼, 내가 열 일곱살 때, 손목을 긋고 드러누워 있을 때 교인들이 좁고 어두운 내 방에 모여 너덜거리는 손목을 잡고, 이봐요. 나는 지금 손목이 아프다구요. 중얼거리다가 소리지르고 울고 마침내 입안에서 형언할 수 없는 소리가 터져나오던 그 순간을.

1층 신당에서 울리는 북소리는 4층 우리집 바닥까지 올라와 진동한다. 밤 11시가 조금 넘었는데도 한창 굿을 하는 중이다.

모친의 아버지는 일을 하지 않고 술만 마시다 유명을 달리한 희대의 놈팽이, 취미로는 점사를 봐주는 일을 했다. 허름한 집에 나름 신당이라고 꾸며 놓은 조잡한 불상과 탱화. 술이 오르면 자기가 꾸며 놓은 신당을 죄다 박살내버린다. 또 박살낼 것을 찾는 모친의 아버지. 모친은 자신의 머리통을 지키기 위해 맨발로 뛴다.
탱화 속 얼굴이 모친을 쫓는다.
모친은 신실한 주의 자녀, 20여년 전 주를 영접한 이후 단 한번도 주일예배에 빠진 적이 없다. 그녀의 둘째딸이 어렸을 때 크게 앓아서 죽을 뻔 했었는데 교회에 나간지 한달만에 깨끗하게 나았다. 그때부터 모친은 신실한 주의 자녀. 그리하여 자신의 자녀도 복음 속에서 주의 자녀로 키워내려 노력했겠지.

모친은 내 뺨을 자주 때렸다. 다른 곳도 아니고 유난히 뺨을 자주 때렸다. 그곳을 맞는 게 가장 모멸감이 든다는 것을 잘 아는 것처럼, 모친 역시 뺨을 많이 맞아봤을까?
교회에 같이 다니던 남자애는 이유 없이 내 얼굴을 발로 걷어찼다. 이유를 물었다. '네가 우는 걸 보고싶어서.' 나는 자주 맞아서, 나는 울지 않았으니까. 교회에 가고싶지 않다고 했을 때도 모친은 내 뺨을 갈겼다.
이 씨발, 또 얼굴이네.

얼굴, 내 얼굴. 동생이 얼마 전 보내준 진나라 불상의 얼굴, 언니를 꼭 닮았다. 자고 일어난 언니 얼굴 같다.
우리 신실한 믿음의 자녀의 자녀는 우상의 얼굴을 닮았고 석가탄신일 근처에 태어나 가끔은 석탄일과 생일이 겹치기도 하고 가끔 길상사니 화계사니 들려 절을 하고 몰래 반쪽짜리 사주를 보러 다닌다. 모친에게 태어난 시간을 알려달라고 했을 때 돌아온 대답은,
너 진짜 나쁜 년이야.
나도 알아.

나쁜, 나쁜 년, 나쁜 신. 나는 신을 믿는다. 이 믿음은 변한 적이 없다. 다만 신은, 내가 믿는 신은 자신을 믿는 사람처럼 아프고 나쁘고 더럽다고 믿는다. 깃털같은 손장난에 누군가가 죽고 다치고 당신이 누군가에게 미소를 띄며 치유의 은사를 내릴 때 누군가는 뺨을 얻어 맞고 입안이 터지고 세계가 망하는 건 당신이 은수저로 푸딩을 한 입 떠먹는 것만큼 간단한 일이지?

나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널 저주해.

모친의 저주일까, 신의 저주일까.

네가 네 곁으로 지나갈 때에 네가 피투성이가 되어 발짓하는 것을 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 다시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 하고 (에스겔 16:6)



당신, 자꾸만 고의로 나를 살리는 거지?

북소리가 거세지고 방울소리가 들린다. 곧이어 향냄새가 올라올 것이다. 얼마 전 양키캔들을 샀다. 미드나잇 자스민 향, 모친은 양키캔들의 향마저 1층 신당의 향을 연상케 한다며 진저리를 친다. 나는 향냄새가 나쁘지 않다. 퇴근 후 자욱한 향냄새를 맡으며 터벅터벅 올라가는 어두운 계단 속.

모친은 믿음을 바탕으로 무엇을 빌었을까. 은사를 내려달라 빌었겠지. 내 인생의 순항을, 나의 건강을, 내 믿음의 회복을, 나의 복됨을 빌었겠지. 굿을 부탁한 사람들은 1층 안팎을 자주 드나들며 담배를 피우고 꽁초를 집 앞에 버린다. 나도 묻어가며 담배를 피우고 꽁초를 버린다. 나는 아무것도 빌지 않지만 매일 거의 모든 것을 비는 마음으로 살아간다. 오늘 하루도 무사히 눈을 뜨거나, 아예 눈뜨지 말게 해주소서. 한때라도 나의 고백을 스치듯 들은 자들이 어디선가 행복하게 살거나 죽어버리게 해주소서. 저들의 복을 비는 마음과 모친의 복을 비는 마음이 같다면 신당과 교회에는 도대체 무슨 차이가 있는 거지? 스스로의 믿음을 강건히 세우는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를 끝없이 비는 마음, 그 위에 세워진 십자가는. 1층에는 신당이 있고 그 위 4층에는 신실한 주의 자녀가 산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고린도전서 13:4-7)



북소리와 함께, 북소리처럼 들리는 발소리. 맨발로 쫓기는 어린 모친을 상상한다. 모친의 아버지가, 탱화의 얼굴이, 그 두개가 뒤섞인 얼굴이, 나락의 얼굴이 모친을 뒤쫓는다. 나는 그 두려움을 거의 내 것처럼 상상할 수 있다. 나는 비슷한 얼굴을 자주 보았다. 십자가를 지고 피를 흘리면서 나를 뒤쫓는 얼굴을.
대를 이어.

가끔 1층으로 점사를 보러가고 싶어진다. 아무도 몰래, 발소리를 죽이고. 당신의 신은 누구인가요? 나쁘고 아픈 신인가요? 아기동자? 맥아더 장군신? 누구라도 좋으니 제 물음에 대답을 해 주세요.

천국에는 도대체 누가 갑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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