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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yaMya Aug 12. 2020

갈 데도 없는데 별장이나 다녀오자

올여름에는 반드시 한국에 다녀오고 싶었지만, 한국엘 못 가게 된다면 당연히 이탈리아에 다녀왔어야 했지만, COVID 19는 우리의 발목을 꼭 붙들고 놔주질 않는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우리의 어떤 사정도 아닌, 어떻게 해도 부술 수 없는 장벽이다.

다 포기해도 딱 하나, 여름휴가만은 꼭 붙들고 살아온 나는 슬펐다.

세계가 아프고 병든 팬데믹의 시대에 놀러 가지 못해 슬픈, 나이만 먹고 철은 없는 스스로가 한심했지만, 자꾸만 슬펐다.

작년 여름 살갗을 까맣게 태우며 질주했던 아드리아해가 꿈에도 나오고 생시에도 눈 앞에 아른거렸다.


덴마크 사람들은 별장을 하나씩 가지고 있다. 신기하고 놀라운 일이다. 세금이 이렇게 많은 나라에서 별장이라니. 우리 빼고 덴마크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억만장자인 것이 분명하다. 별장을 가지고 있는 덴마크 사람들은 따듯한 남쪽 나라로의 여행을 포기했지만 '그럼 별장에나 가지'와 같은 격이 다른 선택들을 했다.

그래서 우리도 '그럼 별장이나' 가보자고 마음을 먹었다. 가진 별장은 없지만, 가지지 않아도 누리는 방법이 있다. 빌리면 된다.


하지만 처음 만나는 팬데믹의 시대에 여행지의 기준은 무엇인지 감이 오지 않았고, 평소 나에게 무심했던 덴마크에 나도 무심했던 터라 이 북쪽 섬나라 어디로 가야 설레는 여름을 보낼 수 있을지 도통 알 수 없었다.


너무 멀지 않고 사람이 많지 않고 한적한 그런 어딘가를 찾느라 나는 막 눈이 아프게 검색하는데 황가수는 느긋하게 콧노래나 부르더니

"우리 집 구했어. 여기로 가자."

하는 것이다. 동료가 한주 정도 별장을 빌려줄 수 있다고 했단다. 더구나 지인 찬스를 활용하여 시세보다 저렴하게 빌리기로 했다는 것이다.

원래 여름 여행의 목적지는 내가 정하고, 내가 계획하고 황가수에게 갖은 생색을 내고, 간간히 짜증도 내야 제맛인데, 올여름은 아무래도 십수 년간 보냈던 여름과는 아주 다르게 흐른다.


우리는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Tuse Næs라는 반도 귀퉁이에 황가수 동료가 아버지에게 물려받았다는 오래된 별장에서 휴가를 보내기로 했다. 비록 지중해도 아니고 아드리아해도 아니고, 부산도 아니고, 서울도 아니지만, 모르는 어딘가로 떠난다고 생각하니 슬픔이 조금 가셨다.


차를 빌려 아침 일찍 나섰다.

덴마크의 길은 넓고 평평하고 심심하다. 오르락내리락하고, 파란 바다가 쫙 펼쳐지고, 해를 가득 품은 푸른 호수를 지나는 서유럽을 떠올리지 않으려고 심심한 창밖 풍경에 집중했다.

여기도 내 마음을 사로잡을 그런 게 분명히 있을 거야. 그런 게 없으면.... 뭐 하나 정해서 억지로라도 사로 잡히자.

깔끔한 농가, 깔끔한 소, 깔끔한 말.

깔끔한 농가, 깔끔한 소, 깔끔한 말.

깔끔한 농가, 깔끔한 소, 깔끔한 말.


Tuse Næs는 정말 작은 동네였다. 실제 거주하는 사람들은 2000명 남짓이고, 농가가 아닌 나머지 집은 모두 타지 사람들의 별장이라고 한다.

황가수 동료의 별장 역시 딱 봐도 별장처럼 생긴 집들이 늘어선 이른바 별장 촌 한가운데 있었다.

