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의사표현이라는 본질, 시민의 판단에 대한 신뢰
1. "아무 위협적인 행동도 하지 않고 어떤 정치적인 구호도 외치지 않고" "착하게" "오로지 얌전히 잘" 하면 집회시위가 경찰을 자극하지 않는 평화로운 행사가 된다고 생각하시는 분들, 나서서 함부로 설치니 난리가 난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다. 그 나이브함을 이해 못 할 바 아니나, 그런 태도가 "가만히 있으라"는 말이나 "피해자가 당할 만 하니 당했지"라는 생각과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의문이다.
2. 작년 봄, 세월호 추모 행사가 있었다. 경찰이 쫙 깔렸다. 스무 살 스물 한 살, 심지어 미성년자 여학생들이 추모하겠다고 길에 나왔다가 경찰서로 질질 끌려와 자정이 되도록 경찰서 구석에 갇혀 있었다. 경찰은 위에서 내려온 명령이 있으니 훈방할 수 없다는 말만을 반복했고, 나는 새벽 두 시 다 되어서야 미성년자 한 명만을 간신히 데리고 나왔었다.
경향신문사 건물에서 있었던 민주노총 진압. 경찰이 신문사 사옥 현관 유리를 박살냈다. 안에서 자는 바람에 아침까지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다가 문 깨지니까 연행된 평조합원은 필수유지업무 담당자이다(징계 위험), 집의 아내가 만삭이다 하며 내 앞에서 울었다. 함께 연행된 다른 조합원들이 저 사람이라도 보내야 한다며 애원했다. 진술은 진작에 다 했고 직장이 있으니 도주우려도 없는데도, 경찰은 역시나 위의 명령이 있다며 그를 무조건 붙잡고 있었다. 형사소송법의 구속기간 제한은 공권력과 개인의 힘이 불균형한 상황에서는 "인신을 함부로 구속해서는 안 된다"가 아니라, "48시간까지는 구속해도 된다"는 식으로 작동한다.
어떤 행위는 본래 그 자체로 정치적이고, 정치적인 것은 잘못이 아니다.
3. 나는 법과 질서를 믿는다. 체제와 절차의 힘을 믿는다. 공권력을 신뢰한다. "선생님께서는 억울하실 수 있지만 법/경찰의 잘못이 아니다"는 말을 일하며 숱하게 한다. 그렇지만 약한 쪽에게서 먼저 이유를 찾으려는 태도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약자가 강자의 규칙을 항상 완벽히 따를 수 없다. 따랐다고 하여 그랬다면 "아무 문제 없었으리란" 보장도 없다. 어떤 행위는 본래 그 자체로 정치적이고, 정치적인 것은 잘못이 아니다.
4. 집회 참가자들도 다 시민이다. 각자 멀쩡히 생각할 줄 안다. 나는 정권퇴진이나 대통령 구속 같은 구호가 나오다가 별 호응을 얻지 못하고 사그러드는 집회를 자주 보았다. 울분을 집회나 시위에서 괜히 푸는 사람들도 보았고, 그렇게 지나치게 흥분한 사람을 옆에서 뜯어말리는 모습도 자주 보았다.
그 순간, 그 현장의 경험에 따라 사람들의 생각은 바뀌기도 하고 흩어지거나 모이기도 한다. 쉽게 선동될 만큼 남들은 멍청하지 않다. 행동의 결이 바뀌는 데에는 사람 나름의 이유가 있다. 저 사람(들)이 왜 길바닥에서 저러는지 모르겠다면, 당신은 아는 것을 저치들은 무식해서 모르고 선동당해 설치고 있을 가능성보다, 그들이 그 순간에 갖게 된 이유를 당신이 모를 가능성이 높다고 봐야 한다.
5. 신고된 집회 참가자의 형사처벌이 문제된 공판에서, 검찰은 현장 비디오에 자주 나오는 한 인물을 가리키며 저기 저 사람은 다른 집회에도 상습 출몰한 사람이다, 라고 했다. 상습 시위꾼이라고 하고 싶었던 것 같다. 나는 그 "상습적" "출몰"을 일컫는 올바른 말은 "연대"라고 생각하고, "외부세력"을 일컫는 올바른 말은 "시민"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