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숨바꼭질을 했는데, 내가 2학년들 노는 쪽으로 넘어가서 선생님한테 혼났어."
"아, 그랬어? 혼나서 속상했어?"
"응, 조금."
"그쪽으로 가면 안 된다고 선생님께서 미리 말씀해 주신 거지?"
"응..."
"그럼 알고 있었겠네. 그럼 혼나는 게 맞네. 그렇지?"
"그렇지. 맞아."
"학교 다니면 혼날 수도 있어. 선생님 말씀을 잘 들어서 안 혼나면 좋긴 하겠지만, 늘 그렇게 하는 건 힘들지. 혼나면, 그 다음엔 좀 더 조심하면 돼. 괜찮아."
"응, 첨에는 조금 속상했는데, 나중엔 재밌었어. 선생님 옆에 잠깐 앉아있으라고 했는데, 그 자리에 예쁜 모양 풀이 있었어. 그 풀 만지면서 놀았지."
"응? 벌서는데 놀고 있었어? 이제 저쪽으로 가지 말아야겠다. 위험하니까 가지 말라고 하셨겠구나..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어야지.."
"그냥. 재밌잖아."
"오늘 또 혼났어."
"오늘은 무슨 일로 혼났어?"
"선생님이 뭘 물어봤는데 내가 손 안 들고 먼저 말해서"
"아, 답을 얘기할 때는 손을 들고 하는 건데 손 안 들고 그냥 했구나. 손들고 얘기하는 거 잊어버렸었어?"
"아니, 원래는 알고 있었는데, 내가 손드는 사이에 다른 친구가 먼저 똑같은 말하면 나는 못하잖아. 내가 진짜 멋진 생각을 했는데.. 못 말할까 봐."
"아... 그렇지... 말하고 싶었겠다. 그래도 손들고 말하기로 학교에서는 다 같이 약속한 거니까 지켜야지. 내가 너무 하고 싶지만, 참고 기다리는 건 멋진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거야. 학교에서는 다 같이 멋진 사람이 되는 걸 배우는 거니까. 연습해야지. 그리고 다른 친구들도 모두 멋진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는데... 그런데 네가 약속을 안 지키고 말해버려서 속 상한 친구도 있었겠지."
"응, 알아. 다음엔 손들고 말할 거야. 생각은 했는데, 손들기 전에 자꾸 먼저 말을 해."
'누구 닮아 급하니 우리 딸?~'
새로 배운 거, 재밌는 일 보다 혼난 일을 먼저 얘기한다. 왜 그럴까? 그게 오늘 학교에서 있었던 일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었을까? 아이의 마음에 불편하게 자리 잡은 일이라 그럴까? 엄마에게 위로받고 싶어 그럴까? 제 번명을 하고 싶어 그럴까?
아이가 선생님께 혼난 얘기를 왜 먼저 하는지 잘 모르겠다. 좋은 얘기, 잘해서 칭찬받은 얘기만 듣고 싶은 게 내 마음, 엄마 마음이다. 하지만 고맙다. 작은 실패, 좌절을 엄마에게 나누어 준다고 생각하니 참 고맙다.
어떻게 하면 훈계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아이의 얘기에 반응할까 고민하게 된다. 아이가 들려주는 나와 함께하지 않는 시간의 소중한 일상 이야기를 더 많이 듣고 싶은데, 내년에, 내 후년에는 혹시 들려주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미리 마음 졸인다. 언제나, 실패를 들어주는 엄마가 되고 싶다. 아이가 나를 그런 존재로 믿어주길 바란다. 성공하도록 도울 만한 존재는 아니더라도 실패 끝에 떠오르는 사람이면 좋겠다. 실패를 들려주어도 추궁하지 않는 사람. 실패한 본인보다 오버해서 더 슬퍼하지 않는 사람. 적어도 아이 옆자리를 차지할 남자 친구가 생기기 전까지는 꼭 그랬으면 좋겠다.
아이에게는 조금 속상한 오늘의 얘기들을 내 자리에 서서 담담하지만 든든하게 들어주는 연습을 한다. 아마, 초등학교 1학년은 엄마더러 연습하라고 혼난 얘기 먼저 하는 모양이다. 잘하라고.
