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진짜 그날이 왔다.
아이가 입학을 고대하는 동안, 나는 미처 늙지 못한 온몸과 정신이 초등학생 엄마용으로 세팅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2배속 혹은 3배속 정도로 빠르게 늙어가는 이상한 느낌이었다. 아이가 학교 들어가는 일은 참으로 기쁘고 기쁜 일인데, 나는 여러 가지로 싱숭생숭 했다.
슈퍼에 지갑을 안 들고 간다거나, 밤중에 로션 대신 선크림을 바르거나, 시아 수영 등록을 하러 가면서 정작 작성해 둔 등록증을 두고 간다던가.. 정신을 어디 먼데 두고 다닌다. 시아는 다 커서 혼자 밥도 먹고 세수도 하고, 뭐든지 다 하는데, 나는 괜히 바쁘고 분주하다. 다리도 쑤시는 것 같고, 어깨도 쑤시는 것 같고, 머리도 아프다.
책가방도 다 준비하고, 연필 하나하나까지 이름표 다 붙이고, 입학식 날 입을 옷도 골라 놓았는데 이상하게 뭔가 더 해야 할 것 같고, 빠뜨린 게 있는 것만 같다.
입학식 날 새벽같이 일터로 나간 노래하는 남편은 우리 모녀가 기상할 시간쯤 전화를 했다.
"오늘 학교 잘 다녀와. 아빠가 같이 못 가서 미안해."
"괜찮아. 다음에, 2학년 시작할 때는 같이 가면 되지. 괜찮아 아빠."
스피커 폰으로 실시간 중계되는 애틋한 부녀의 대화를 엿듣다가, 흑흑.. 그만 눈물이 쏙 나고 말았다.
아이는 스스로 고른 짧은 반바지를 입었고, 나는 정말 별 일 있을 때만 입는 원피스를 입었다. 아이 몸만큼 커다란 트롤 레이 책가방을 끌고 우리 모녀는 집을 나섰다.
두근두근. 옛날 옛적 논문 발표하는 날보다 더 두근거린다.
커다란 트롤 레이를 뒤뚱거리며 끌고 가는 아이보다 두 발짝 뒤로 물러서 걸었다. 갑자기 아이가 많이 많이 커버린 것 같아 보였다. 신호등 건너 학교 앞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다. 아이도 긴장한 듯했다. 작은 입술을 비장하게 다물고, 결의에 찬 듯 성큼성큼 걷는다. 같은 반이 되고 싶었지만 다른 반에 가게 된 친한 친구들과 인사를 했다, 아이와 인사를 나누는 아이들도 며칠 사이 모두 자라 버린 것 같다.
10시가 되니 학교 교문이 열렸다. 유치원에서 아이들 등교 안내를 해주시던 M. 아주머니께서 초등학교 앞에서 아이들을 기다려 주신다. 새로운 시작을 앞두고 긴장한 아이들을 위한 배려다. 역시 아이는 낯익은 M. 아주머니를 보고 긴장이 풀린 듯 환하게 웃으며 인사한다. 매일 유치원 앞에서처럼 아주머니 품에 안겨 수즙게 웃는 아이를 보고 또. 흑흑 그만 눈물이 쏙 나고 말았다.
학교 뜰을 지나는데 2학년 아이들이 양쪽으로 줄을 서서 입학생들을 박수로 환영하며 맞아준다. 아이와 함께 유치원을 다니던 선배들도 많다. 우리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손을 흔들어 준다. 아이가 웃는다. 나는 또. 흑흑 그만 눈물이 쏙 나고 말았다.
언니 오빠들의 박수를 받으며 크지 않은 강당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엄마 아빠들과 아이들은 아무렇게나 바닥에 앉아 학교 교장선생님, 행정을 관리하시는 선생님의 축사를 차례로 들었다. 우리 작은 동네 부시장, 동네 경찰서장님도 오셔서 인사 말씀을 해주셨다. 많이 배우면, 다른 사람을 더 많이 이해할 수 있고,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있으면 다른 사람들 도울 수 있고, 그러면 우리 작은 동네가 더 아름다워지고, 이태리와 유럽이 더 아름다워질 수 있을 것이라는 부시장님의 인사 말씀이 따뜻했다.
