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하와 발행 사이에서
멜론 출하와 겹친 공모전 발행
내 년이면 칠순이신 울 엄마, 20년째 멜론 농사를 지으신다. 다른 작물들도 해마다 빠짐없이 짓지만 그중 제일은 엄마표 황토멜론이다. 멜론은 매우 예민하고 까다로운 성격을 가진 아이처럼 손이 많이 가고 마음도 쓰게 만드는 작물이다.
몇 년 전부터는 농사가 버거우셔서 출하를 마치면 그만 하신다고 했는데, 멜론 박스가 남았다 하시며, 다시는 안 짓는다는 말을 잊은 채 또 심으셨다. 첫 아이 낳아 키우기 힘든 거 잊어버리고 둘째 셋째 낳는 여느 엄마의 마음일까.
아무튼 멜론은 엄마가 우리들을 독립시키고 출가(결혼)시켜가며 거의 해마다 출하 중이다.
아이들 잘 길러 출가시키는 기분처럼 출하하시나 느낀 적도 있다. 멜론 농사 초년엔 홀로 시행착오를 겪으며 어렵게 힘겹게 짓다가, 끊임없이 묻고 배우며 노하우를 가지게 되어, 다음 해 멜론까지 선주문받는 경지에 이르게 됐다. 원래는 농사 지어 농협이나 공판장에 출하했다. 그때는 이 맛있는 황토 멜론을 가족들만 맛보고 여름을 낫는데, 3년 전부터는 지인들에게도 엄마의 멜론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해도 역시나 맛 좋고 향 좋고 달콤한 멜론이 예쁘게 익어가고 있었다. 갑자기 당연하던 판로가 막히며 정말 좋은 작물이 헐값에 넘어가게 되었다. 잘 키운 아이 험한 곳 보내는 부모의 심정인지 엄마는 심히 시름에 빠졌다. 전화기 넘어의 목소리는 멀리서도 같이 기운이 빠질 정도였다. 그러자 우리(엄마의 아들 딸들)는 머리를 모으고 힘을 모아 이 난국을 헤쳐가야 했다. 시름에 빠진 엄마를 위해.
맛있는 멜론을 먼저 받아서 이웃에게 맛도 보여주고 가까운 친지들께 선물도 드리고, 맛을 인정받고서는 용기를 내어 조금씩 홍보를 시작해보았다. 사실 입맛 까다로운 우리들과 아이들에게도 환상적인 맛이었기에 제 값을 받아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저 고생하는 엄마를 위해.
한 여름 가운데 우리들은 멜론을 알리고 주문을 받으며 우애를 다져갔다. 홍보 후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주문해주셨고 주문받고 입금되는 게 은근히 재미있었다. 그러나 엄마가 일일이 택배 보낼 주소를 손으로 적어 다음 날 보내는 시스템은 엄마를 더 힘들게 했다. 그렇게 주문받은 첫 해는 우왕좌왕하며 헐값보다는 좋게 멜론을 출하했다.
그리고 다음 해도 판로가 좋지 않았고 우린 또 힘을 모았다. 전보다는 나은 시스템을 만들었는데, 모든 주문을 한 사람이 취합해서 택배회사에 전달하는 것. 전보다 엄마는 한결 수월하게 출하하게 되었다. 해지고 나서 까지 일을 하고 오셔서 밤늦게까지 주소를 받아 적으셨는데, 그때부터는 더 일찍 주무실 수 있었으니.
