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으로 가는 길

by SyaMya

우리 아가가 내일모레면 초등학생이 된다. 믿을 수 없는 그 날이 저기 길 건너에 있다. 여기까지 온 우리가 신통 방통 하다. 누군가 초등학생이 뭐 그리 대단한 일이냐고 묻는다면 초등학생이 왜 대단하지 않냐고 반문할 것이다. 아이를 낳는 것, 키우는 것, 크는 것, 버티는 것, 어떤 것 하나도 그냥 되는 건 없고, 당연하게 얻어지는 건 없다. 영글지 못해 어리숙한 부모도, 그런 부모랑 같이 사는 아이도 하루하루 감사를 알아가느라 치열했으니, 새로운 세상, 더 넓은 세상으로 한 발 내딛는 이 순간을 자축하지 않을 수 없다.


"학교 가는 날 몇 밤 남았지?."

"아, 열 두 밤. 왜? 학교 가고 싶어? "

"응, 가고 싶어."

"가서 뭐 하고 싶은데?"

"몰라, 뭐하는지 모르는데, 그래도 가고 싶어. 저번에 학교 가봤는데, 진짜 커. 재밌었어."

"그래? 뭐가 재밌었어?"

"그냥, 선생님도 새로운 선생님이고, 교실도 진짜 많아. 친구들도 진짜 많아."


유치원에서 단체로 두 차례 초등학교 방문을 했었다. 학교 구경도 하고 놀기도 하고, 그림도 그리고, 언니 오빠들 밥 먹는 식당에서 같이 밥도 먹어봤다. 학교 다녀온 얘기를 할 때마다 얼굴이 분홍색으로 변했었다.

유치원보다 훨씬 큰 학교, 같이 유치원 다니던 선배들과의 재회, 책을 펼쳐 놓고 공부하는 교실, 따로 앉을 수 있는 책상. 그리고, 저 문을 드나드는 순간. 큰 언니로 신분 상승을 할 수 있다는 기대로 학교를 고대했다.



동네에서 만나는 어른들도 입학을 앞둔 아이에게 축하 인사를 건네주신다. 아이는 입학 축하 인사를 받으면 사뭇 비장하고 의연한 표정으로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아직 무슨 반으로 들어갈지 모르겠어. 학교에는 E반까지 있어. F 반은 없어. Z반은 당연히 없지'라고 준비한 대답을 건넨다. 입학은 역시 참 대수로운 일이다.


인구 적은 밀라노 변두리 도시에서 어린이 집은 시청 관할 접수처에서, 유치원 신청은 초등학교 서무실에서 신청한다.

하지만 초등학생은, 자그마치, 어느 동네 사는지와 관계없이 교육청 사이트에 들어가서 신청을 한다. 희망 학교를 기입하고, 부모와 학생 본인의 정보를 기입하도록 되어 있다.

이름, 생년월일, 주소지 등등 당연한 정보 말고, 조금 생소했던 것은 수업 시간을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 있다는 것이었다.


종일 수업 Tempo Pieno : 아침 8시 반부터 오후 4시 반까지, 오전 수업 Tempo Ordinario : 아침 8시 반부터 오후 12시 반까지를 선택할 수 있다. 교육에 대한 가치관, 아이들의 건강, 또 다른 사정으로 종일 수업을 선택하지 않는 아이들이 있다. 오전 수업 신청 정원이 채워지면 그 아이들만 모아 반을 따로 편성한다. 보통 한 학년마다 한 반의 오전 수업 반이 만들어진다고 한다. 오후에는 진도를 나가지 않고, 복습을 하거나 체육을 하거나 모여 놀기 때문에 오전 수업을 하는 아이들이 교과 과정을 따라가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다고 한다. 오히려 학교에서 노는 대신 집에 돌아와 차분하게 혼자 공부하는 법을 익히는 게 좋다고 생각해 오전 수업을 선택하는 엄마들이 있다.


우리는, 일말의 갈등도 없이 종일 수업을 선택했다. 엄마가 반쪽짜리 워킹맘이라 그렇기도 하고, 혼자보다는 다 같이 놀고, 다 같이 공부하는 게 더 즐겁지 않을까 해서 이기도 하고, 대단한 교육 철학이 없으니 다수를 따라 평범하게 가는 게 좋은 것 같기도 해서다.

