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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yaMya Jun 25. 2020

자전거 도로가 좋다고 인도가 없는 건 아닙니다.

코펜하겐은 자전거 도시 1호라는 명성에 걸맞게 무척 안전하고 효율적인 자전거 도로를 보유하고 있다.

실제 코펜하겐 시내에서는 대중교통이나 승용차보다 자전거를 이용하면 목적지에 더 빨리 도착할 수 있다.

모두 언제나 자전거를 탄다. 날이 좋아도 좋지 않아도 자전거를 탄다.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을 하고 등하교를 하고 장을 보러 다니고, 저녁 식사를 하러 다닌다.

남편과 아이는 2년 전 덴마크에 오자 마자 중고 자전거를 한대 씩 구입했고, 나는 둘 보다 조금 늦게 자전거를 구입했다.

나의 자전거 구입이 늦어진 이유는 사이즈에 대한 망설임 때문이었다.

다리 길이만 내 키 정도 되는 덴마크 사람들은 바퀴가 아주 큰 자전거를 탄다.

나는 비록 짧은 몸을 가졌으나 신분이 성인이기에 성인용 자전거를 구입할 생각이었지만, 날개를 달기 전에는 오를 수 없는 높은 성인용 자전거를 몇 번 시도하다 포기했다. 12-14 세 용은 오르고 내릴 때마다 많은 고생과 약간의 부끄러움을 감수해야 할 정도의 높이였고. 10세 용은 적당했다. 10세용 중고 자전거를 구입해서 의자를 최대한 낮추고 몇 번 승하차 연습을 하고 남편과 아이를 따라 자전거 나들이를 시도했다.

자전거 나들이는 즐거웠지만, 나는 아무리 페달을 돌려도 남편과 딸을 따라갈 수 없었고, 멀쩡히 섰던 가로수가 나를 향해 다가오는 것 같아 가던 길을 멈추기도 하고, 우회전 각도를 맞추지 못해 자전거 도로를 이탈하기도 하고....

남편은 도대체 이해하지 못한다고 핀잔을 주고, 딸아이는 내가 걱정이 되어서 수십 번씩 나를 부르고...

남편에게 운전을 배웠다면 한 시간 만에 이혼했을 거라고, 내 라이딩에 대해 일체의 잔소리를 멈추고,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위로가 아니라면 그 입을 다물라고 서러움에 복받친 울분을 터뜨렸다. 앞으로 한 동안 자전거를 타지 않겠다고 선언도 했다.


자전거를 좋아한 적은 없었지만, 코펜하겐에 오면서 여행책자에 등장하는 코펜하겐 인들처럼 유유히 자전거를 타고 도시를 가로지르는 일이 나에게도 일어나리라고 확신했었다. 어릴  여의도 광장을 가로질렀던 실력이 여전히 남아있다. 직진쯤은 지구 끝까지도 할 수 있을 만큼 안정적이다. 하지만 찻길 닮은 자전거 도로에서의 주행 경험은 매서운 현실을 일깨워주었다. 옆 차도에서 쌩쌩 달리는 승용차들의 무시 무시한 존재감으로 심장이 쪼그라들었고, 갈길이 급한 덴마크 사람들이 뒤를 따라온다는 사실은 다리를 뻣뻣하게 했고, 신호등이 바뀌면 재빨리 출발을 해야 한다는 압박은 10세 자전거도 거인 자전거처럼 버겁게 느껴지게 했다.


남편의 사죄와 다짐. 나의 망각 같은 것이 작용해 다시 자전거에 올랐고, 무섭게 생긴 신호등 앞에서는 아주 내려서 자전거를 끌고 길을 건너고, 각이 날카로운 우회전 도로가 나타나면 자전거를 끌고 인도로 올라가는 나만의 생존 라이딩을 구사하며 그럭저럭 적응하고 있다.


