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0년

동지가 된 지

by 착길


10일 후면 결혼해서 함께 산 지 10년이 되네.

이렇게 빨리 올 거라 예상 못했지? 나도 그래. 그 사이 우린 두 아이의 부모가 되었고 그들 덕분에 매일매일이 새로워서 지루할 틈이 없지. 나와 너로 만나 1년 반 만에 결혼하고, 다시 1년 반쯤 지나 세 식구가 되고부터 우린 정신없이 함께 할 수밖에 없었니. 언제쯤 우리의 하루를 나의 하루를 돌아볼 여유가 생길까 아득하지만, 인생 선배들의 말씀으로는 금방이다 갑자기 찾아와서 어리둥절할 거라 겁을 주시기에 그냥 막 이 순간에 감사하고는 있어. 당신도 그래?


물과 공기 같은 그런 느낌을 주는 사람이었어. 전에 살짝씩 만나 본 남자들은 만날수록 불편하고 가까워질수록 슬픈 기분이 들었는데, 당신이랑 같이 있으면 편안하고 좋고 또 함께 하고 싶은 이전엔 느껴보지 못한 기분이 들었어. 무엇보다 내 얘기를 즐겁게 들어준 게 호감을 키웠지. 눈이 하늘에 있는지 땅에서는 내 사람이 없을 것만 같던 젊은 시절을 보냈는데 갑자기 당신이 나타났어. 그래서 참 신기하고 그래 그때가. 우리가 만나지 않았으면 아직 혼자였을 거란 기분이 드는 건 나만일까.


결혼 전엔 당신도 밤에 깨어 있기를 좋아하는 사람인 줄 알았어. 난 달밤을 유난히 좋아했어. 깊은 밤에 정신이 더 맑아지거든. 새벽 3시에 태어난 때문일까. 당신이 밤늦게 통화할 때 내 이야기를 잘 들어줬잖아. 다 마음에 새길 듯이 호응해줬고. 근데 함께 살아보니 낮이건 밤이건 머리만 댔다 하면 바로 쿨쿨이네. 살짝 소름이 돋았어. 깊은 밤에 했던 내 깊고 깊은 이야기들이 한 귀로 들어가 다른 귀로 빠져나가버렸을지도 모를 거라는 생각에. 당신만은 그걸 다 듣고 조금은 이해하면서 나를 감당해줄 것만 같았거든. 그만큼 난 나에게도 버거운 존재였어. 김광석의 <내 사람이여>의 주인공이 되고 싶었는데실에선 어렵다는 것도 알게 됐지. 그때 했던 IMF 때 우리 집 고난 이야기를 처음 듣는 것처럼 매번 흥미롭게 들어줘서 나도 모르게 다시 하고 또 하고 하는 덤 앤 더머 부부가 됐지만, 이젠 그러려니 해. 내가 한 이야기를 정확하게 다 기억하는 게 더 섬뜩하겠구나 싶어 졌거든. 내가 가끔 통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면 곁에 와서 같이 해줄 거란 로망이 산산이 부서지게, 곁에서 드르렁 코를 골며 잠에 빠지는 당신. 내 노래가 그리 지루한가 아님 클래식 같은가. 평소 차에서 애들을 재울 때 클래식이 최고라고 틀어 주이라서.


내 이름 중 한 글자의 한자어가 착할 선이라 내가 이름처럼 착하려고 힘드나 보다 하니, 당신이 "좋을 선도 있어!"라고 얘기해잖아. 살아오는 동안 얽매였던 착함이란 굴레에서 벗어난 기분에 얼마나 자유롭고 편안해졌는지 당신은 모를 거야. 어리석게도 앞으로 내게 또 다른 자유를 선물해줄 것만 같았거든. 그런데 이런 아름다운 구속이 또 있을까 싶게, 성실하게 바깥에서 일을 하고 정성을 다해 우리들을 먹여 살려 주는 가장(개미 아빠)이 되어준 바람에, 다른 자유는 꿈도 꾸질 못하지. 장난 말로 내 날개옷을 어디 숨겨놨냐고 묻곤 하면 그저 빙그레 웃어넘기는 당신. 우리 조합(개미 아빠와 베짱이 엄마) 건강한 건가.


우리의 10년이 이토록 스펙터클한 영화 속 같을 줄 미처 몰랐어.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도 그랬고 (별 같은 아들과 살 같은 딸의 이야기는 다시 하기로), 세상을 바꾼 코로나 시대도 그렇고. 이길이 기억되겠지. 10년 동안 내 얘기 잘 들어주고 웃어주고 아이들보다 천진난만하게 함께 해줘서 고마웠어. 으로도 잘 부탁할게.


이상 브런치 빌려 감사함을 전합니다.

글을 쓰고 퇴고하는 사이 하루가 지나버음을 고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