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살.
대단한 나이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나이. 어린이가 되는 나이. 교통비를 비롯한 각종 시설 이용 요금이 오르는 나이. 쑥 자라 버린 것 같은 나이다.
엄마보다 여섯 살의 의미를 더 알고 있는 것이 분명한 딸은 여섯 살이 되기 한참 전부터 여섯 살이 되는 날을 기다렸다. 저보다 먼저 여섯 살이 되는 친구들에게 생일 축하 노래를 불려주며 제 생일을 기다렸다. 여섯 살이 되면 할 수 있는 것들, 해야 하는 것들을 꿈꾸었다.
여섯 살이 되는 생일날에는 다른 친구들처럼 키즈카페 같은 곳을 빌려 생일 파티를 해주려고 했다. 약속을 한건 아니지만 그러려고 했다. 지금까지 5번의 생일은 행복했지만 조금 조촐했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축하했지만 그래도 아이가 초대받아 다니는 생일 파티 만은 못했다. 그래서 이제 유치원 마지막 학년, 새로운 시작을 앞둔 6번째 생일만은 아이에게 기억에 남는 날로 만들어 주고 싶었다.
그리고. 남들처럼 해주고 싶었다.
남들처럼 이라면 좋은 것도 안 하려고 하는 삐뚤어진 마음을 가진 엄마지만, 그래도 내 자식에게는 남들처럼 해주고 싶었다. 꼭 해야 되는 일이 아닌 것도 잘 알고, 그런 생일 파티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지만, 그래도 그건 내 생각이고, 아이는 여섯 살이 되고, 친구들이 다 하는 신나는 생일 파티를 하고 싶어 하니까. 나도 해주고 싶었다.
우리에게 5월은 4월보다 잔인하다. 매년 5월에는 공과금 영수증과 예상했으나 준비하지 못한 무수한 지출이 쏟아진다. 정황상 언제나 알뜰하지만 철저하지 못한 우리는 그런 상황들을 최대한 스트레스 없이 지나기 위해 대충 뭉뚱그려 생각한다. 아이가 여섯 살 되는 5월에는 뭔가 대충 생일 파티 정도는 해 줄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던 상황들이 벌어졌고, 결국 아이의 생일 파티는 무리라는 결론을 내렸다.
갖고 싶은 마음, 하고 싶은 마음 정도는 툭툭 털어버릴 수 있는 마음 근육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했지만, 아이의 일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처럼 마음이 연한 살을 드러낸다. 생일 파티를 하지 않기로 결정을 하고도, 미련이 남아서 달그락달그락 주머니를 뒤지기도 하고, 온 동네 키즈 카페 견적을 기웃거리기도 한다. 미련이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았고 미안했다.
이런 정도를 자식에게 해주지 못한다고 미안하다고 하는 것도, 오늘. 이 세상에서는 사치스러운 마음일 게다. 키즈 카페에서의 생일 파티는 다들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가 안보는 세상에서는 아무도 안 하는 일일 것이다. 여섯 살을 몇 주일 남긴 어느 날. 탁탁 마음을 털고, 시아를 마주 보고 앉았다.
자세히는 아니지만, 생일 파티를 예년처럼 엄마 아빠랑, 주일날 교회에서 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이런 것 까지 설명해야 하는지 아닌지, 판단이 서질 않았지만, 그렇다고 딱히 둘러댈 이유도 없어 그냥 있는 대로 얘기하기로 했다. 그리고, 앞으로 우리 셋이 살면서 이런 일 한두 번은 훨씬 넘게 생길 테니, 처음부터 이런 상황에 대해 양해를 구하고, 그 상황에 대한 우리 입장을 들려주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엄마 아빠가 해주고 싶은 대로 다 해 줄 수 없는 이유. 해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 하지만 해주거나 해주지 못하는 것과 사랑의 크기는 전혀 차이가 없다는 얘기. 엄마 아빠가 사는 방식, 어쩔 수 없기도 하지만 선택이기도 한 상황에 대해 최선을 다해 설명했다.
약속은 안 했었지만 아이가 생일 파티를 얼마나 기대하고 있었는지 잘 안다. 그래서 얘기하기 참 어려웠다. 아이의 반응을 예상하기 어려웠고, 어떤 반응에 어떤 식으로 대처해야 할지 작전도 없다.
엄마가 구구절절 얘기하는 동안, 두어 번 "그래도 나는 파티하고 싶은데..."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엄마의 구구절절의 결론에 대해 "알았어. 괜찮아."라고 대답했다.
간단하고, 시원한 대답이라 더 당황스러웠다. 대답이 너무 짧아서 그 속의 아이의 마음이 안 보인다.
아이의 얼굴을 빤히 드려다 본다.
"그럼, 대신 엄마랑 아빠랑 선물 따로따로 하나씩 해주고, 카드도 하나씩 그려줘."
"응? 그럴까? 알았어. 엄마랑 아빠랑 선물 따로따로 준비할게."
"엄마 마음은 미안하지만, 사실 이건 미안한 건 아니야. 그냥 사람들은 다 다르니까. 모두 똑같은 걸 가지고 살지는 않아. 앞으로도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가진 걸 갖지 못할 수도 있고, 다른 사람들이 없는 걸 가질 수도 있을 거야. 뭐가 더 멋있는지, 누가 가진 게 더 좋은지, 그런 건 정해진 게 아니야. 엄마는 우리가 갖지 못한 것보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들이 더 멋진 것 같아."