아이를 통해 사귄 덴마크 엄마들이 자전거 나들이를 가자고 했다. 아이들을 데리고, 동네 공원을 지나 바닷가를 한 바퀴 돌아오자고 했다. 답을 보류하고 예습을 해보기로 했다. 왕복 한 시간 정도 거리라고 하고, 차도도 없이 자전거 도로만 이어지니 어렵지는 않을 것 같았다. 자전거를 타고 소, 양, 말이 사는 공원을 다 지나자 거칠지만 자연스러운 덴마크의 바다가 나왔다. 도시에서 그토록 넓고 맑은 바다를 볼 수 있다니 역시 자전거를 포기하지 않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등 뒤로 살랑살랑 바람이 부는 것 같았는데, 어느새 그 바람이 나를 마주했다. 바람은 페달을 돌리는 내 다리를 꼭 붙들고, 얼굴에 후후 찬기를 불어가며 후진을 시키는 것이다. 아무리 아무리 페달을 돌려도 나는 아까 그 자리에 서있고, 저만큼 앞서가던 남편과 아이는 멈추어 서서 나를 기다린지 오래다. 돌리고 돌리고 돌리다가, 자전거에서 내렸다.

"난 좀 쉬었다가 걸어갈래. 도저히 못 타겠어."

남편은 핀잔을 할 것 같은 표정이었지만, 이내 삼켰고, 아이는 내 손을 잡아주었다.

나는 넓은 바다에서 하트 모양을 만드는 백조 한쌍을 보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아! 나의 허벅지는 왜 이 바람을 가르지 못하는 걸까? 나는 왜 자전거도 못 타면서 코펜하겐에 살고 있는 걸까?

코를 훌쩍 거리며 자전거를 끌고 긴 바다를 다 구경하고, 천근의 다리를 이끌고 집에 왔다. 슬픈 건지 화난 건지 모르겠는 나를 묵묵히 기다려준 남편과 아이는 조심스럽게 그날의 소감을 얘기했다.

"왕복 한 시간이라더니 3시간 걸렸네. 뭐 그럴 수도 있지."

"엄마는 바닷가 가면 너무 힘들어서 안될 것 같아. 우리 이제 바닷가는 가지 말자."


말이 서투른 외국인을 끼워주고 만나주는 게 고마워 엄마들 모임에는 꼭 참석하려고 하지만, 이번 자전거 나들이에는 빠지기로 했다.

"미안하지만, 나는 이번 모임에 참석하지 못할 것 같아. 사실. 나는 자전거를 잘 못 타거든. 자전거 나들이 한 번으로 나의 사회적 이미지를 완전히 손상시킬 수는 없어. 언젠가 준비되면 그 때 함께 하도록 할게."

나의 비장한 거절에 친구들은 괜찮다. 천천히 갈 테니 겁내지 말라고 격려를 해주었지만, 나는 단호히 거절했다.

절대 안 될 일이다.

아이의 친구들은 자전거 못 타는 어른을 본 적이 없을 것이다.

친구 엄마가 저희들 타는 것 만한 자전거를 타고 나타나서 거북이보다 늦게 페달을 돌리고, 그것도 모자라 내려서 자전거를 끌고 오는 상황을 목격한다면 충격을 받을 것이고, 나의 사회적 이미지 보다 딸아이의 사회적 이미지가 먼저 무너지는 사태가 벌어질 것이다.

덴마크 친구들은 몇 번의 회유 끝에 절박한 나의 의중을 이해했고, 언젠가 내 마음이 편해졌을 때 같이 자전거를 타기로 약속을 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자전거를 포기하지는 않겠지만 차도를 건너 바람을 가르려고 너무 애쓰지는 않으려고 한다.

두려움을 이기려고 노오력을 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걸어서 걸어서 여기까지 왔다. 직립 보행 기술 하나로 지금까지 살아온 내가 바퀴 두 개 달린 수단 앞에 무너져 주저앉을 수는 없다. 지금까지 온 것처럼, 뒤쳐지더라도 걸으면 되는 것이다. 바퀴의 속도감 대신 느리게 지나는 풍경을 담을 것이다. 더 많이 보지는 못해도 더 가만히 볼 것이다.

자전거 도로가 아무리 잘 되어 있다고 해도 인도 만은 못하다. 제 아무리 덴마크라고 해도 자전거로 못 가는 길은 있지만 걸어서 못 가는 길은 없다.


나는 자전거 잘 못 타는 어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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