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년이 되었지만 아직 어리다에 더 가까운 스무 살에 우아한 어른의 세계 같았던 홍차를 몰래 탐닉하려다 쓴맛을 맛봤고, 10년이 지나 서른이 되었을 때 난 다시 홍차를 접하게 되었다. 그동안 홍차는 마실게 못된다며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았는데 무슨 이끌림이었을까?
그 당시 난 벌써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있었다. 입을 수 있는 것이면 옷이라고 대충 걸치고 머리는 묶는 것도 귀찮아 단발을 유지하며 꾸미는 것은 둘째치고 나를 돌볼새 없이 육아에 치여 정신적으로 몹시 지쳐있었다. 순둥 했던 큰 아이와 달리 예민이 뭔지 보여주겠다고 작정하고 세상에 나온 작은 아이는 정확히 17개월 동안 제발 3시간만 자봤으면 소원이 없겠다 싶게 잠은 잘 안 자고 울기는 잘 울었다.
산후우울증이 있었던 큰애 때와 달리 두 아이를 돌보며 매일이 아이의 울음소리로 나 홀로 전쟁을 치르며 정신없이 사니 우울증이 오는지 가는지도 모르고 하루하루를 그저 버텨냈었다. 첫돌이 지날 때까지 유모차를 절대 안 타던 작은 아이가 유모차를 타기 시작하며 장보기가 조금은 수월해졌을까. 그땐 큰아이가 어린이집에서 오기 전 햇살 좋은 낮시간에 유모차를 끌고 마트 한 바퀴 도는 것이 하루 중 유일한 낙이었다.
어제가 오늘 같고 그날이 그날 같았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난 어김없이 마트 한 바퀴를 돌고 있었는데 누군가 나를 이끌어 홀린 듯 홍차 한 상자를 카트에 담았고, 소중한 인생친구를 만나는 순간이었다. 홍차 하나에 무슨 인생친구 까지냐 할 수도 있겠지만 세월이 많이 흘렀어도 여전히 그날 홍차를 샀고 차를 스무 살을 기억하며 차를 마셨다는 것이 잊히지 않으며, 때로 차에게서 사람보다 더 진한 위로를 받으니 당당하게 인생친구라 할 수 있다.
그날 카트에 담았던 홍차는 스리랑카 브랜드인 아크바 얼그레이였다. 상자의 비닐 포장을 뜯으며, 10년 전 옐로라벨을 마셨던 기억이 되살아나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이것도 맛이 써서 버리는 거 아닌가 싶었다. 아이가 낮잠에 들자 홍차에 대해 검색하다 3분을 우리고 티백을 건져내라는 글을 보았다. 전기포트에 물을 끓이고, 머그컵에 물을 부어 티백을 넣어 3분을 기다렸다. 3분을 기다린다라.. 가만히 차가 우러나는 것을 지켜보며 시간이 흐르기를 기다리는 그 순간이 왜 이리 설레던지.
그동안 티백이라면 현미녹차가 다였고 차를 다 마실 때까지 티백을 건져내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생각했었다. 일정 시간을 우린 후 티백을 건져 내라는 것은 뭔가 중요한 의식을 치르는 기분이 들었고 3분이 다 되어갈수록 내가 나를 대접해 주는 것 같았다. 그저 3분을 기다렸을 뿐인데 대충 티백차 한잔이 아니라 티팟에 정성으로 우려낸 고급 차를 대접받은 기분.. 그래서 난 그날이 잊히지 않나 보다.
3분은 아주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나를 케어하는 시간이었고, 과하게 우리지 않은 티백은 불필요한 쓴맛은 없이 깔끔한 차 한잔이었다. 그때 그 스무 살은 이제 어른의 흉내가 아니라 그 보다 더 쓰다 해도 받아들일 수 있는 어른이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