"우리가 가진 것 중에 제일 멋진 게 뭔데?"
"우리 딸!!!"
"하하 그건 말고, 다른 거"
"우리가 같이 노는 시간, 네가 우산이랑 책으로 만든 집에서 같이 소꿉장난하는 거, 돗자리 들고 공원 가서 빵 먹는 거. 네가 잘 때 엄마 혼자 책도 읽고, 쓰기도 하고 그러는 것. 아빠랑 네가 소 타기 놀이하는 거 구경하는 거랑, 아빠 노래 연습할 때 네가 아무렇게나 피아노 쳐주는 거 보는 것도 멋지고"
다섯 살이라, 아직 어려서 그렇게 포기가 쉬운가? 지금까지 다섯 평생 살면서 포기할 일이 많아서 포기가 쉬워졌나? 시원하게 포기하고 환하게 웃어주기까지 하는 아이를 보면서도 혹시 작은 마음속 어디 아픈 자욱이 남지 않았을까 자꾸 기웃거리게 된다.
나의 모성이라는 게 그리 대단하지 못하여, 나는 아이에게 주지 못하는 무수한 것들을 내 마음에 담아두고 쓰려하지는 않는 편인데, 여섯 번째 생일은 대수롭지 않은 모성마저도 조금 쓰리게 한다.
아이의 부탁대로 엄마 아빠는 따로 작은 선물을 준비했다. 색지를 오리고 그려 카드도 하나씩 만들었다. 시아가 제일 좋아하는 별가루 뿌려진 작은 초콜릿 케이크도 준비했다. 멀리 한국에 계신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찬조해 주셔서 아이가 갖고 싶어 하던 선물을 두 가지 더 준비했다. 생일날 새벽에 일어나서 엄마 아빠를 깨워 촛불 끄고 선물 뜯고, 카드 받아 들고 초콜릿 케이크 한쪽 잘라먹으면서 행복했다.
어린이날 근처에 태어난 덕에 주일 학교 생일 파티는 늘 어린이 주일과 겹친다. 언제나처럼 특별한 행사 끝에 언니 오빠들 축하를 받으며 촛불을 끄며 시아는 한 번 더 한 없이 행복했다.
"엄마, 이번 생일은 진짜 좋아. 제일 좋아. 선물도 많이 받고, 다 시아가 좋아하는 것만 받았어."
"그래? 다행이다. 엄마는 혹시 친구들이랑 키즈카페 가서 생일 파티 못해서 서운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아니야. 키즈카페는 다른 친구 생일날 가면 되지. M. 생일. S 생일 그럴 때 가서 놀면 되지."
"그렇네. 맞다. 거기는 다른 친구 생일날 축하해주러 가서 놀면 되지."
그리고 며칠 안 지나서
"엄마!!!! 이빨 흔들려!!!! 이거 봐!!!! 내가 커졌나 봐!!!! 내가 여섯 살이 돼서 이제 이빨도 흔들려!!! 새 이빨이 올 거야. 그렇지?"
친구들 이빨 흔들릴 때마다 내심 부러워하고 신기해하던 아이가 하루 종일 흥분했다. 여섯 살 생일 선물로 새 이빨까지 받게 되어 참 좋다.
"신기해? 어떻게 내가 여섯 살 되는 줄 알고, 이빨이 흔들렸지. 이빨이 나올까 말까 하다가 기다렸나 봐. 여섯 살 되면 나오려고. 너무너무 신기해."
아이의 여섯 번째 생일은 정말 행복이 톡톡 팡팡 불꽃처럼 터지는 특별한 시간이 되었다.
해주지 못한 우리. 하지 못한 아이는 여전히 남았지만, 최고로 행복한 아이, 그래서 최고로 행복했던 우리도 있다.
많은 사랑을 받으며 여섯 살이 되었다. 많은 분들의 사랑에 기대어 셋이 나란히 6년을 같이 살아올 수 있었다. 사랑한 만큼 행복한 만큼 힘들기도 했고, 막막하기도 했고, 끝이 없을 것처럼 길기도 했던 하루하루들을 이만큼이나 지나왔다.
아이의 여섯 번째 생일에 짠하고 반짝반짝한 놀라운 반전은 없었다. 아마 앞으로도 우리는 비슷하게 이렇게 살아갈 가능성이 다분하다. 해줄 수 있는 것보다 해주지 못하는 것들이 더 크게 보일 날들도 올 것이다. 그런 날. 여섯 번째 생일을 기억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우리가 기대했던 반전은 없었지만, 여섯 살 되는 아이는 행복했다.
내가 그린 행복만 행복이 아니다. 이만큼 살았어도 내가 그린 행복이랑 다른 모양의 행복을 만나면 잘 알아보지 못한다. 여섯 살은 모든 행복을 똑 같이 행복해한다. 감사. 사랑. 모든 모양의 좋은 것들에 적극적으로 행복해 하자.
해주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 너무 많이 미안해하지 말기. 해 줄 수 있는 것들에 최선을 다하기. 혹시 만나게 될 아이의 원망에도 너그럽기. 소유의 문제로 우리 셋 흔들리지 말기. 서로에게 솔직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