별장들 사이에 있었지만, 우리 숙소는 사과나무와 노랗게 호박이 달린 덩굴과 작은 유리 하우스 안에 허브와 토마토를 키우는 전형적인 농가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동네 다른 집들은 모두 기와지붕인데, 우리가 빌린 집만 오래된 모습 그대로 덴마크 옛날 집들처럼 지붕 위에 짚이 얹어 있었다.

합격.

10살 딸의 로망이었던 트램펄린도 있고, 황가수의 로망 바비큐 그릴도 있다.

아주 합격.


다락방으로 통하는 삐걱거리는 나무 계단이 있고 동그란 거실에 오래된 그랜드 피아노가 있는 짚 지붕의 빨간 벽 시골집이라면 엄청난 크기의 날 개미와 길고 가는 다리로 성큼성큼 천장을 오가는 거미 따위는 개의치 않기로 했다.


별장들 사이 오솔길을 거닐어 보니

담도 없는 별장들은 밖에서도 안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데, 문을 다 열어 놓고 비운 집도 있고, 열쇠를 문 앞에 걸어두고 나간 집도 있었다. 집 앞에 쓰던 물건을 내어 진열해 두고 파는 집도 많았는데, 막상 주인은 없었다. 물건에 가격과 결제 가능한 핸드폰 번호가 적혀 있을 뿐이다.

이태리에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다.

집은 금세 다 털렸을 것이고 내어 둔 물건들은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을 것이다.


도둑도 없고 욕심쟁이도 없는 것 같은 별장 마을에서 덴마크 사람들은 종일 놀고먹고, 동네 산책을 다니고, 정원을 가꾸고, 앞바다에서 수영을 하면서 별장 생활을 즐기고 있었다.


우리도 덴마크 사람들 흉내를 내며 지척의 바닷가에서 수영을 하고, 집주인의 텃밭에 물을 주고, 숲 산책을 했다. 볕이 좋은 날에는 북유럽 사람들처럼 마당에 돗자리를 깔고 누워 일광욕을 하고, 저녁에는 그릴에 불을 피워 고기와 소시지를 구워 먹고 꼬치에 마시멜로를 꽂아 하나씩 들고 나란히 서서 달콤한 디저트가 녹아내리길 기다렸다.

바닷가에서 게와 홍합도 발견했다.

커다란 통을 들고나가 홍합을 따다가 해캄을 시켜 삶아 먹고, 그물을 사다가 게를 잡아서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구워 먹고, 라면에도 넣어 먹었다.

동네 어귀에 집주인이 심어둔 체리 나무를 찾아 빨갛게 익은 통통한 체리를 따 먹고, 체리 나무 옆에 심어둔 레드 커런트를 입에서 톡 터뜨리며 신맛에 눈을 찡그리기도 했다.

저녁에는 와인잔을 들고 바다 아래로 넘어가는 해를 구경하러 산책을 다녔다.

3일 정도를 그렇게 살고 나니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매년 여름 떠나서 만났던 편안한, 다음 순간이 기대되어 매 순간 설렘으로 상기된 그런 나를 다시 만났다.

어딜 가도 조용하고 어딜 가도 인적이 드물었는데, 그건 외롭고 적막했지만 눈 앞의 풍경을 오로지 내 감성으로 느끼고 누리게 해주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사람들이 즐기는 곳을 찾아다니며 다른 사람들의 감탄을 학습하고, 다른 사람들의 감정을 자연스럽게 재생하는 안전하고 보장된 즐거움과는 다른 적적하게 터져 나오는 나만의 감탄, 비밀스러운 감사 같은 것이었다.

아무도 없는 숲, 아무도 없는 해변, 아무도 없는 들판을 셋이 나란히 걸으며 싱거운 농담을 하고, 처음 보는 꽃 앞에 한참을 멈추어 서고, 바닷가에 무리 지어 있는 새들을 오래 구경하고, 햇빛을 밭아 반짝이는 노란 밀밭 곁에 앉아 바람 소리를 들었다.

아무도 없는 찬 바다에서 괴성을 지르며 셋이 수영을 했다.

게를 무서워하는 10살을 번쩍 들고 피오르드를 큰 걸음으로 걸었다.


