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쓴 마음은 왜 굳이 인정받고 싶을까
<애쓴 마음은 왜 굳이 인정받고 싶을까?>
직장에서 맡은 업무 중 하나로
조직문화 개선과 직원 격려를 위한 행사를 기획하게 됐다.
가만히 있어도 지치는 더위 속,
매일 쏟아지는 업무에 지쳐 있는 직원들이
잠시라도 웃고 쉴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작은 디테일까지 하나하나 챙기며 준비했다.
다른 일도 바쁜데
뭘 그렇게까지 하냐는 말이 나올 만큼
소품 하나, 간식거리 하나, 프로그램 구성까지
진심을 담아 꼼꼼히 신경 썼다.
단순히 보여주기 위한 행사가 아니라
‘직원들이 진심으로 즐겁게 느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다행히 행사는 꽤 성공적이었다.
많은 직원들이 웃고, 즐기고, 고맙다고 인사해 주었다.
그 반응들 덕분에 며칠 간의 피로가 눈 녹듯 사라졌다.
그런데,
모든 걸 마무리하고 한숨 돌리려는 순간
들려온 말 몇 마디.
“이건 왜 이렇게 했어?”
“그건 좀 빠졌네.”
“앞으로는 이런 것도 신경 좀 써야지.”
사소한 부분을 손쉽게 지적하는 말들.
그 안에 담긴 무심함이
내 마음에 조용한 금을 냈다.
꼭 칭찬을 바랐던 건 아니지만
모두가 만족할 거라 기대한 것도 아니었지만
그 순간, 마음 한구석이 서늘하게 식어버렸다.
며칠이 지나도 그 말들이 자꾸 떠올랐고
나는 나에게 질문하게 됐다.
‘왜 이렇게 속상할까.’
‘충분히 애썼다고 생각하면서도
왜 아직도 누군가의 인정이 그토록 간절할까.’
이건 실적을 위한 일이 아니었고,
‘이 정도면 잘했다’는 자기 위안도 충분했는데,
어쩌다 이런 말 한마디에 마음이 이렇게 오래 남아 있을까.
어른이 되면,
이런 감정 따윈 자연스레 사라질 줄 알았다.
하지만 여전히,
무심한 말 한마디에 마음이 쿵 내려앉고
수고를 알아주는 시선 하나에 금세 다시 일어선다.
그런 마음이 부끄러워
애써 무뎌진 척 했던 날들도 많았다.
그런데 이젠 안다.
내가 인정받고 싶었던 건
잘했다는 말이 아니라,
애쓴 마음을 알아봐 주는 ‘따뜻한 눈’ 하나.
그 눈이 없다면
이젠 스스로 그 눈이 되어주려 한다.
누구보다 열심이었던 나를
내가 먼저 인정해주기로.
그 마음이 진심이었다는 걸,
가장 잘 아는 나 자신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