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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변 Dec 06. 2015

내가 생각하는 변호사의 역할

편 드는 사람

나는 변호사는 절대로 물러서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나의 직업윤리이다. 변호사는 편을 드는 사람이다.


돈을 받을 민사의 원고대리면 악착같이 받아내야 하고 피고대리면 어떻게든 내 의뢰인이 돈을 안 내는 결과가 나오게 노력해야 한다. 이혼이면 위자료, 재산분할, 친권양육권 등을 최대한 의뢰인에게 유리하게 주장해야 하고 고소대리면 피고소인이 기소되어 엄벌을 받게 해야 하고 반대로 피고소인 대리면 내 의뢰인이 불기소 되게 해야 하고 형사사건의 변호인이면 양형을 줄여야 하고 피해자대리면 피고인의 형량을 높이거나 합의금을 올려야 한다.


"이런저런 일에서는 을보다 갑이 더 나쁜 놈 아닌가요?" 같은 질문을 받으면 나는 대개 이렇게 묻는다. "음, 지금 그 이야기에서 제가 누구 변호사인가요?"


가끔 어떤 사건에서 상대방보다 그 변호사가 더 밉다거나 나쁘다는 말을 듣는 경우를 본다. 정말 나쁜 경우도 있겠지만, 대개 그런 말을 들을 정도면 오히려 일을 제대로 하는 변호사가 아닐까 싶다. 애당초 변호사는 충돌 상황에서 내 의뢰인의 편에 어떻게든 서 주는 것이 직업인 사람이기 때문이다. 의뢰인이 맞을 화살을 변호사가 맞았다면, 그 변호사는 자기 몫을 한 것이라 생각한다.


변호사가 물러서지 않아야 한다. 변호사가 의뢰인의 편에서 버텨야, 의뢰인 당사자에게 고민하고 마음을 정하고 조정을 하든 합의를 하든 포기를 하든, 마음을 결정하여 중간 어디쯤에서 납득하는 결정을 내릴 시간과 기회가 생긴다.


그래서 나는 변호사가 제공하는 것은 결국 정보와 보호 서비스라고 생각한다. 의뢰인이 결정할 때까지 옆에서 보호하기, 그리고 그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서 가능한 결론과 전개를 계속하여 설명하여 본인이 원하는 결정을 돕기. 본인이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 수 있게 정보를 주기(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정말 원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알고 시작하기보다는 분쟁 과정에서 서서히 발견해나간다.) 낯선 절차 속에서 헤매지 않게 인도하기.


법정다툼에서는 때로는 가족들도 서로 등을 돌린다. 가족이라고 돕겠다고 나서서 일을 더 엉망으로 만드는 안타까운 경우도 종종 있다. 가까운 사람들이 진술서 한 장도 써 주지 않거나, 오랜 친우가 다짜고짜 연락을 끊거나, 믿었던 동료가 말을 뒤집는 일은 흔하디 흔하다.


나는 세상 대부분의 일에는 거대하고 절대적 정의나 선이 있다고 생각치 않는다. 법원을 거치는 사인간의 갈등이라면 더욱 그렇다. 보통 평생 한두 번 있는 극한 상황을 겪고 있는 사람에게 계속 바뀌는 선택지를 설명하여 스스로 선택할 기회를 열어주고, 오락가락하는 마음을 정리할 시간을 벌어주는 것이 굳이 말하자면 내가 생각하는 이 직업의 정의다. 그냥 나는 돈을 받고, 물러서지 않고, 정확하게 설명하고, 종국을 향한 길이 막히지 않게 지키면 된다.


물론 이기면 더 좋다. 당연히 더 좋지. 그러나 항상 이길 수만 있는 것은 아니고, 이긴다든가 끝난다는 말의 의미도 생각보다 분명하지 않다. 승소를 해도 마음 속으로는 고통이 끝나지 않을 수도 있고, 패소를 해도 하고픈 말, 할 수 있는 말을 다 했다 싶으면 마음이 풀리고 법원의 판단을 받아들일 수도 있는 것이 갈등이다. 이혼하고 싶어 제소했지만 그 과정에서 차라리 시작하지 말걸 싶을 만큼 상처를 받을 수도 있고 상대방이 먼저 제기한 문제에 질질 끌려 법정에 나왔지만 오히려 후련한 마음으로 결론을 받아들이고 삶의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도 있다.


나는 내 의뢰인의 삶에 그런 종결의 경험을 만들기 위해 일한다. 하나의 절차에서 절대적으로 내 편이라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일한다. 정의니 윤리니 하는 큰 말에는 역시 거부감이 있지만, 그래도 말해 보자면, 내 생각에는 이것이 내 직업적 정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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