10살은 조용히 하지 않아도 되고, 차를 조심하지 않아도 되고, 엄마도 아빠도 바쁜 일이 하나도 없는 곳에서 연신 즐거웠다.


저녁도 먹고 과일도 먹었는데 긴 해가 아직 떨어지지 않아 옆 동네 해변 구경에 나섰다.

해변마다 있는 나무다리 위에 앉아서 바다를 가만히 보고 있는데 커다란 물고기가 물 위로 뛰어올랐다.

지느러미를 펄럭거렸는데 잠시였지만 그 동작이 새의 날갯짓처럼 보였고 우리는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물고기 공연을 감상하다 보니 10시가 다 되었다. 그런데 그 시간에 저녁 수영을 하러 나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중 50대 정도 돼 보이시는 아저씨 한분이 여자 수영복을 입고 계셨다.

취향 혹은 정체성일 수 도 있다는 생각에 혹시라도 10살이 웃을까 봐 손을 잡고 눈을 찡긋해 눈치를 주었다.

그런데 아저씨가 먼저 설명을 하셨다.

"이건 우리 엄마 수영복이야. 글쎄 수영복을 안 가지고 왔지 뭐야. 오늘 저녁 꼭 수영을 하고 싶어서, 엄마 수영복을 빌려 입은 거야. 이 시간에 해변에 누가 있을 줄 몰랐어. 여기는 내 동생과 부인. 우리 같이 고향으로 휴가 왔어. 그런데 너희들 나 보고 자꾸 키득거리지 마. 나 이제 수영할 거야."

아저씨의 설명이 끝나고, 우리는 터진 웃음을 주체할 수가 없어서 한참을 웃었다.

그런데 아저씨가 한술 더뜨 셔서 분홍색 플라밍고 모양의 튜브를 불어 위에 올라앉으시려고 하는 것이다.

올라앉으려다 미끄러지고, 올라앉았다 뒤집히고를 몇 번 반복하는 동안 우리는 너무 웃어서 기운이 다 빠질 정도였고, 아저씨는 물에서 올라오실 때마다 젖은 앞머리를 재끼시며 우리더러 '너희들 웃지 마'라고 엄포를 놓으셨다.

살면서 이렇게 많이 웃은 날이 언제였더라 할 만큼 웃었다.

10살은 얼굴이 빨개지도록 웃었고, 코펜하겐으로 돌아온 다음에도 그날 얘기를 자주 한다.

"무슨 쇼를 본 것 같아. 진짜 재밌는 쇼. 개그 콘서트 같은 그런 쇼를 극장에서 보는 것 같았어. 너무너무 재밌었어."


우리가 사는 반도 건너편에 Orø 작고 예쁜 섬이 있다고 해서 찾아 나섰다.

배를 타고 들어가니 자전거 대여소가 있어서 자전거를 하나씩 빌려 타고 섬 구경을 나섰다.

노란 밀밭이랑, 해안 풍경이 그림 같은 조용한 섬을 자전거로 가로질렀다.

한가한 풍경의 오래된 농가, 목장에서 풀을 뜯는 말들을 구경하며 달리다 보니 밥때를 놓쳤다.

가다 보면 식당이나 카페 같은 게 나오겠지 하고 한참을 더 갔는데, 아무것도 없다.

구글 지도를 펼치고 찾아보니 섬안에  몇 안 되는 식당은 대 부분은 항구 쪽에 있고, 섬 중앙에 있는 두 개 정도의 식당들은 주말 저녁에만 문을 연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지나오며 사람들이 여기저기 들판에 아무렇게나 앉아 도시락을 먹고 있었던 것이 떠올랐다.

다들 계획이 있었구나.

우리는 어쩌다 들고 온 바나나를 꼭꼭 씹어 허기를 달래고, 조금 더 가보기로 했다.

밀밭 곁 비포장 도로 입구에 케이크집이라는 안내판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우리는 의논도 않고 비포장 도로로 진입했다.

덜컹거리며 비포장 도로를 지나오니, 시골집처럼 생긴 마당이 넓은 카페가 나왔다.

사람이 제법 많다.