나는 멜론 사진을 찍어 홍보 문구를 만들었고 막내는 모든 주문을 취합해 택배 사무실에 보내는 일을 맡았다. 그리고 온 가족들이 열심히 알리고 주문을 받게 되었다. 다른 가족의 주문이 많으면 더 열심히 알리고, 살짝 경쟁하듯이 주문받으려 했던 한 여름. 그렇게 주문받아 보내기 시작한 두 해도 역시나 문제가 생겼다. 많이 익은 멜론이 비 오거나 폭염으로 온전히 배달되지 못했던 배송 사고. 박스에 또렷이 적힌 엄마의 전화번호로 멜론이 안 좋다는 문자들이 왔다. 엄마는 한 밤 중 그런 문자를 받고 피곤한 몸을 쉬게 하지도 못했다. 또 그런 일에 다 같이 마음 아파하며 다음 해 출하엔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더 이른 출하를 하게 됐고 작년부터는 출하시스템이 안정이 되었다. 더 좋은 시스템이 있을 수도 있지만 각자의 사정을 고려한 최선의 방법이었다.
그리고 올해, 엄마는 진짜로 이번이 마지막 멜론이라고 하신다. 평년보다는 적은 면적에 심었는데 멜론의 크기와 맛이 더 좋다고 기분이 좋으시다. 우리 멜론을 기다리는 분들께 소식을 알리자마자 주문해주신다. 그동안의 부족함을 보완해서 주문을 받고, 오배송을 줄일 수 있게 연락처를 꼼꼼히 체크하느라 다들 눈이 빠질 지경이지만, 내심 엄마의 멜론이 유종의미를 거둘 수 있게 모두 끝까지 힘을 내고 있다. 출하가 끝나는 오늘까지.
이렇게 엄마의 멜론 출하는 무난하고 성공적으로 끝났다.
7월 9일
엄마의 생신 날이면서 브런치 작가가 된 날!
엄마 생신 선물로 열심히 주문을 받고 있을 때,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는 소식도 받아서, 정신없지만 그냥 막 기분 좋았다. 브런치를 만난 뒤 콩닥콩닥 뛰던 심장이 팡팡 펌프질 하려는 순간.
서울의 아버지 같은 시장님의 비보를 받았다. 순식간에 마음은 가라앉고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여러 가지 일이 하루에 다 일어나다니. 영화 속에 들어온 기분이 들었다. 낮에 친구가 놀러 와 영화 같은 이야기를 해주고 갔는데 나의 하루도 영화가 되었다.
7월 12일, <나도 작가다> 공모전 마감일이다.
브런치를 만나 공모전 소식을 받아 써놓은 글을 마감일 전에 발행하려고 틈만 나면 퇴고하고 있었다. 그리고 작가 된 그 날 발행하고 싶었다. 그런데 차마 바로 그 날엔 그럴 수 없었다. 내 마음이 그러라고 했다. 지난날 나의 아버지를 잃었던 그때의 비슷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일까. 마감일에나 발행해야 할 것 같았다.
마감일은 다가오고 엄마의 멜론 출하는 한창이고 두 가지 중요한 일이 있으니 손이 많이 가는 아들 딸은 방치되었다. 집중 섬세 육아를 받다가 무심 육아를 하는 엄마가 이상했으리라. 그래도 엄마가 작가 되었다고 축하해주는 아이들이 고맙다. 그저 밥만 해주는 엄마가 아님을 알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출하 현장에서 조금 돕고 글도 정리하고 반복하다가 마감일에 공모전 글을 발행했다. 내가 글을 발행하다니! 이 행위가 무거운 책임을 준다. 엄마는 땅을 갈아 묘목을 심고 가꿔 열매를 맺기까지 수십수백 번 보고 만져주다가, 출하의 순간에도 여러 공정을 거쳐 또렷한 엄마 이름이 적힌 박스에 담아 보내신다.
우리 엄마의 멜론 출하 모습과 내가 글을 발행하려는 모습이 겹쳐 보인다. 맛 좋은 멜론이 안전하게 도착할 때까지 마음을 놓지 않는 엄마처럼 나도 발행한 글이 사람들 마음에 잘 도착했나 조금 신경이 쓰인다. 그것까지 생각하면서 솔직하고 좋은 글을 쓰는 사람이고 싶다. 그저 나만 보기 좋은 글은 서랍에 넣어둬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