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엄마는 없어!

by SyaMya

아이가 어린이 집 다니기 시작하고 3개월, 생후 20개월때 모유를 끊었다. 생후 10개월때 내가 복직을 하고 부터는 아침 저녁에 한번씩 하루 두번의 수유를 했다. 그나마도 모유 양이 적어져서 모유 수유는 관계를 돈독히하고, 서로에게 위로를 주는 의식 일뿐 더이상 배를 채워 주는 식사는 아니었다.

그래서 슬슬 끊어야겠다 했는데, 마침 한 이틀 아이가 젖을 찾지도 않고 잠이 들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이렇게 끊으면 되겠구나 싶어 그대로 어렵지 않게 수유를 끊었다. 그렇게 모유 끊은지 5일이지나자 아이가 갑자기 ‘찌찌, 찌찌’를 찾는 것이다. 아이에게 '이제는 커서 우유를 잘 먹는 어린이가 됐으니 엄마 찌찌는 안먹어도 될 것 같다. 그리고 사실은 엄마도 이제 찌찌가 다 없어져서 시아가 먹으려고 하면 힘들고 아프다' 뭐이런 설명을 했다. 설명을 거듭하는 동안 하루이틀 '찌찌'를 더 찾았지만 그도 금새 그만두었다.

역시 기특한 녀석...... 이다 라고 생각했다.

수유를 완전히 끊은지 3일쯤 뒤에 어린이집 담임 선생님께서 면담 요청을 하셨다.

선생님을만나 들은 얘기는 이렇다.

아이가 적응을 잘해서 잘 놀고, 밥도 잘 먹고, 선생님도 잘 따랐는데, 갑자기 어느날 부터 많이 울고, 화를 내고, 옷도 안 입고, 지저귀 갈때도 반항하고 그러면서 'Mamma non c’e più! 이제 엄마는 없어!' 라고 한다는 것이다. 선생님께서는 생각끝에 우리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지 알고 아이의 상태를 이해하기 위해 만나자고 하셨단다. 글쎄…… 어린이 집에 자신을 남겨두는 엄마의 뒷모습이 두고 두고 분해서 그런 것 일까? 엄마가 지난 달에 일이 바빠서 조금 늦게 들어왔는데, 그 때문일까? 이것저것 추측을 하다가, ‘혹시 젖을 떼서 그런가…… 뭐 그럴리가 있겠냐, 아이는 울지도 않고 쉽게 떼었다’ 했더니 선생님께서 바로 그거라고, 그렇게 중요한 일을 왜 미리 귀뜸해 주지 않았냐고 하신다.

아이는 아마 마음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를거라고 하셨다.

'음, 나를 이상한 곳에 두고 어디를 혼자만 다니더니, 이제 젖도 안주는 구나, 젖도 안주는 사람이 무슨 엄마야? 엄마는 젖을 주는게 엄마지. 달라고 안해도 계속 주더니, 갑자기 왜 안준다는 거야. 정말화가나. 어떻게 나에게 이렇게 할 수가 있지? 달라고 해봐야 안줄거야. 어린이집도 싫다고 했는데 그냥 보냈으니까 젖도 이젠 안주겠지. 난 이제 엄마가 없는거야."

아이에게 천프로 감정 이입을 하시고 들려주시는 아이의 입장을 듣고 보니 그럴 것 같았다.

그럼 젖을 다시 줄까, 어쩌면 좋을까 하고 물었다.

선생님께서는 적당한 시기가 되면 젖은 당연히 떼어야 하지만 그에 대한 아이들의 반응은 아이의 성향에 따라 다르다고 하시면서, 당황하지 말고 계속 이유를 설명하고, 또 설명해서 이해 시키도록 노력하고, 젖은 끊었지만 엄마는 시아를 사랑한다는 것을 시아가 알수 있게 새로운 놀이를 해준다거나 더 많이 스킨쉽을 한다거나 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이유를 알았으니 그것으로 충분하다고도 하셨다. 아이도 어른처럼 기분이 좋을때도 있고 나쁠때도 있다. 그리고 기분이 나쁠때 타인이 그것을 해결해 줄 수 없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부모는 옆에서 그 시간이 지나 아이가 좀 더 성숙하도록 지켜봐 주고 안아주면 된다는 것이다. 부모가 아이의 기분을 좋게 해주기 위해서 안된다고 한것을 번복하거나 예외를 만드는 것은 아이의 자연스러운 성장을 막는 일이라고.

“화가 났구나, 하지만 엄마는 이제 젖을 줄 수 없어. 너는 이제 젖을 먹지 않아도 될 만큼 자랐거든. 하지만 기분이 안 좋으면 엄마가 얼마든지 안아줄게. 이리와. “선생님 조언대로 몇일을 이렇게 얘기하고 밤에 안아주고 아침에 안아주고 했더니, 뭔가 정말 기분이 풀린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몇일 지났더니 선생님께서도 활짝 웃으신다. 아이의 마음이 풀린것 같다고, 나더러 수고 했다고 하신다.

아이의 감정에 대해, 자존심에 대해 너무 가볍게 생각했다. 내 결정을 이해시키지 않고, 무조건 통보하고 실행에 옮기는 것이 아이에게는 너무 차갑고, 부당하게 느껴졌을 수도 있겠다 생각하니 미안했다.

아이를 인격으로 대해야겠다고 다시 다짐하지만, 인격을 대하는 나의 태도는 옳은가라는 생각에 멈추었다.

나는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가?

나는 사람에게 내 입장, 결정을 전달할때 무리함이 없었나?

나는 공감 능력을 가진 사람인가?

역시 엄마가 되기전에 사람이 되었어야했다.


한 시간이라는 시간을 할애하셔서 내 얘기를 듣고 아이의 마음을 헤아리려고 최선을 다해 주신 선생님의 정성이 감사하고 놀라웠다. 아이를 돌보는 직업을 가졌다고 해서 누구나 선생님처럼 세심하게 아이들의 마음을 헤아릴 수는 없을 것이다. 자연스럽게 돌쟁이들의 곁을 지키시는 선생님의 모습은 수년간 공들여 준비된 공연보다 감동적이다. 그 부드러운 힘의 원천은 이태리의 경쾌함일까? 몬테소리의 메세지일까?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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