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빠른 배송에 길들여진 아이는 어제부터 온통 장난감에 붙잡혀 온 마음 다해 몸부림치고 있다. 잘 놀고 기다리면 시간은 가고 장난감은 올 것이라고 몇 번을 말해도 의욕을 잃고 흐느끼고 있다. 아침부터 잘 때까지 그러고 또다시 그러고 있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코로나로 집에만 있을 때부터 심해진 소유욕. 아이의 물욕과 소유욕 그리고 견물생심을 이해하지만 이런 시대 처음이듯 이런 소유욕은 처음이다. 심심하면 장난감 검색을 하고 꼬투리를 잡아 사달라고 조르기 시작한다. 어쩔 수 없는 심심함을 장난감으로 해소하려는 아이를 무엇으로 달래야 하나. 거리두기로 친구들과의 놀이가 드문드문 연결이 안 되고 가벼워지면서 아이는 더 가지려 한다. 아마도 소유욕은 소통욕에서 온 것이 아닐까. 마음을 알아주는 친구와 놀지 못해서 자기 마음 즐겁게 해주는 장난감에 집착하는 게 아닐까.
나는 코로나로 바깥 활동을 자제해야 하는 때부터 소통의 욕구가 더 강해졌다. 평소 외적인 활동이 많지 않았기에 초기엔 집에서도 지낼 만했다. 한 달 동안은 아이들과 만들어 먹고 놀고 잘 지냈다. 두 달째부터는 동굴에 갇힌 듯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알게 된 브런치. 더 깊게 소통하고 싶은 강렬한 욕구에 더운 여름인데도 쓰기 시작했다. 쓰고 싶었다. 나누고 싶었다. 쓸수록 쓰고 싶었다. 쓸거리가 없어도 쓰고 싶었다. 틈만 나면 쓰고 있다.
아이의 심심함에서 나온 소유욕보다 나의 소통욕이 더 클지도 모른다. 그래서 몸부림치는 아이를 지켜보기 힘들지만 이해한다. 그럴만하다. 얼마나 심심했으면 그러겠나. 얼마나 같이 놀고 싶었으면 그러겠나.
기다리다 지쳐 품에 들어온 아이는 스르르 잠이 든다. 현명한 몸의 결정이다. 잠이 깨기 전에 장난감이 도착하면 좋으련만.
바람은 바람처럼 지나가 버렸다. 아이는 금세 잠에서 빠져나왔고 장난감은 도착 시간이 지나도록 소식이 없다. 꼭 기다릴 땐 말도 없이 늦다. 기다림의 미덕을 가르칠 때인 듯한데 더위에 아무 생각이 안 난다. 다른 놀이로 기분 전환시키다가 지쳐 버렸다. 간간히 장난감을 떠올리며 괴로워하는 모습을 무심히 지켜볼 수밖에.
첫째는 유난히 자동차를 갖고 싶어 한다. 둘째는 또 유난히 인형을 갖고 싶어 한다.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를 때부터 주문하고 기다릴 때까지 곁에서 지켜보는 일이 고역이다. 그 모든 과정을 즐기면 좋으련만 너무 애를 쓴다. 몸과 마음 다하는 기다림을 보고 있자니 애처롭다. 아이가 자라면 다른 대상을 찾고 기다리겠지. 그때에는 지금처럼 애쓰고 힘들어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성미 급한 아들은 칭찬 싸인 모으기를 달성한 뒤 당근 마켓에서 RC카를 고르고 받았다. 당근의 매력을 일찍이 깨달은 아이다. 오빠를 보고 자라다가 성미 급해진 딸은 말하는 앵무새 인형을 고르고 도착 예정일보다 하루 늦게 받았다.
아뿔싸, 앵무새가 말이 없다. 엄마 아빠는 이 난국을 어찌 헤쳐나갈까. 아빠는 새 건전지를 사러 나갔고 엄마는 뭐라도 쓰고 있다.
앵무새 도착 이틀 전에 만든 수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