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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변 Dec 02. 2015

포기할 수 있는 용기

돈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들

예전에 토지수용에 관한 상담을 한 적이 있다.


토지수용은 국가가 개인의 토지를 어떤 목적을 위해 강제로 가져가고 대신 보상금을 지급하는 것인데, 그 땅에 개인적 기억이 있는 사람들에게 이것은 돈과 별개로 상당히 고통스러운 일이다. 소중한 추억이 있는 고향이 사라지기도 하고, 노년을 지내려고 마음 먹었던 장소가 하루아침에 없어져 여생의 계획이 흔들리기도 한다. 애써 마련한 가게나 집이 없어지기도 하고 예상치 못했던 전학이나 이직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이날 오신 어르신은 법으로 할 수 있는 절차는 이미 다 밟았고, 받은 보상도 그 부동산의 객관가치만 따지자면 받을 만큼은 받았다고 할 만한 분이셨다.


그렇지만 공간에 대한 마음이 필지당 얼마, 제곱미터당 얼마의 보상만으로 어디 메워지겠는가. 마음을 비우지 못해 서류를 다 가지고 다시 또 오신 분에게 안타깝지만 안 된다, 끝난 일이다, 라고 말씀드렸다. 당신도 알고 계셨다. 어디 내가 처음이겠나. 그 모든 절차를 거치는 동안 얼마나 많이 생각하고 얼마나 여기저기 물어보았을까. 그 분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하신 말씀을 잊을 수가 없다.


"요즘은 포기할 수 있는 용기를 달라고 기도를 해요."

이 말씀이 마음에 참 오래 남았었다.


일단 소송만 하면 이기고 비용도 다 보전할 만큼 잘 풀릴 가능성이 높은 일을 진행하지 않는 분들도 있다. 세상에는 분쟁 자체가 싫은 사람도 있고 법원만 봐도 머리가 아픈 사람도 있다. 오히려 그런 분을 만나면 마음 편히 그러신가보다 한다.


그렇지만 반대의 경우, 변호사가 생각할 수 있는 수많은 대안을 다 따져 보아도 안 될 일을 놓지 못하는 분들을 만나면, 포기할 수 있는 용기란 얼마나 대단하고 무거운 것인가, 고작 변호사가 그런 용기를 남에게 줄 수 있기는 한가, 하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나는 종교도 없으면서, 지금은 살아계신지조차 알 수 없는 그 어르신께서 기도에 응답을 받으셨기를, 포기할 수 있는 용기가 그분의 마음에 생겨났었기를, 생사 불문하고 어느 순간에는 그 상실로부터 편안해지셨기를 기도하듯 막연하고 간절하게 바라곤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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