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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yaMya May 23. 2018

브뤼셀의 Rene Magritte 미술관

7살의 형의상학적 취향






Rene Magritte를 알고 있었느냐.. 하면...

중절모를 무척 아끼는 화가라는 추정 정도를 하고 있었을 뿐이다.




작은 도시 브뤼셀에는 박물관과 미술관이 정말 많다. 어딜 가면 좋을까?



만화 박물관, 악기 박물관,초콜릿 박물관, 맥주 박물관, 왕립 미술관, 르네 마그리트 미술관, Bozar 전시관.



나는 맥주 박물관에 손을 들었지만 시아에게 바로 거절 당했고, 시아는 초콜릿 박물관에 손을 들었지만 초콜릿은 두 집 건너 하나씩 있는 초콜릿 가게에서 많이 봤으니 싫다고 내가 거절했다.



서로의 취향을 얼추 절충해서 미술관으로 결정했다.




"런던에서도 미술관 가고 한국에서도 갔으니까 여기서도 가자. 여기도 말하는 거 듣게 해주는 거 있겠지?"



"아, 설명이 나오는 헤드셋 말이지?"



"응, 나는 그게 있어야 그림 보는게 재밌어."



뭘 모르는 엄마는 미술관에서 진지를 흉내내며 묵묵할 뿐이니 시아는 헤드셋을 선생님 삼아 그림을 감상한다.

애초 계획은 르네 마그리트 미술관을 포함한 왕립 미술관을 모두 보려고 했으나 예술가의 언덕을 올라 오는 사이 몹쓸 피곤이 소맷자락을 붙들어 한참 고민을 했다. 르네 마그리트 미술관은 왕립 미술관에 포함되어 있지만 별도 관람도 가능하게 분리 되어 있다.





웅장한 왕립 미술관 앞의 작은 푸드 트럭에서 파는 뜨거운 와플을 먹으며 고심하다 르네 마그리트 미술관을 보는 걸로 결정했다.



세계의 거장들의 작품을 골고루 보는 것도 좋지만, 일단 규모가 커서 다리가 더 아플 것이고, 안그래도 미술 잘 모르는 나는 너무 많은 명화를 보고 나면 실상 머리속에 남는게 별로 없더라는 경험이 이유가 되었다.

지하로 내려가 보니 매표소 앞에 줄이 어마 어마 하다. 모두 비 오는 날은 그림을 보는가 보다.







"사람이 진짜 많네. 이렇게 사람 많은데서 줄 서기는 처음인데. 다리 아프니까 돌아가면서 서 있자."



내가 줄 서 있는 동안 벽쪽의 긴 의자에 앉아 있던 시아가 조금 지나 내쪽으로 돌아왔다.

"이제 내 차례. 엄마가 가서 앉아 있어."


"아니야, 시아 혼자 서 있으면 안될 것 같아. 모르는 사람들도 많고"

"괜찮은데, 저기서는 엄마가 나 잘 보이잖아."


"잘 보이긴 하지만, 사실은 시아 혼자 서 있으면 다른 어른들이 속으로 엄마를 나쁜 엄마라고 생각 할 것 같아서 안될 것 같아."



"에이, 그렇게 생각해도 엄마는 좋은 엄마니까 괜찮은데."



의리 있는 시아는 가서 앉으라는 내 말을 마다하고 나한테 기대서서 나를 무척이나 더 피곤하게 하며 긴 시간 같이 줄을 섰다.






벨기에를 대표한다고 하고, 초현실주의의 거장이라고도 하는 르네 마그리트 미술관 매표소 앞에 7살과 줄을 서고 있으니, 참 교양있는 모녀 같다는 생각에 괜히 우쭐한다



"엄마, 그런데 여기 가면 무슨 그림이 있어?"



"르네 마그리트라는 화가가 그린 그림이 있어."



"그 사람은 뭘 그리는데?"



"응.... 모자?!!"



나의 교양이야말로 초현실적이로구나...




표를 구입하고, 사물함에 가방을 맡기고, 이태리어 설명이 담긴 플레이어를 빌렸다.

