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천권 독서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혜솔 May 22. 2021

다정한 전사가 되어 도움이 되는 도움을 주자

서평 1 - 당신이 옳다



  20년 전쯤, 정신보건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송국 클럽하우스에서 실습을 한 적이 있었다. 그때 들은 말이 ‘환자는 옳다.’는 말이었다. 정신 보건 분야에서 가장 오래된 명제는 ‘모든 환자는 옳다.’이다. 이상하고, 기괴하고, 때로는 기묘하게 보이는 정신장애 환자의 말, 행동은 ‘환자의 입장’에서는 옳다는 것이다. 환자가 지금 겪고 있는 환청, 환시, 환각의 상황에서 환자가 보이는 말과 행동을 살펴보면 환자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표현이라는 것이다. 다소 막연했던 이 명제는 지난해, 정신보건 분야의 교육을 받으며, 더욱 뚜렷해졌다. 교육에서 정신 장애인들이 듣는 환청(유사하게 제작된 것이겠지만)을 들을 기회가 주어졌는데, 짧은 1분의 시간이 정말 끔찍하게 느껴져서, 그만하라고 소리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20년 전, 문장을 오랫동안 가슴에 품고 있으면서도 그것은 ‘환자’라는 부분에 힘주어 생각했던 모양이다. 얼마 전 읽은 ‘당신이 옳다.’는 책을 읽기 전까지는 말이다.
 정신과 의사, 정혜신 박사는 환자는 옳다는 낡은 명제를 ‘당신이’라고 바꾸며 우리 모두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녀는 오랫동안 사회적 문제를 통해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들 곁에서 그들을 치유하는 사람으로 통한다. 그 자신도 ‘치유자’라는 말을 가장 좋아한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그들을 치유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자신과 상호작용하는 과정을 통해 스스로 치유할 수 힘을 갖고 일어나는 것이라며 겸손함을 유지한다. 자신의 무기는 그저 ‘공감’, ‘당신의(당신에게) 옳은 감정’을 공감해 주는 것이라는 것이다.

 사회복지현장에서 오랜 기간 일하면서도 여전히 힘든 것은 ‘공감’이다. 후배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가장 많이 힘들어하고, 잘하고 싶어 하는 것 상담인데, 상담의 핵심은 결국 공감이니, 그들도 같은 문제를 호소한다. 정혜신 박사의 말처럼 입으로 하는 공감이 아닌, ‘자신의 체중을 실은’ 진정 어린 공감을 한다는 것은 어렵다. 때로는 정말 화가 나고, 이해가 안 가는 사람들도 얼마나 많던가. 그럼에도 우리는 친절함을 유지하며 이해하는 척이라도 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린다.
 하지만, 스스로를 공감 전문가라고 하는 정혜신 박사는 우리가 공감할 것은 상대의 ‘마음’을 공감하는 것이지, 모든 것을 공감하는 것은 아니라고 확실한 선을 긋는다. 또한 상대의 입장에서 일어나는 마음을 공감하는 것과 말과 행동을 수용하는 것은 다르다는 것이다. 일반인이나, 전문가나 우리 모두는 어쩌면 ‘공감’에 대해 너무 포괄적으로 생각해 왔던 것은 아닌가? 그래서 있는 그대로의 수용이라는 말에 대해 너무 넓은 범위를 설정하고, 정말 이해하기 힘든 대상조차 이해하려고 애쓰면서 감정 노동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정혜신 박사는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돕는 것은 상대의 마음이 어떤 마음이든- 그것이 심지어 누구를 해치고 싶은 마음일지언정 - 옳은 마음이라는 것을 인정해주고, 거울을 비추듯 자신의 마음을 알려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혼란스러워하며, 자신보다는 타인을 먼저 이해하려는 입장을 취하는 사람에게는 단호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은 모두 자신이 올곧게 섰을 때에만 타인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자신이 힘든 상황 속에서도 타인에 대한 얘기를 우선하는 사람이라면 단호하게 자신에게 집중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그러한 자신을 ‘다정한 전사’라고 표현했다. 마음을 읽어주는 다정함과 자신이 아닌 타인의 중심으로 서있는 사람에게는 단호한 전사처럼 싸울 수 있는 마음을 갖추는 것이 ‘도움이 되는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트라우마 현장에서 자신의 몸이 부서져라 일하다가, 어느 날 흔적도 없이 사라져 간 시민운동가, 자원 활동가들은 타인을 돕는 과정에서 자신을 살피지 못했기 때문에, 소진이 왔다는 것이다.
 최근 많은 책들이 마음을 챙기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 그만큼 살아내기 빡빡한 세상이라는 얘기다. 우리의 현장은 더 하다. 내 마음 하나 챙기기도 버거울 때가 많은데,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읽고 나눠야 하니 말이다.
 이 책은 마치 내게, ‘너 자신부터 챙겨. 그래도 괜찮아.’라고 다정하게 말해주는 것 같다. 그래야 진짜 도움이 되는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이제야 알 것 같다.


2019. 2. 1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