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늬바람
맑은 날 서쪽에서 부는 서늘하고 건조한 바람
탈출을 감행한다, 모두 함께.
마음이 멈추고 갑갑한 게 나뿐이랴
아이들은 티격태격 왁자지껄
나는 음악과 책 속으로 빠진다
지난밤 마음 깊은 곳에 불어온
하늬바람을 찾아 서해로 향한다
한글날 오후 땀나게 뜨거운 햇볕이
바다 윤슬로 찐하게 인사를 건넬 때
모래 위를 걸어 다니며 찾는다
아이는 조개를, 나는 하늬바람을
아무리 찾아도 조개는 껍질뿐이고
아직 따가운 햇볕에 땀이 맺힐 때
지는 해가 들어가다 금빛 미소 날리며
바람 한 자락 보내준다, 하늬바람을
송골송골 맺힌 땀을 간질간질 식혀주고
조개 품은 바다 향을 솔솔 풍겨주면서
잔잔한 파도를 찰싹찰싹 밀어줄 때
서걱서걱 모래를 밟다가 멈춰 선다
부는 듯 마는 듯 지나가는 바람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토닥토닥
살살 어루만져 주는 것만 같아서
부드러운 바람에 온몸을 맡긴다
보이지 않는 바람에 모든 걸 털어놓은 듯
아무 말 안 했는데도 마음은 시원하다
서해 바다
이상은 노래 <오아시스의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