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yaMya May 21. 2018

Bruxelles 이라더니 Brussel이네



이태리에서는 Bruxelles이라고 쓰고 부르는데, 공항에서부터 Brussel이라는 표기를 만났다.



"여기는 Bruxelles이 아닌가봐, Brussel 이라고 써 있는데.. 여기서 또 기차타고 가는거야?"

"아.. 아니.. 같은 곳인데 이름이 두개야. 이 나라에서는 두가지 말을 사용 한다고 했잖아. 그 중에 한가지 말인 프랑스 말로는 Bruxelles, 네덜란드어랑 비슷한 플라망어로는 Brussel 이래."

"이름이 두개라고? 그럼 이 나라 사람들은 뭐라고 부르는데?"

"이 나라에 사는 사람중에 프랑스 말을 하는 사람은 Bruxelles이라고 하고 플라망어를 하는 사람은 Brussel이라고 하는거지."

"그럼 서로 어디 얘기하는지는 알아? 이상하겠다... 말이 두개라서... 사람들은 두개 말을 다 알겠지? 그래야 다 친구가 되지."

"두 가지 말을 다 아는 사람들도 있고, 아닌 사람들도 있는 것 같아. 엄마도 신기해. 여기서 안 살아봐서 어떨지는 잘 모르겠지만, 두 가지 말을 배울 수 있다면 좋을 것 같기는 한데, 같은 나라에 사는 사람들이 말이 안 한다면 그건 좀 이상할 것 같기도 해."


벨기에가 두 가지, 소수가 사용 한다는 독일어까지 포함하면 3가지 언어를 쓰는 나라라는건 알고 있었지만 지명도 각각의 언어로 부르고 표기하리라고는 미처 생각을 못했다. 다른 나라 지명도 표준 외래어 표기법을 만들어 원래의 발음에 가깝게 쓰고 읽으려고 하는 세상인데, 한 나라에서 한 도시를 비슷한듯 전혀 다르게 부른다는게 예사롭지 않게 느껴졌다. 

브룩셀의 두가지 이름에서 '저 언어로는 지명도 말하기 싫어' 라는 불편한 감정이 보이는 것만 같다.


벨기에의 수도 브뤼셀에서는 불어와 플라망어가 통용되지만 다른 도시에서는 두 가지 언어 중 한 가지 언어를 공식어로 지정하고, 철저하게 공식 언어만을 쓴다고 한다. 두 언어권 사이의 언어, 문화, 경제 수준등의 차이로 분쟁도 잦다고 한다.

같은 말을 쓰지만 둘이 되어버린 한반도. 두 언어를 철저하게 구분하여 사용하는 한 나라 벨기에. 

국가. 언어 공동체. 민족과 같은 당연한 이름들이 세삼 부자연스럽다.

'국가'는 정말 무해한 것일까? 혹은 반드시 필요한 것일까? 와 같은 불순한 질문을 던져본다.

역사가 겹겹이 쌓이는 동안 사람들은 이런 저러한 이유로 나라를 만들고 키우고 없애는 일을 반복했다. 

'국가'라는 체제보다 더 나은 체제가 없었으니 이토록 견고해져 오늘날까지 유지되어 왔겠지만, 언어와 마음이 나뉘어진 사람들이 사는 한 나라를 잠깐 구경하는 동안 '국가'라는 체제는 결코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 브룩셀에서 황가수가 지목해둔. 여행자가 반드시 방문해야 하는 중요 관광 포인트를 찾아 나서기로 했다.

브룩셀시는 면적이 32.61km²이라고 한다. 면적으로 보면 소규모 도시인데다 꼭 방문해야 한다는 관광 명소는 모두 시내에 모여 있어 걸어서도 거뜬히 브룩셀 구경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야경이 아름답다는 그랑 플라스, 밀라노의 두오모도 닮았고 파리의 노틀담도 닮았다는 생 미셀 성당, 실제로 보면 너무 작아 실망하지만 그렇다고 안보고 갈 수도 없을 만큼 유명한 오줌싸개 소년 동상, 필리프 왕이 살고 있는 벨기에 왕궁,  초현실 주의 화가 마그리트의 미술관, 왕립 미술관, 예술인의 언덕을 돌아 보는 것 쯤이야 아무 것도 아닐 것 같았다.