언제든지 어려움이 있으면, 무서운 일이 있으면 경찰 아저씨와 학교 앞에서 교통 안내를 해주시는 자원 봉사자 어른들께 얘기하라고 그러면 무슨 문제든지 해결해 주겠다고 하시는 훈장 잔뜩 달린 제복을 입고 오신 경찰 소장님의 인사 말씀이 든든했다.
하나씩 이름이 호명된 아이들은 강당 중앙으로 박수를 받으며 나와 담임 선생님과 첫인사를 하고 교실로 이동했다. B반인 아이는 제 이름이 불리자 잡고 있던 내 손을 놓고 씩씩하게 일어나 책가방을 끌고 앞으로 나갔다.
박수를 쳐야 하는데 또. 흑흑 그만 눈물이 쏙 나고 말았다.
아이를 따라 빨간 코끼리가 그려진 교실로 들어갔다. 에어컨 없는 더운 교실에 작은 책상과 의자들이 있다. 아이는 제일 뒷자리에 자리 잡았다. 아쉽지만 첫 선에 제대로 나서지 못하는 엄마 아빠를 닮았다.
잠깐 교실을 둘러보고 선생님과 간단히 인사를 하고, 시아와 쪽 입을 맞추고 교실을 나왔다. 어린이집 처음 가는 날도 울었고, 유치원 처음 가는 날도 울었던 아이는 이제 울지 않는다. 앙앙 우는 소리에 가슴이 쿡쿡 아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는데, 이제는 울지 않는 아이가 대견해 또 내가 흑흑 그만 눈물이 쏙 나고 말았다.
집에 돌아와 한 시간쯤 기다리다가 아이를 데리러 학교로 갔다. 처음 3일은 단축 수업을 한다. 선생님 따라 아이들이 두 줄로 걸어 나오고 선생님께서 일일이 엄마 아빠 확인하고 아이들을 인계해 주신다.
"학교는 어땠어?"
"응, 괜찮아."
"괜찮아? 재밌어?"
"응, 그림 그리고, 선생님이 책 읽어 주고, 그랬지."
"친구들은 어때?"
"아직 모르겠어."
"준비물은 다 괜찮았어? 부족한 건 없었어?"
"아니 다 괜찮아."
아.... 더 알고 싶은데, 말을 안 해준다. 턱 받치고 앉아 듣고 듣고 듣고만 싶은데, 물어도 얘기 안 해 줄 것 같아서 조바심 나는 마음을 슬쩍 밀어 넣었다.
집에 돌아와 책가방을 풀어 보며
"색연필 다시 깎아야 되는 거 없어?"
"응, 맞다. 색연필 깎아야겠다. 그리고 내일 컵 가지고 오라고 했어. 아! 그리고 공책 두 개는 선생님이 가지고 갔어. 파란 공책은 가방에 아직 있어. 그리고, 오늘....... 선생님이 어떤 말할 때 나는 잘 몰랐어. 그래서 '뭐라고 말했어요?' 하고 물어봤어. 내가 물어봤는데 아무도 안 웃었어. 물어보는 건 부끄러운 거 아니라고 했잖아. 해보니까 엄마 말이 맞았어. 안 부끄러웠어."
짧은 한 시간 동안 많은 일을 했구나. 한국말 이태리 말을 섞어가며 두서없이 학교에 대한 인상과 첫 수업 얘기를 한다.
아, 아, 그랬구나, 하면서 아이 얘기를 듣고 나니 그제야 긴장이 풀린다. 이태리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보다 어휘와 표현력이 조금 부족해 선생님 말씀 못 알아들을까 봐, 모르면 질문하라고, 모르는 건 부끄러운 게 아니라고 했는데, 엄마 얘기를 마음에 담아 주었구나.
감사하고 다행이다.
큰 가방 들고 씩씩하게 걷는 아이보다 두 발짝 떨어져 아이 가는 길을 온 마음을 다해 응원만 하면 되는 건데, 그러면 되는 건데, 어려운 일도 즐거운 일도 아이의 몫인데, 대신해 줄 수 있는 것도 없는데, 괜히 긴장하고, 눈물을 쏙 쏙 흘렸다.
앞서 가지 말기. 옆에 딱 붙어 잡아당기지 말기. 숨 막히게 품지 말기. 첫 수업을 마치고 나는 이렇게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