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채화를 그리는 나
수채화를 그리는 나
– 모든 일은 결국 연결되어 있다
무대 위에서 노래를 부를 때, 나는 세상과 단절된 고요한 중심에 선다. 조명은 눈앞을 흐리게 만들고, 관객들의 표정은 어렴풋한 빛 속에 녹아 흐른다. 그러나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것은 분명한 한 줄기, 나의 목소리다. 감정을 실어 보낸 음 하나하나가 누군가의 마음에 닿기를 바라며, 나는 소리를 그린다. 그렇게 노래하는 순간마다, 나 자신은 하나의 선이 되어 이 공간을 유영한다.
나는 노래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이제는, 수채화를 그리는 사람이기도 하다.
처음 그림을 그리려고 앉았을 때, 나는 그 고요함이 낯설면서도 어딘가 익숙했다. 소리가 없다는 점에서 달랐지만, 붓끝에 집중하는 감각은 무대 위의 긴장과 묘하게 닮아 있었다. 종이에 물을 적시고, 맑은 색 하나를 떨어뜨리는 일은 어쩐지 한 음을 조심스럽게 꺼내는 일과 비슷했다. 예측할 수 없다는 점, 완벽하게 조절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말이다.
수채화는 언제나 예상과 다르게 번진다. 물이 흘러가고, 색이 따라가며, 그 둘이 만나 또 다른 형태를 만든다. 나는 그저 시작했을 뿐인데, 그림은 나의 통제를 벗어나 살아 움직인다. 그리고 그 모습이, 무대 위에서 내가 만나는 음악과 너무도 닮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악보 위의 음은 분명 정해져 있지만, 그날의 공기와 몸의 상태, 마음의 파장에 따라 같은 곡도 다르게 흘러간다. 때론 감정이 넘쳐 조율을 잊고, 때론 절제 속에 더 깊은 울림을 남긴다. 나는 그런 날들을 경험해왔다. 철저한 연습과 이성 위에서 만들어졌지만, 결국 사람의 숨결이 더해지며 진짜 음악이 되는 그 순간들. 마치 종이 위의 물감이 의도를 넘어서 퍼져나가듯, 나의 노래 또한 그런 흐름 속에 살아 있었다.
그렇게 나는 하나씩 깨달았다.
내가 하고 있는 모든 일들은 서로를 닮아 있었고, 결국에는 하나로 이어져 있었다는 사실을.
수채화를 그리며 나는 기다림을 배운다. 색이 마르기를, 번지기를, 자기 자리를 찾아가기를. 그리고 그 기다림은 무대 위에서 나를 더욱 섬세하게 만든다. 급하지 않게, 한 음 한 음에 마음을 머무르게 한다. 그림을 그릴 땐 내가 얼마나 성급한 사람인지 알게 되고, 노래를 부를 땐 내가 얼마나 감정에 솔직한 사람인지 마주하게 된다. 서로 다른 행위들이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 된다.
또한 수채화를 그리는 시간은, 노래하지 않는 시간 속에서도 내가 여전히 ‘예술가’로 존재하고 있다는 위로가 되었다. 무대가 없을 때의 공허함, 공연 후 찾아오는 침묵의 시간, 그 속에서 그림은 나에게 또 다른 언어가 되어주었다. 아무에게도 들려주지 않아도 되는 표현, 조용히 스며들고도 분명히 존재하는 색의 언어. 그것은 무대에서 내려온 나를 다시 숨 쉬게 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나를 하나의 정체성으로만 정의하지 않는다.
나는 노래하는 사람이고,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며, 때로는 글을 쓰는 사람이다.
내가 경험한 모든 감정들과 시간들, 그것들은 다르면서도 결국 한 몸처럼 연결되어 있다.
나는 수채화 속에 나의 소리를 담고,
노래 속에 나의 색을 담는다.
내가 살아온 길 위에는 늘 감정이 있었고, 그 감정은 늘 형태를 찾아 나왔다.
때로는 음으로, 때로는 선으로, 때로는 말로.
삶은 그렇게 우리를 계속해서 연결된 존재로 만들어간다.
우리는 모두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을 표현하며 살아가고 있고,
그 모든 표현은 하나의 뿌리에서 자라난다.
어쩌면 삶의 아름다움은 그 연결성에 있는지도 모른다.
서로 다른 조각들이 이어져 하나의 큰 그림을 이룰 때,
비로소 우리는 ‘나’를 이해하게 된다.
노래하듯 그림을 그리고, 그림을 그리듯 노래를 부르며, 나는 오늘도 나를 그려나간다.
물처럼, 소리처럼.
스며들고, 번지고, 흘러가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