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에 묻혀 지내다 보면
가장 소중한 사람들이 가장 남 같을 때가 있다.
바쁠수록 가장 가까운 사람, 가족이 소홀해지고,
가족과 대화가 가장 줄어든다.
5월의 가정의 달이지만,
우리는 5월 21일 부부의 날이 되어서야 서로 마주 볼 수 있을 만한 여유가 생긴다.
둘 다 하는 일이 특히 5월이 바쁘기도 하고,
매사에 일이 우선되는 과업 지향적인 성향 탓도 무시하지 못하리라.
그리고 절대적인 에너지가 부족하기도 하다. 다른 말로는 조금 게으르다.
새 살림을 나와 처음으로 우리만의 집이 생겼을 때
우리에게 가장 큰 즐거움 중 하나는
둘 다 부모님의 간섭 없이 휴일에 자고 싶은 만큼 자는 것이었다.
또 하나는 치맥!
눈치 보지 않고
저녁을 치맥으로 먹어도 되는 그런 날들이
우리 마음대로 계속될 수 있다는 거 신기하고 좋았다.
세월이 흘러 흘러
신혼의 기쁨은 지나고,
아이들이 하나 둘, 셋까지 생기고
분주하게 살며
둘만의 데이트... 쉽지 않았다.
우리도 데이트라는 걸 한번 해보자고 나섰다.
봄기운이 가득한 지난 4월 밤이었다.
첫 평일 저녁 데이트... 생각보다 무난하고 쉬웠다.
이제 큰 아이들이 제법 자라고,
막내도 언니들이 있으면, 잘 따라나서지 않는 정도가 되었기 때문이다.
둘 다 알싸하게 취해서 우리 동네를 걸어, 집으로 들어오는 기분이라니.
그 기억이 좋아서, 며칠을 살만했다.
한 달에 한번 해보자고 호기롭게 말해놓고
또 잊은 듯이 한 달을 살았다. 아니 살아내었다.
'오늘이다'
하는 순간 남편도 알아듣는다.
이제는 더 과감해진다. 학원 다녀오다 마주친 큰 애에게
엄마 아빠 데이트라고 말하며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그때 큰아이의 이상한 눈빛이란.. 한번 더 돌아보고 가는 눈이 "뭐지?" 한다.
역시 최애 하는 치맥이다.
집에서는 두 마리를 시켜야 겨우 조금 남는 치킨이 둘이 먹으니
많이 남는다.
늘 그렇듯 대화는 나의 일방통행이지만,
그저 좋다.
밤의 정취가 좋고, 그가 좋고, 우리가 좋다.
그도 좋았을까?
생각해보니 그건 또 안 물어봤고 못 들었다.
남은 치킨을 싸서 들어오자마자, 막내를 재우느라 둘 다 뻗었다.
가족은 이래서 문제다. 피드백 따위를 할 사이가 없다.
그래도 알싸하게, 기분 좋게 휘청일 만큼
손을 잡고 들어온 초 여름밤
남편이랑 데이트라는 말에
근처 사는 친구들이 어떻게 하는 거냐며 구경 오겠다고 농담을 하던 밤
우리는 또 하루를 함께 살았다.
남편이 애인이 되는 날,
다음 달이 또 기대된다.
2021.05.25(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