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그러나 깊게 이해하게 되는 사람들
나는 어릴 때 부모님을 ‘늘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라생각했다.
밥이 차려져 있고, 불이 켜져 있고,
내가 문을 열면 언제나 반겨주는 존재.
세상은 그렇게 안정된 줄 알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 자리가 흔들리는 걸 보았다.
아버지의 손이 예전보다 느려지고,
어머니의 흰머리가 눈에 띄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그 자리는 누군가의 희생과 인내 위에 세워진 자리였다는 걸.
부모님은 나를 위해 늘 ‘조용히 져주는 사람’이었다.
아버지는 삶의 무게를 침묵으로 감췄고,
어머니는 자신보다 나의 컨디션을 먼저 물었다.
그들의 하루는 나로 시작해 나로 끝났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괜찮다”는 말을 가장 많이 했다.
이제야 그 말의 깊이를 안다.
“괜찮다”는 건
아프지만 말하지 않겠다는 뜻이고,
서운하지만 끝내 사랑하겠다는 약속이다.
나도 언젠가 누군가의 부모가 될때,
그때는 알 수 있을까,
이 진하디 진한 사랑의 형태를.
요즘은 문득 그런 생각을 한다.
부모님은 나에게서 ‘자식’이라는 이름을 받았지만,
나는 아직 ‘부모님’이라는 이름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그럼에도,
매번 전화를 걸어 목소리를 듣고 나면 마음이 조금 정돈된다.
그건 아마도 사랑이
언제나 ‘확신’이 아니라 ‘존재감’이라는 걸
그들이 오래전부터 가르쳐주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