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학년 학부형들을 대상으로 한 첫 번째 소집일이 있었다.
담임 선생님과 얼굴을 익히고, 교과 과정에 대한 설명을 듣는 시간이라고 한다.
알림장에 붙은 학부형 모임 안내를 받아보고 조금 떨렸다. 새로운 선생님, 새로운 학부형들을 제대로 처음 만나는 날이다. 앞으로 5년 동안 아이를 이끌어주실 선생님들과 함께 자랄 친구들의 부모님들을 만나는 날이다.
먼길 떠난 노래하는 남편은 함께하지 못하고 아이를 친구 집에 잠깐 맡기고 시간 맞추어 학교에 갔다.
빨간 코끼리가 붙은 B반으로 들어갔더니 각자 자기 아이 이름이 붙은 책상 앞에 앉으라고 안내해 주신다. 나도 우리 아이 자리에 앉았다.
부부가 함께 참석한 부모들이 많다. 보기 좋았다.
선생님 세 분이 인사를 하셨다. 이태리어 선생님, 수학 선생님, 종교 선생님
이태리어와 수학 선생님은 교과 과목 외에도 공동 담임 선생님의 역할을 하시고, 종교 선생님은 앞으로 5년 동안 아이들의 종교 수업을 지도해 주신다고 한다. 영어 선생님도 계신데, 옆반 담임 선생님이셔서 옆반 학부형 모임을 진행하시느라 참석 못하신다고 하셨다.
일단 선생님들은 푸근하고 노련한 분들인 것 같다. 학부형들도 돌아가며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했다.
학교 모임에서 부모들이 자기소개를 하는 줄은 몰랐다.
외국인 엄마는 이게 뭐라고 좀 떨며 짧은 소개를 했다.
선생님들께서 1학년 교과 과정 설명을 해주셨다.
매일매일 이태리어와 수학 수업이 있고 일주일에 한 번씩 영어와 종교, 체육 시간이 있다고 하셨다.
이태리어 수업 시간에는 알록달록한 코끼리 엘머 이야기를 통해 색깔 이름과 동물 이름 읽기를 익히고, 빨간 물고기 이야기를 그리고 써본다고 한다. 단어와 이미지를 연상해서 익히고, 음절을 익히고, 제일 마지막으로 알파벳 쓰기를 배운다고 하셨다.
수학 시간에는 공간과 크기 거리에 대해 배우고, 2학기가 지나면 숫자를 익힌다고 하셨다.
체육시간에는 주로 몸으로 하는 공동체 게임을 하고, 영어 시간에는 간단한 영어 노래들을 배운다고 하셨다
그리고 종교 수업. 가톨릭 수업에 대해 설명해주셨다. 종교 수업은 선택이 가능하다. 80% 이상의 아이들이 수업을 받지만 타 종교 아이들은 종교 수업 대신 다른 활동이 가능하다.
개신교 신자인 우리는 아주 잠시 고민했다. 혹시 아이가 혼란스럽지 않을까? 하지만, 우리는 기본적으로 가톨릭이 기독교의 모체이며 같은 하나님을 믿고 같은 성경을 읽는 다고 생각한다. 수녀님 신부님들의 자신을 내려놓는 삶으로의 신앙 고백을 깊이 존경한다. 그리고. 배우는 건 나쁘지 않다. 혹시 가톨릭이 아니라 다른 종교에 대해 배운다고 했어도 알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옳은 선택은 아니라는 게 우리가 내린 결론이다. 아는 것과 믿는 것은 다르다. 믿지는 않아도 알면 이해할 수 있다. 대충 알고 밀어내거나, 억울한 누명을 씌우는 대신 알게 되면 상대의 다름을 이해할 수 있다. 동의하지 않더라도 이해할 수 있다면 같이 살 수 있다.
1학년 종교 수업 시간에는 성경에 기초하여 관계, 우정에 대해 배운다고 했다. 종교 수업을 안 하는 아이들은 따로 모여 선생님의 지도 아래 또 다른 프로그램을 통해 우정에 대해 배운다고 했다. 합리적이고 꼼꼼한 배려다.
아이들은 하루에 두 시간 정도밖에 나가 놀고, 쉬는 시간도 고학년 보다 길다고 하셨다. 정해진 쉬는 시간이 있지만, 6년 살면서 오래 앉아 있어 본 적 없는 아이들을 갑작스레 자리에 묶어두면 힘들까 봐, 힘들어서 학교가 싫어질까 봐 아이들 사정을 살펴 좀 더 쉬게 해주신다고 했다. 날이 좋은 날은 이태리어 수업을 학교 뜰에 나가 하기도 하고, 수학 시간에 나뭇잎을 주워 숫자를 세기도 한다고 하셨다.
하지만 규칙, 규범을 서서히 익혀 갈 수 있도록 수업을 하는 동안은 자리를 이탈하지 않도록, 잡담하지 않도록 다소 엄하게 지도하신다고 하셨다. 아이들 자리는 아직 정하지 않았고 아이들은 얼마든지 수업 시간 전에 책상을 옮겨 앉고 싶은 곳에 앉을 수 있다고 하셨다. 난생처음 공부라는 것을 하느라 애쓰는 아이들에게 자리 선택, 짝꿍 선택 정도는 자유롭게 해주어야 하지 않겠냐고 하셨다.