시아로 말 할 것 같으면, 3-4km 정도는 콧 노래 부르며 걸어다닐 정도로 튼튼한 도보 여행자이며, 우리 부부는 가난한 커플의 전형으로 걸어다니기를 타고 다니기 보다 많이 하여 걷는게 세상에서 제일 쉬운 사람들이다.




순서를 정하지 않고 그냥 나섰다. 발길 닿는대로 시간 되는대로 걸어 다니기로 했다. 낯선 나라에서는 차 타고 다니는 것 보다 걸어다니는 것이 훨씬 홀가분하다고 흥분 섞인 목소리로 조잘대는 애 엄마와, 우리 없이 매일 매일 걷던 길을 우리와 함께 걸으니 참 좋다고 허허 웃는 원정 가수와, 모든 난간에 올라가고, 모든 구멍은 들어가보며, 깨끗하고 한적한 길에는 덤블링으로 영역을 표시하는 아직 일곱살은 신이 났다.




런던의 공원 보다는 지저분하고 파리의 공원보다는 조경이 못한 것 같지만, 밀라노에서 못 본 신기한 나무와 꽃들이 가득한 공원들을 지나는 재미도 컸다. 공원마다 작은 나무를 이어 심어 미로 같은 길을 만들어 놓았는데, 시아에게는 그 작은 미로들이 최고의 놀이터이고 최상의 모험이었다. 아무리 발길 닿는대로 가자고 나섰지만 이렇게 미로 들어 갔다 나오기를 반복하다가는 그랑 플라스 근처도 못 갈것 같은 위기감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가족 상봉. 일곱살의 아빠 결핍 해소'가 여행의 주제인 만큼, 랜드마크 쯤이야 어떻든 느슨히 웃기로 했다.




브뤼셀이 작긴 작구나. 그렇게 쉬엄 쉬엄 아무렇게나 걸었는데, 생 미셀 성당을 구경하고 아케이드형 상가 거리 Les Galeries Royales Saint-Hubert를 가로 질러 그랑 플라스에 도착했다. 

사진에서 본 그대로 참 예쁜 광장이다. 광장을 둘러싼 건물들도 대단히 아름다웠다. 광장이라고 부르기에 좀 작은 듯한 규모가 그 곳을 더 아늑하고 특별하게 보이게 하는 것 같다.

전 세계에서 모인 관광객으로 꽉 찬 광장에서 손을 꼭 붙들고 사진도 찍고, 각 건물의 용도와 이름도 확인을 했다. 

현재 시립 박물관으로 사용되는 웅장하고 아름다운 건물의 이름이 왕의 집 'La Maison du Roi' 이라고 한다.

"여기서 왕이 살어? 영국 왕은 진짜 큰 집에서 살았는데, 이 집은 좀 작네."

"아니, 여기서 왕이 사는건 아니래. 왕은 다른 큰 집에서 사는데, 여기는 그냥 이름이 왕의 집이래."

"왜? 왕이 사는 집처럼 예쁘다고?"

"예쁘지? 그런데, 옛날에는 원래 빵 파는 집이었데. 그래서 이름이 빵의 집이었다가, 빵 가게가 없어지고 옛날에 높은 사람이고 부자였던 브라반트 공작이라는 사람이 거기를 일하는 곳으로 쓰다가, 그 브라반트 공작이 스페인 왕이 되서 그 집을 왕의 집이라고 부른대."

빵 가게의 주인이 되어버린 왕이라... 웅장하고 아름다운 지금의 건물도 좋지만, 목조 빵가게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면 더 좋았을지도 모르겠다. 

프랑스의 폭격으로 모습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훼손되었지만 시와 국가의 노력으로 오늘의 모습으로 재건되었다고 한다. 전쟁의 상처가 없는 나라가 없다. 