애석하게도 한국어 설명은 없다고 한다. 한국 아이들은 영어를 잘 하니 영어 설명을 듣겠지만, ABC를 큰 소리로 외우는 것이 자랑인 시아의 영어 실력으로는 어림도 없다.  시아는 이태리어 설명을 듣게 된것에 무척 만족했다



"이런건 이태리 말이 더 쉬워. 이런 얘기 한국말로 하면 무슨말인지 잘 모르는 것도 많아."




나의 부족하기 그지 없는 우리말 교육은 학교 교육에 저만큼 밀려 이제 시아는 이태리어로 설명해야 이해가 쉽다고 한다. 아주 비장했고 대단했던 우리말 교육은 이런 저런 핑계로 자꾸만 뒷전으로 밀리고, 습관만 남아 "한국말로 해!" 같이 들어도 와닿지 않는 핀잔만 반복할 뿐이다




익숙하게 플레이어를 귀에 대고 볼륨을 조절하고 그림 아래 번호를 찾아 눌러 가만히 설명을 듣는다. 어린이 용 해설장비 하나만 빌렸다. 내가 다 알아서가 아니라, 나랑 시아랑 따로 설명을 들으며 미술관을 다녀보니 속도가 안 맞아 오히려 방해가 되는 것 같아서 이번에는 그렇게 해보기로 했다.



"내가 잘 듣고 엄마한테 얘기해 줄게. 엄마는 내 옆에서 듣지 말고 있어봐."




실제 아내인 조르제트 베르제의 모습을 스케치한 그림, 여러가지 광고용 포스터등을 찬찬히 감상했다. 초현실 주의라는 이름과 다르게 초기 르네 마그리트는 무척 상식적이고, 현실에 푹 젖어 사는 나도 힘들이지 않고 고개 끄덕일 정도의 범주에 있다.

르네 마그리트라고 처음부터 초현실주의 화가였을리가 없는데, 사과 얼굴을 한 중절모 신사만 알고 있는 나는 조금 멈칫했다.



물론 초기작도, 광고용 포스터도 참 세련되다는 인상을 받았다. 전달도 확실하고, 색감도 좋다.



종알 종알 이태리말과 우리말이 섞인 시아의 해설과 함께 한층씩 내려오며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 세계의 진화를 볼 수 있었다.







L'Empire des Lumières 


전시관을 옮겨 갈 수록 내가 유일하게 알고 있는 중절모 사나이들이 등장하는 그림이 많아 지기도 하고, 나뭇잎이기도 하고 새이기도 한 무언가가 등장하는 그림, 그림이기도 하고 풍경이기도 한 그림, 발이기도 했지만 신발이기도 한 무언가, 병이기도 하고 당근이기도 한 무언가와 같은 기이한 사물을 주인공으로 하는 그림, 하늘에 둥둥 떠 있는 새와 나뭇잎과 촛대와 거울속의 아내의 모습이 나오는 그림을 통해 현실을 넘어선다는 것이 어떤 것인가 어렴풋이 이해했다.

내가 유일하게 조금 알뿐이지만 아주 좋아하는 초현실주의 화가 미로와는 참 다르다.



사실 미로의 그림은 아무리 봐도 어디 새가 있는지, 어디 여자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나는 잘 모르겠다.



그런데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은 무척 명확하다. 뭐가 뭔지 한 눈에 알 수 있고, 왜 이렇게 그렸는지도 어느정도 알 수 있을 것 같다.



시아도 해설이 마음에 들었는지, 엄마를 가르치듯 해설을 설명하는게 좋았는지, 명확하고 쉬운 것 같은 그림이 좋았는지 시아도 지친 기색 없이 신이나서 그림을 감상했다.






"너무 웃기지 않아? 왜 저기 돼지 얼굴이 있는거야? 아니, 저건 밤인데 하늘이 파란색이야. 어떻게 저렇지? 진짜 저런날이 있는건 아니지? 생각해서 그린거지? 이상한데 예쁘다. 신기해."





보존된 르네 마그리트의 메모와 인쇄물들 사이에서 신기한 그림을 발견했다.