1학년은 숙제가 없지만 일주일에 한 번 금요일 아이들이 학교에서 쓰고 그린 공책들을 집에 들고 가면 부모님들은 아이들의 수고와 노고를 칭찬해 주고, 한 주간 학교에서 무엇을 배웠는지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했다.
아이들이 집에서 혼자 글씨를 쓰며 놀 경우 실수가 있더라도 지적하지 말고, 격려해 달라고 했다. 틀린 대로 아이들과 같이 읽으며 기분 좋게 웃어주면 좋겠다고 했다. 집에서 예습도 하지 말고 복습도 하지 말라고 하셨다. 학교에 있는 시간이 충분하니 집에서는 충분히 쉬고 놀 면 된다고 하셨다. 다만 아이들이 좋아하는 그림책은 매일 한 권씩이라도 읽어 주면 좋겠다고 하셨다.
1학년 때는 어떤 평가도 하지 않는다고 하셨다. 공책에 채점도 안 하고 받아쓰기도 안 하고, 누가 잘하고 못하는지 가르지도 않는다고 하셨다.
틀린 글씨는 지우개로 지우고 다시 쓰면 된다는 것. 틀린 것은 바로 잡으면 된다는 것. 모두 틀릴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고 싶다고 하셨다. 학교에서 모든 아이들이 잘 지내는 것이 목표라고 하셨다. 대단히 공부를 잘하는 아이가 있는 것도 좋겠지만 그보다는 모든 아이들이 학교에서 즐거웠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아이들은 즐거운 것, 재미있는 것을 열심히 하고 잘하니, 학교가 즐거운 곳이 되고, 수업이 즐거운 시간이라면 아이들은 공부도 즐겁게 할 것이라고 하셨다. 아이들 중에는 이미 글씨를 다 아는 아이들도 있고, 전혀 모르는 아이들도 있지만, 스스로가 우월하다거나, 부족하다고 느끼지 않도록 서로 도와 모두 빨간 물고기 이야기를 읽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하실 것이라고 하셨다.
작은 사람의 책상 앞에 앉아 선생님들 말씀을 듣고 있으니 나도 초등학생이 된 것 같다. 처음 듣는 이태리 초등학교 선생님들의 교과 과정 설명이 신기하다.
여기 앉아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선생님 설명을 듣고, 여기 앉아 손을 들고 질문을 하고, 여기 앉아 콧등에 땀이 매치며 연필을 꾹꾹 눌러 글씨를 쓰고, 여기 앉아 혼나기도 하는 아이를 떠올리면서 나도 아이처럼 열심히 들었다.
내가 경험한 초등학교 생활과는 많이 다르다. 이태리라 그런 건지 내 국민학교 1학년과 아이의 초등학교 1학년 사이 세월의 간극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다.
"오늘은 학교에서 뭐하고 놀았어?"
"오늘은 새로운 놀이 배웠어. 친구가 가르쳐 줬어. 엄마도 같이 해볼래? 진짜 재밌어."
"엄마, 그 친구 있잖아, 저번에 나올 때 나하고 손잡고 나온 친구, 그 친구랑 오늘 같이 앉았는데, 그 친구가 내가 없는 색연필 나한테 빌려줬어."
"마음대로 그림 그리라고 했는데, 내가 물고기 그려서 친구가 예쁘다고 했어. 그래처 친구한테도 하나 그려줬어."
"엄마 내 공책 보여줄게. 선생님이 보여주라고 했어. 진짜 많이 공부했어. 이거 봐, 줄도 그리고, 점도 그리고, 그렇지? 여기서 코끼리 글씨 찾는 건데 내가 찾았어. 그래서 붙였어. 예쁘지?"
"응, 진짜 재밌겠다. 참 대단하다. 유치원이랑 다른데 그래도 너무너무 잘하고 있네. 엄마는 이태리에서 학교 안다녀 봐서 네가 보여주는 게 다 신기해. 너무 흥미로워."
"내가 엄마한테 다 얘기해 줄게. 매일 얘기해 줄게. 그런데 한국은 어때? 한국 학교는 달라? 한국 학교에서는 엄마 뭐했어?"
"엄마는 어렸을 때...."
머지않아 아이도 세상 모든 아이들처럼 학교 안 가려고 꾀도 부리고, 공부 싫어서 짜증도 내겠지만, 적어도 지금 다니는 학교는 재미있는 학교다. 여섯 살에 영어에 천자문은커녕 노는 것 말고는 이태리어 알파벳도 모르는데 학교에서 배우는 것도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은데, 그래서 다행이다. 온전히 즐길 수 있는 시간이 아직 남아서. 어려운 즐기며 사는 그 어려운 기술을 배울 시간이 아직 남아서.
학교 얘기하면서 환하게 웃고, 학교 끝나고 마중 나온 엄마 향해 깔깔 웃으면서 달려오는 아이라면 충분하다. 선생님들의 염원처럼 아이가 학교를 좋아하고 학교에서 잘 지내는 법을 익히길 바란다. 나중에. 어느 지친 하루의 끝에, 해도 해도 안될 것 같은 문제 앞에, 오늘의 웃음이 단단한 근육이 되어 다시 하하 웃고 가던 길 계속 갈 수 있는 힘을 줄 수 있기를 바란다.
선생님 말씀 잘 듣는 엄마는 안 보여주면 공책도 안 들여다 보고, 예습도 복습도 안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