"M. 은 오늘 좀 별로였어. 나는 내가 모르는 거 있을 때 M이 알면 나는 M한테 물어보고 해. 그런데 M은 자기가 모르는 것, 내가 알려줘도 계속 선생님한테 물어봐. 그렇게 하면 좀 그렇잖아. (요즘 부쩍 많이 쓰는 표현, 어제도 반바지 입었는데, 오늘도 입으면 좀 그렇잖아? 이런 식으로)"
이 대목에서. 그건 M. 마음이지, 물어보고 싶으면 물어보는 거고, 선생님께 확인받고 싶으면 그렇게 하는 거지 라고 다분히 뻔하지만 구구절절 옳은 말을 해야할까? 아니면, 그랬구나, 친구가 너를 믿고 네가 가르쳐주는 대로 하면 좋았을 텐데. 그렇지?라고 6살의 험담에 동조할 것인가?
고민한다. 내가 네 편이라고, 그 마음 백번 이해한다고 해주는 게 좋은지, 그렇게 친구를 비난하면 안 된다고 어른 흉내를 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말 못 하는 아이의 마음을 몰라 힘들던 시절에는 아이가 말을 하게되어 그 마음을 다 알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 마음을 더없이 솔직하게 털어놓아도 여전히 어렵다. 친구라면 동조했을 텐데, 아이는 아직 어리고, 이런 상황에서 내 한 마디가 어쩌면 아이의 세상을 대하는 태도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니, 보통 무거운 게 아니다.
고민을 해도 답 없는 엄마는 이번에는 동감 표명을 선택했지만 내일은 또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나도 나를 모른다. 시각을 다투는 아이의 수다 현장인 만큼 충분한 고민은 허락되지 않는다. 나를 보는 아이의 까만 눈이 두 번 깜빡이기 전에 답을 해주어야 하는데, 엄마의 가치관, 엄마의 신념이 얕아 즉흥적인 대답들은 중심이 흐리다.
"M이 자리를 바꿨어. 그래서 나는 G. 랑 앉게 됐어."
"그래? M이 다른 자리에 앉고 싶다고 했어?"
"응. K랑 앉고 싶다고 했어."
"그랬구나. 너는 M이랑 같이 앉고 싶었던 거 아니야?"
"처음에는 다른 친구 잘 모르니까. 같이 앉았는데. 지금은 같이 안 앉아도 괜찮아. 나는 아직 꼭 같이 앉고 싶은 친구는 없어."
"그래? 다른 친구들은 어때? 서로서로 짝꿍 생겼어?"
"응, 어떤 친구들은 맨날 같이 앉고, 같이 손잡고 밖에 가고 그래."
"너는 그런 친구가 아직 없구나."
"응, 난 아직 없어. 그냥 아직 누구랑 제일 친하고 싶은지 잘 모르겠어."
진심일까? 짝꿍이 책상을 뺐는데, 정말 괜찮을까? 아이가 괜찮다고 하면 믿어야 하는데, 감정이입을 해가지고 내가 돌연 울적하다. 앞으로 5년 동안 어떤 친구와는 싸우고 어떤 친구와는 단짝이 되고, 어떤 친구는 질투하고, 어떤 친구에게는 질투의 대상이 되기도 할 텐데, 그런 일은 누구나에게 생기는 일이고, 사람은 그렇게 사람이 되어가는 건데, 아무렇지도 않은 아이의 얼굴을 자꾸 살핀다. 유치하게 속으로 책상 뺀 친구 얼굴을 떠올리며 조금 미울 뻔도 했다. 아이가 괜찮다고 했으니까, 괜찮다. 친구 사귀는 것은 정말 정말 내가 입김을 불어넣을 만한 일이 아니다. 아이의 인생에 중요한 일이긴 하지만 오롯이 혼자 해내야 하는 일이다. 얘는 어떻고 쟤는 어떻고 내가 본 꼬마 녀석들과 그 엄마들에 대해 느낌을 얘기해 주고, 참견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여기서 그만. 신경 끄자.
8월에나, 9월에나 아이는 언제나 내 딸. 그 작은 사람일 뿐인데, 아이가 처한 환경이 바뀌고 내가 처한 환경도 달라졌다. 학생, 학부형이라는 새로운 이름이 아직 몸에 맞지 않아 어색하다. 하지만 우리는 새로운 이름의 서로에게 익숙해질 것이고, 달라진 환경 안에 여전한 서로를 확인할 것이고, 지금까지처럼 아슬아슬하게 잘 견뎌낼 것이다. 나만 오버하지 않으면, 아마도 그럴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