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통역사

by SyaMya

아이가 29개월 만큼 살았다.

어린이집을 마치고 아파트 놀이터에 들러 쉬지 않고 뛰고, 그네 타고, 미끄럼 타고, 나뭇잎 주워서 엄마한테 파스타랑 사탕도 만들어 주고, 공 던지고, 친구들 나오면 부끄럽다고 엄마 뒤에 숨기도 하고, 나무한테 인사도 하고, 지나는 사람과 동물에 일일이 참견을 하며 잠시도 쉬지 않고 신나게 놀았다

아파트 놀이터에 주로 나오는 강아지는 Gregori, Beba, Whisky 이렇게 세 마리이다. 모두 순하고 얌전한 개들이라 아이들에게 조금도 위협이 되지 않는 녀석들이다. 그중에서 나이가 제일 많은 Beba는 아이들이 쓰다듬어 주고 아는 척하는 것을 좋아했다. 아이도 놀다가 Beba가 없으면 "Beba 어딨지?" 하고 꼭 찾곤 했다. 그렇게 아이가 찾으면 제 이름 부르는 소리를 멀리서도 알아 듣고 아이 앞으로 Beba가 먼저 다가 왔다. 엄마 손을 강아지에게 끌어가며 "엄마가 먼저 만져봐!" 하고 엄마가 강아지 쓰다듬길 기다렸다가 그제야 저도 다가와 앉아 등을 쓸어 주곤했다. 그러다 Beba가 고개를 돌려 아이를 보거나, 꼬리라도 치면 깜짝 놀래 뒤로 물러 나면서도 좋다고 깔깔 웃었다.

아파트 정원에 있는 마로니에 나무 밑에서 아이와 먹을 수는 없지만 아주 크고 색이 고와서 장난감으로 사랑받는 밤을 줍고 있던 어느날 Beba의 주인 할머니가 오셔서 Beba를 찾으셨다.

"Hai visto la Beba? (Beba 봤니?)"

"No, non e' passata da questa parte" (아니요, 이쪽으로는 안 지나갔는데요)

멀리서 Whisky가 Beba네 할머니를 알아보고 달려왔다. 할머니는 달려온 Whisky에게 Beba를 찾으러 가지고 하신다.

"Andiamo insieme a cercare la Beba!" (같이 Beba 찾으러 가자!")

그런데 갑자기 아이가 벌떡 일어나서 할머니를 따라나섰다.

"어디가?"

"Beba 없잖아, 찾으러 가자, 엄마도 일루와요! (이리와 요)"

많은 시간을 어린이 집에서 보내니 이태리 말을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긴 문장을 이해하는 정도라고는 미처 생각을 못했었다. 강아지 Whisky에게 건네신 할머니 말을 들은 아이는 저더러 같이 Beba를 찾으러 가자고 하신 줄 알았던 모양이다. 이태리 말을 알아듣고, 금세 그 뜻을 한국말로 엄마에게 전달하는 아이가 신통 방통해서 나도 일어나 싱글벙글 웃으며 Beba를 찾아나섰다.


2중 언어에 대해서는 여전히 그 의견이 분분하다. 2중 언어에 노출된 아이들은 단일 언어를 사용하는 아이들에 비해 언어 능력과 인지 능력, 집중력이 발달한다고 긍정적으로 보는 학자들이 있는가 하면, 단일 언어의 경우보다 많은 양의 표현에 한꺼번에 노출되기 때문에, 단어 습득이 느리며 올바른 표현력을 갖추는데 시간이 더 많이 걸리고, 때문에 발달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심리적인 스트레스를 격게 된다고 보는 학자들도 있다.

나는. 심리적인 스트레스는 반대지만, 조금 더딘 발달이라면 문제가 될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에는 마음이 묻어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는다. 그래서 아이가 엄마의 아빠의 마음이 묻은 '우리말'에 제 마음도 담아주길 바란다. 그건 되면 좋고 아니면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가지고 있는 유일하고 아주 절실한 교육 방침이다.


노래하듯 말하는 이탈리아에서 하루하루 더 살아갈수록 더 많은 마음을 이탈리아어에 담게 될 것이고, 그것을 억지로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걸 알지만, 그래도 나는 아이와 소근소근 우리말로 친구 얘기, 학교 얘기도 하고, 짧은 시를 같이 외우고, 개그 프로그램을 보며 같이 웃는 그런 일상을 꿈꾼다.


2중 언어에 노출된 아이들에게 부모가 강압적으로 모국어를 강요할 경우 오히려 아이들은 그 언어를 거부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런 경우 시간을 들여 모국어 교육을 한다고 해도 마음이 거부하는 언어를 습득하기 어려울 것이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엄마와 아빠의 말, 제 나라의 말을 사랑하게 해주고 싶다. 마음이 묻어 있는 언어라는 것은 단순한 교육 방식의 문제로 풀 수 있는 문제는 아닐 것이다.

지지고 볶는 보통의 일상에 내 마음을 가득 담은 우리 말을 정성스럽게 심는 것. 내가 심은 말들이 아이의 마음에 열매를 맺을 때까지 서두르지 않고, 느긋하게 기다리기. 내 교육 전략이다.

우리는 잘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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