밀라노에는 없는 오르막길을 따라 올라 특별한 시기에만 일반 시민에게 문을 연다는 벨기에 왕궁을 지나 왕립 미술관 아래로 예술가의 언덕이 보인다. 왕궁과 시내 중심을 잇는 언덕 아래로는 브뤼셀 시내가 한눈에 보인다. 아기자기하게 가꾸어 놓은 정원도 예쁘다. 이태리에서는 보기 힘든 조경이라 새롭고 감동스럽다. 내려가는 계단에 걸터 앉아 좀 쉬려고 했는데, 미로 형태의 정원으로 돌진하는 시아 덕에 예술가의 언덕에서도 미로 통과라는 낭만을 깊이 체험했다.




야경이 멋있다고 하니, 조금 있으면 해가 질 예정이니 야경도 구경하고 가기로 하고, 입안을 다 데일 것 처럼 뜨거운 감자 튀김이랑, 와플을 먹었다. 감자튀김이란걸 좋아한 적이 없는데 너도 나도 먹고 있는 분위기 때문이었는지 너무 걸어 허기가 져서 그랬는지 정말 벨기에의 감자 튀김은 남다른 건지, 아주 아주 맛있게 먹었다. 원래 감자 튀김 좋아하는 시아는 모두 감자 튀김을 먹는 브뤼셀이 너무 너무 좋다고 했다. 

버터향이 풍만한 와플도 맛있다.

좋은데 가만히 앉아 먹는 것도 좋지만, 길에서 먹는 음식이 좋다. 간편하고, 눈으로 확인하고 주문할 수 있고, 음식을 손에 들고 아무데나 앉아 혹은 서 있는 것도 좋다.

최근들어 거리 음식이 소개되고 있기는 하지만, 이태리에서는 길에서 뜨거운 음식 들고 다니며 먹는게 쉽지 않다. 특히 어른들은 그런 모습을 보면 불편해 하시는 기색이 역력하다. 떡볶이, 순대, 어묵은 아니지만, 길에서 호호 불어가며 뭔가 먹으니 억압되었던 자유를 되찾은 것 처럼 거창하게 가벼워진다.


벨기에 하면 초콜렛이라고 하더니 정말 초콜릿 가게가 많다. 하나 같이 예쁘지 않은 초콜릿이 없다. 방앗간이 즐비한 도시에서 참새 시아가 그냥 지나칠리가 없다. 

"엄마, 돼? 또 하나만 돼?"

"아빠, 돼? 또 하나만 돼?"

를 외쳐가며 이런 저런 모양의 밀크 초콜릿을 과하게 먹었다.



든든히 먹고 그랑플라스의 야경을 구경했다. 낮에보다 사람이 많다. 그냥도 아름다운 건물들에 은은한 색의 조명이 더해지니 그야말로 장관이다. 이 광장을 좋아했다는 빅토르 위고가 오늘의 야경까지 봤다면 어땠을까? 어떤 대단한 언어로 이 아름다움을 칭송했을까?

든든히 먹고 그랑플라스의 야경을 구경했다. 낮에보다 사람이 많다. 그냥도 아름다운 건물들에 은은한 색의 조명이 더해지니 그야말로 장관이다. 이 광장을 좋아했다는 빅토르 위고가 오늘의 야경까지 봤다면 어땠을까? 어떤 대단한 언어로 이 아름다움을 칭송했을까?

"정말 예쁘다. 집이 다 반짝 반짝해. 색깔도 변하고. 저 속에 살아보고 싶다. 밤에 불 켜지면 무섭지도 않고. 좋겠다."

그다지 크지 않은 광장에 사람이 가득 차 있고, 낮에 보았던 아름다운 건물들에는 조명이 들어왔다. 젊은 기분이 드는 광경이다. 돌바닥에 아무렇게나 앉아 맥주를 마시는 진짜 젊은 사람들을 구경하며 마음만 잠시 젊어봤다. 


걸어서 거뜬히 해낼 것 같은 일정을 소화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엄마, 아빠, 우리 셋이서 뭐하고 놀까?"

라고 시아가 하는 얘기를 들은 것 같은데, 같이 놀았던 기억은 없다.



분명 이 작은 도시를 열두 번은 가로질러 다닐 만큼 의욕은 대단했는데. 의욕만 대단했다. 어른들이 피로회복제, 자양 강장제 챙겨 드시며 놀러 다시시는 이유. 속상하게. 작은 도시 브뤼셀은 그 이유를 알게 해줬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