그렇게 모든 항목을 기입하고, 신청을 했더니 3월 초에 입학 허가 메일이 도착했다.


교과서는 여름 방학이 시작될 즈음, 동네 문구점에 아이 이름과 학년을 대고 교과서를 미리 신청을 해두어야 한다고 한다. 동네 문구점 중 교과서를 취급하는 곳을 알아보고 그중에 마음에 드는 문구점을 통해 신청하면 된다. 신청을 해두면 학기초에 학교에서 쿠폰을 발급해 주고, 그 쿠폰을 가지고 문구점에 가면 책을 내준다는 것이다. 초등학교까지는 교과서가 무료이기 때문에 따로 비용을 지불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전혀 상상도 못 했던 방법으로 교과서를 받는다.

내가 이런 건 혼자 알아냈을 리는 없고. 올 초 아이가 초등학생을 꿈꾸기 시작했을 때부터 나도 초등학생 엄마 준비를 했다.

그 준비라는 것은. '나 몰라!!'

아이 친구 엄마 몇 명에게 대 놓고

"난 외국이잖아. 이태리에서 학교라는 곳은 다녀 본 적이 없어. 그래서 여기 학교는 어떻게 들어가고 가서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하나도 몰라. 귀찮겠지만, 나 좀 도와줘. 너희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들도 난 모르거든. 학부형은 뭘 어쩌면 되니?"

라고 들이댔다. 내 일이라면 그렇게 까지는 못했을 텐데, 전략적으로 협조적인 엄마들에게 생글생글 미소를 날려가며 친분을 쌓고 손을 내밀어 도움을 요청했다.

엄마들은 감사하게도 혼자서는 절대 알 수 없었을 놀라운 정보들을 전달해 주었다.


준비물:

책가방 - 매일은 아니지만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무지 많은 책을 들고 다녀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바퀴 달린 트롤 레이 겸 배낭을 사주라고 했다. 저학년 교실은 아래층에 있어 계단 오를 일이 없으니 트롤 레이 끌고 다니는데 무리가 없다고 한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만화 캐릭터는 삼가라고 했다. 2학년 되면 좋아하는 캐릭터가 달라져 새 가방 사달라고 할 수 있다고 했다.

아이는 캐릭터가 없는 검은색 트롤 레이 가방을 선택했다. 분홍색 잔잔한 무늬가 있기는 하지만 3학년 아니라 중학생도 들고 다닐 수 있을 것 같은 가방이다. 아이의 선택을 열렬히 지지해주었다.

필통: 반드시 지퍼가 달린 3단 필통을 사라고 했다. 색연필, 사인펜, 가위, 풀 등을 구분해서 담아야 한다고 했다. 아이는 이번에도 역시 캐릭터 없는 형광 노란색 3단 필통을 선택했다. 감사했다.


이쯤 준비하고 있는데, 학교 사이트에 준비물 공지가 올라왔다.


삼각형 연필, 1cm짜리 네모칸 공책 4권, 0.5cm 네모칸 공책 1권, 빨강, 파랑 표지 하나씩. 얇은 색 사인펜, 두꺼운 색 사인펜, 색연필, 가위, 풀, 지우개, 이름 쓰여있는 주머니 하나, 갈아입을 옷 한 벌, 체육시간에 신을 운동화 한 켤레, 휴대용 휴지.


동네 문구점에 가면 학교 공지에 맞는 준비물을 준비해서 세트로 구입할 수 있긴 하지만, 학용품은 대형 마트가 저렴하다고 엄마들이 귀띔해주었다. 여유 분 공책은 한 두권 정도를 더 구입해 두면 좋다고도 했다.


학용품에 붙일. 이름 스티커도 하나 만들어 봤다.


아, 그럼 다 된 건가?... 이제.. 몇 밤 남았지.... 설레고 떨린다. 옛날 옛날에 엄마가 새로 사준 바바리코트에 손수건을 달고 입학했던 꼬맹이 생각이 난다. 아직 어리둥절했고, 조금 두렵기도 했던 그 설렘이 참 또렷이 남아있다. 아이에게도 평생 남을 그 날이 될까? 아이는 그날 어떤 색의 설렘을 품을까?

초등학생이 되는 건 참 대단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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