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학교 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다. 새벽에 일어나서 학교 갈 시간 아니냐고 물을 만큼 긴장하고 있긴 하지만만, 아이스크림 모양의 플라스틱 펜던트가 달린 목걸이를 찾아 걸고, 상의와 어울리는 하의를 찾느라고 제대로 아침 먹을 시간도 없는 어엿한 초등학생이 되었다.
잘하고 있다.
딱 일주일 학교엘 다녔을 뿐인데 아이가 달라 보인다.
그렇게 달라진 아이랑 하교하던 어느 날
"엄마, 우리 집에 S. 놀러 오라고 해도 돼?"
S랑 S 엄마 앞에서 또박또박 이태리 말로 아이가 나에게 물어본다.
가끔 우리 집에서 친구랑 놀고 싶다고 한 적이 있긴 하지만 이렇게 공개적인 요청은 처음이다. 당황했다. 하지만 안된다고 할만한 설득력 있는 이유도 없다.
나는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했는데 목소리가 앞서 "응, 그래" 했다.
아이와 S는 손을 잡고 펄쩍펄쩍 뛰고, S의 엄마는 나에게 정말 괜찮은지, 불편한 건 아닌지 물었다. 나는 환하게 힘줘 웃으며 당연히 괜찮다고 대답했다.
그렇게 처음으로 우리 집 문이 열렸다.
아이의 안내를 받고 둘이 같이 세면대에 붙어서 손을 씻고 아이방으로 들어간 금발 소녀와 까만 머리 아이는 깔깔깔 재잘재잘 바스락바스락 우당탕 우당탕 거리며 신이 났다. 주스 한잔 주러 잠시 들어갔는데 발 디딜 틈 없이 어질러진 방 안에서 두여섯 살이 너무 다정하다.
저녁때가 다 돼서 데리러 온 엄마를 따라나서는 S가 언제 또 놀러 올 수 있는지 묻는다.
이번에는 힘주지 않고 환하게 웃으며 "언제든지"라고 대답했다.
나는 우리 집이 참 좋다. 하지만 참 좋아하는 우리 집 문을 열어 '초대'하는 일에는 참 인색하다.
내 상황과 나를 잘 아는 사람들, 유학생활 경험이 있어 척 보면 말 안 해도 아는 사람들이 아닌 누군가를 우리 집에 초대한 적이 없다. 쓸고 닦는 일에는 소질도 취미도 없으니 우리 집 상황은 전체적으로 늘 그저 그렇다. 집, 공간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별로 안 하고 살았다. 아이와 동거를 시작한 뒤부터는 전보다 조금 더 정리하고, 정돈하긴 하지만 여전히 나에게 집은 대단한 가치를 가진 공간이 아니다. 앉을 수 있고, 누울 수 있고, 밥 먹을 수 있는 정도의 공간이면 어디든지 괜찮다. 주거지에 대한 이런 태도는 오랜 타지 생활, 잦은 이사를 통해 얻어진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그냥 나는 방랑이 더 어울리는 성향의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이유야 어쨌든 나는 이렇게 생각하고 살았고, 그런 스스로에게 불만 없다. 다행히 대체적으로 느슨한 노래하는 남편은 이러한 나의 선후천적 성향을 상당 부분 인정한다. 그러니까 NO PROBLEM. 이대로 괜찮았다. 십 년도 훨씬 넘게 월세를 주고 있는, 낡은 아파트이지만 우리 셋이 지내기에 충분하다.
아이가 자라면서 친구 집에 초대를 받기 시작하면서 문제 될게 없다고 생각했던 성향과 나의 낡은 주거지가 흔들렸다.
이태리 사람들 중 대부분, 내가 만난 사람은 모두 하나 같이 집을 무척 사랑하고 아끼고 소중하게 생각한다. 꾸미고 고치고 닦는 일에 열중한다. 이사를 가면 당연히 바닥을 새로 깔고, 부엌을 새로 설치하고, 소품을 사들여가며 자신만의 공간을 만든다. 이태리 사람들이 그렇다는 걸 잘 알기 때문에 '감히' 이태리 사람들을 내 공간으로 들일 생각은 해본 적도 없다. 구태여 이상하지 않은 내가 집 때문에 이상한 사람으로 보이게 되는 상황을 만들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이는 좀 다르다. 여섯 살이고, 친구가 필요하고, 친구와 제 방에서 함께 놀며 비밀을 나누고 추억을 만들어 가야 한다.
'나는 괜찮다'가 '너에게 보여줘도 괜찮다'에 닿는 거기가 정말 자유를 누리는 곳인가 보다. 나는 보이는 내 모습에 대해 자유롭지 못했고, 내 주거지로 인해 나와 아이가 판단되는 일이 생기는 것이 두려웠다.
아이가 모든 소유로부터 새처럼 자유로워 지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우리 집은 좀 낡았으니까 친구는 다음에 초대할까? 여기 좀 고치고 초대할까? 이것 좀 옮기고 초대할까?"라고 핑계를 대면서 하나도 자유롭지 않은 내 속내를 둘러대며 살았다.
언젠가는 큰 맘먹고 3박 4일 대청소를 하고 아이의 친구를 초대하리라, 아이가 입학하던 날 마음먹었었는데, 그 언젠가가 이렇게 빨리 갑자기 예고도 없이, 청소도 안 했는데 닥칠 줄은 생각도 못했다.
두 여섯 살의 웃음소리를 들으면서 밀린 아침 설거지를 했다. 설거지를 다하고 혼자 식탁에 앉아 커피 한잔을 끓여 마셨다. 갑자기 몸이 가벼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휴.. 하고 숨을 내쉬면 몸이 떠올라 천장에 붙어 버릴 것 같다. 여섯 살들의 웃음소리를 따라 나도 혼자 하하하 웃었다.
이틀 지나고 S는 또 우리 집에 놀러 왔다.
"엄마, S가 우리 집 오니까 너무 좋아. 진짜 재밌어. 또 오라고 해도 돼지? 다음엔 나도 S네 집에 가기로 했어. S네 집은 진짜 커. 우리 집보다 더 커. S 방도 크고."
"그래. 맞아. 엄마도 전에 너 데리러 갔을 때 봤어. 엄마는 그래서. S네 집이 예쁘고 크니까 우리 집에 S를 초대하는 게 좀 부끄러웠나 봐. 그런데 이제 괜찮아. 엄마가 잘 못 생각했던 것 같아"
"우리 집이 더 작은데, 그래도 괜찮아. 우리 집에는 우리가 있잖아. 우리가 좋아하는 것도 다 있고. 나는 우리 집도 좋아. S도 우리 집 재밌다고 했어."
물가에서 한참을 망설이기만 하던 내가 아이 손에 이끌려 철퍼덕철퍼덕 물을 가르고 건너 버린 느낌이다. 내 손을 잡고 개울을 건너 준 아이가 참 커 보인다. 건너고 나니 후련하다. 건너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S 엄마도 S가 너무너무 기뻐했다고 고맙다고 했다. 곧 다가올 겨울에 우리 집과 S집 번갈아 가며 아이들 같이 시간 보내게 해 주면 좋겠다고,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는다.
"OK!! 우리 집은 처음 들어오는 게 어려워. 한번 들어오면 그다음엔 자유 입장이야."라고 대답해 주었다.
내가 나이고, 우리가 우리인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자.
문을 열고 나니 마음도 열린 것 같다. 문을 열고 나니 세상이 다정하다. 다칠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열어 줄만큼 강하고 자유로운 사람이 되거라.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