다들 마당에 아무렇게나 앉아서 케이크를 먹고 있었다.

알고 보니 유명한 맛집이라고 한다.

덴마크 국민이 사랑해 마지않는 여왕님도 다녀가신 아주 유명한 유기농 케이크집이었다.

유기농 농법으로 Orø  섬에서 재배된 재료만 사용해 케이크를 만든다고 한다.

서너 사람이 주문대 앞에 줄을 서 있다. 우리도 줄을 섰다.

메뉴는 케이크와 커피, 음료수뿐인데 줄이 줄어들 생각을 안 한다.

이유인즉슨. 오직 케이크를 만드시는 주인 할머니만이 주문도 받고 계산도 하시고, 손수 케잌도 자르셔야 한다는 것이다. 같이 일하시는 다른 두 분은 주인 할머니께서 주방에 들어가셨다 카운터에 나오셨다 분주하게 준비한 쟁반이 준비되면 주문 번호를 불러가며 서빙을 해주시거나 손님들이 두고 간 식기를 수거하시는 일만 하셨다.

바쁜 일이라고는 없는 우리는 줄이 긴 건 괜찮았으나, 케이크가 줄어드는 것이 점점 불안했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진열장에 들어있는 케이크가 오늘 판매하는 케이크의 전부 인 것 같은데, 그 케이크들이 점점 줄어드는 것이다.

우리 앞에서 케이크가 다 없어질까 봐 조마조마했지만 그날 마지막 남은 케이크를 주문할 수 있는 영광을 얻었고, 우리 뒤에 줄 선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는 영애를 얻었다. 케이크를 먹으러 배를 타고 들어오기도 한다는 맛집의 케이크는 하나도 달지 않았다. 담백한 맛에 조금 거친 식감의 처음 먹어보는 케이크의 맛이었다.

"이건 몸에 좋은 맛이다. 그렇지?"

솜사탕, 사탕, 초콜릿을 좋아하는 10살은 말은 그렇게 했지만 케이크도 먹고 커다란 와플도 싹 먹어치웠다.

주문하려고 줄 서고, 우리 케이크와 와플이 준비되기를 기다린 시간을 다 합하면 한 시간을 될 것 같다.

사실 배도 고프고 좀 지겨운 시간이었지만 불평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어서 우리도 태연하게 카페 마당을 오가며 시간을 보냈다.

계산은 케이크를 다 먹고 나서 카운터에 가서 하는데, 넓은 마당 귀퉁이에서 케이크를 홀랑 먹고 계산을 안 하고 살짝 나가도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알아차리시기 어려우실 것 같았다. 알아차리신다고 해도, 따라오시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닐 것 같았다. 별장문을 열어 두고 다니는 사람들은 서로 이렇게 믿을만한 것일까?

그렇게 뜻하지 않게 여왕님이 드셨다는 케이크를 먹고 힘을 내어 섬을 마저 돌아보고 자전거를 반납하러 대여점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아무도 없다. 모두 퇴근을 했으니 자전거를 세워 두고, 자전거 열쇠를 우체통에 넣어 달라고 적혀있다.

이러면 자전거 다 가져갈 텐데..

느리고 정직하고 무심한 섬을 떠나는 배 위에서 덴마크 사람들의 마음이 궁금했다.

서로에 대한 신뢰일까? 어느 정도의 손해는 괜찮을 정도의 여유일까? 어떤 마음일까?

내가 본 적 없는 풍경이고, 살아보지 못한 사회였던 덴마크가 조금 알고 싶고 닮고 싶은 세상이 되었다.



덴마크에서 여름을 보내게 될 줄은 몰랐다.

이름도 들어 보지 못한 덴마크의 시골에서 내가 행복할 줄은 몰랐다.

맛있는 음식을 파는 식당도 없고 길게 늘어선 썬베드와 파라솔이 없는 곳에서도 여름을 즐길 수 있는지 몰랐다.

아주 조금, 손톱만큼이라도 내가 덴마크를 이해하는 날이 올 줄은 몰랐다.


나의 여름은 언제나처럼 짧고 뜨거웠고,

다시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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