종이를 접어 여려명이 각각 얼굴, 몸, 팔, 다리 등을 나누어 그린 것이다. 서로 다른 사람이 그린 부분을 잘 접어 보지 않은 상태에서 몸의 일부를 그렸다. 사람 얼굴에 동물 몸, 어울리지 않게 큰 발, 뭐 이런식의 그림인데, 시아는 이 '화법'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엄마, 우리도 할 수 있겠다. 집에 가서 해보자. 엄마랑 나랑 아빠랑 같이 안보고 그리면 우리는 어떤 그림을 그릴까? 화가가 이런 웃긴 그림을 그리는 줄 몰랐어. 이런 화가는 재밌겠다."





La voix du sang 앞에서는 한참 멈추어 동화 같은 해설을 들었다.



"너무 예쁘다. 나무 속에 있는 집. 나무한테 예쁘게 얘기하고 부탁하면 나무는 문을 열어준대. 문을 열고 선물을 준대. 나무 속에 살고 싶다. 위층에 올라가면 달도 있고, 너무 너무 멋있다."



그림 앞에 앉아 한참 나무에게 예쁜 얘기를 했다.



르네마그리트의 힘이 대단하다.








 La voix du sang



가볍게 생각했지만 하나도 가볍지 않았던 미술관을 나오며 물었다.




"시아는 어떤 그림이 제일 예뻤어? 나무 안에 집 있는 그림?"



"음... 그것도 예쁜데. 나는 파이프."



"파이프?"



"응, 파이프를 그렸는데, 이건 파이프가 아니라고 했대. 그건 파이프 그림이래. 그건 맞지. 내가 엄마를 그렸어도 그건 엄마는 아니지. 그치? 신기해. 나는 파이프라고 생각했는데... 아니래...."



시아가 말을 맺지 못하고 골똘하다. 나도 덩달아 골똘하다.



학부때 철학을 수업 시간에 이 책상이 책상이냐? 와 같은 질문을 했던 신선 닮은 학점 안주시는 고약한 교수님이 떠올랐다.



파이프는 아니지... 그건 이미지이고, 약속이고...






La Trahison des images



르네 마그리트의 초현실주의가 미술 모르는 나와 아직 일곱살의 마음을 사로잡은 이유가 뭘까?



우리가 유난히 현실에 발 붙이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이라 그럴까?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은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하기도 했고, 많이 웃게 해주기도 했다.



말도 안되는 상황을 연출해서 웃게 하고 꿈꾸게 하는 재주라니. 초현실주의는 참 멋있는 사조로구나.



아무래도 우리를 반하게 만든 힘은 유머인것 같다. 어른도 아이도 보이는 만큼 웃게 해주는 화가의 날카롭기까지한 유머 감각은 어렵고 복잡한 사고를 쉽게, 공감 가능하게, 재밌게 풀어준다. 





브뤼셀 여행을 마감하는 날, 파리의 에펠탑에 견주는 브뤼셀의 명물 아토미움에서도 마그리트를 만났다.



"엄마!! 우리 이거 알잖아. 또 있네!!"



"아빠 없을때 우리 미술관 가서 이거 봤는데, 진짜 재밌었어. 얼굴 없는 사람도 그리고, 파이프는 파이프가 아니라고 하고, 그래."



"나, 여기서 사진 좀 찍어줘. 오래 생각나게."



조형물로 만들어 놓은 마그리트의 작품들을 보니 몇일 전에 보았던 그림들이 마음속에 좀 더 구체적인 서사가 되는 것 같았다.


마그리트를 사랑하는 브뤼셀인들의 애정도 느껴졌다.



밀라노에 와서도 한동안 무척 지적으로 보이는 농담을 한다.



"엄마, 이 사진에 있는 나는 나야? 아니야? 마그리트는 아니라고 했겠지. 하하."



접은 종이를 앞에 두고 둘러 앉아 돼지 머리에 도깨비 가슴을 그리기도 하고, 엄청 큰 몸에 작은 발을 그리기도 하며 현실의 틈에 형이상학을 부여한다.


다음에 부뤼셀에 다시 가게 된다면 왕립 미술관 본관엘 갈 것인가?아무래도 르네 마그리트 미술관을 다시 찾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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