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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yaMya Dec 04. 2020

사람 대신 얘기하는 덴마크의 신발장

덴마크 온 지 2년이다. 계속 같은 아파트에서 살았으니 이 아파트 생활도 2년이다. 우리보다 먼저 살고 있던 옆집 사람들과도 벌써 2년째 이웃이다. 옆집 사람들과는 인사하는데 3개월, 인사에 미소를 더하는데 8개월 걸렸다. 옆에 살 뿐 아는 사이는 아닌 전형적인 사전적 의미의 이웃이다. 서원하고 서먹한 관계에 최근 몇 달 새 약간의 변화가 있었다. 신혼부부인 듯 한 옆집에 아이가 태어난 것이다. 볼이 통통한 사내 아니가 누워 있는 유모차를 밀고 있는 옆집 부부의 미소는 이전보다 조금 더 커졌고, 발걸음은 느려져서 복도에서 마주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인사도 아주 조금 깊어졌다. 그래도 여전히 통성명 같은 건 하지도 않은, 내일 갑자기 이사를 가버려도 아무렇지도 않을 완전한 타인일 뿐이다.


조금 큰 미소를 주고 받는 타인들 사이에 신발장이 들어섰다.

 

이태리 사람들은 밖에서 신 던 신발을 그대로 집안에서 신고 다니기도 한다. 방에 들어와 침대에 오를 때가 돼서야 신발을 벗는 사람들은 아무리 오래 보아도 적응이 안된다. 그런 사람들 마주칠 때마다 남의 집 방바닥 흙먼지에 공연히 신경이 집중된다. 바깥 신발을 그대로 신는 집에 초대되면 내 신발을 따라온 먼지가 집을 더럽히지 않을지 걱정이 돼서 걸음도 불편하다. 물론 이태리 사람들 중에도 집에 들어서면 바로 신발을 벗는 사람들도 있다. 이태리 사람들에게 확인해보지는 않았지만 바닥의 소재로 인해 만들어진 차이가 아닐까 짐작한다. 대리석의 나라인 이태리에는 여전히 대리석 바닥 집이 많지만, 요즘 새로 짓는 아파트는 원목을 주로 사용하는 듯 하다. 대리석 바닥에서는 양말 신어도 발이 시리니, 신발을 신을 것이고, 나무 바닥에서는 양말 혹은 맨발이라도 춥지 으니 신발을 벗는게 아닐까 싶다.

반면에 궂은 날이 많은 러시아, 덴마크 사람들은 밖에서 신는 신발은 집안에 들어서면 바로 벗는다. 러시아 사람들은 실내에서 따뜻한 슬리퍼를 신고 생활한다. 추운 나라의 실내 생활에서 슬리퍼는 꼭 필요한 물품으로 다른 집에 초대받아 갈 때 슬리퍼를 챙겨 다니는 사람들을 직접 목격하기도 했다. 

내가 아는 덴마크 사람들은 주로 새로 지은 아파트에 살아 그런지 매끈한 원목 마루를 양말 차림으로 생활한다. 덴마크 가정집의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면 신발을 올려두는 신발장이 있는 집도 있고, 현관 한쪽에 카펫을 깔아 신발을 벗어두는 장소를 만들어 둔 집도 있다. 옷도 신발도 많지 않은 우리는 붙밖이 장에 적당한 공간을 마련해 신발장으로 사용한다. 그런데 매번 신발을 넣었다 뺏다 하는 게 조금 귀찮다. 비 맞은 신발을 집안으로 들고 들어오는 날은 특별히 성가시고, 신발이 마를 때까지 따로 두는 것도 일이다. 그러다 차차 다른 집 복도를 엿보게 되었는데, 집 앞에 신발을 벗어 그대로 두는 집이 꽤 많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우리도 저렇게 하면 되겠다!

우리집 앞 복도는 3 가구가 나누어 쓴다. 아기가 있는 옆집과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는 또 다른 이웃과 우리 가족이다. 이웃 두 집은 신발을 복도에 벗어 두지 않지만 2년간 여러 복도를 기웃거린 소견에 의하면 우리가 우리 집 문 앞에 신발 벗어두는 건 문제가 될 이유가 없을 것 같았다.


학교 다녀와서 체조하러 가거나, 스케이트 타러 가거나, 친구랑 놀러 나가는 일이 많은 딸은 신발을 현관 밖에 두기로 한 결정을 특별히 환영했다. 우리 부부도 실행에 옮기니 세상 편했다.

말끔한 복도에 신발 3켤레가 자리를 굳힌 지 2달 정도가 되었다. 

두 달 사이 옆집 세 식구와 간간히 얼굴을 마주쳤지만, 우리 신발에 대해 어떠한 부정적인 반응 같은 건 읽을 수 없었다.


사람 많은 시간을 피해 주말 아침 일찍 슈퍼에 다녀왔다. 복도에 출처를 알 수 없는 철제 신발장이 서 있었다. 신발장 위에는 크리스마스 요정 인형이 두 개 얹혀 있었고, 신발장 아래 우리 아이의 신발이 놓여있다.

"뭐지?"

"Nisse (크리스마스 요정)다! 우리 집에 요정이 선물을 준 건가?"

"이게 뭐지? 누가 모르고 우리 신발을 저기다 올려놓았나 보다."

아이 신발을 다시 우리 집 문 앞에 내려 두고 들어왔다.

뭐지... 옆집에서 어디로 가져가려고 꺼내 둔 건가?


우리가 집에 들어오기 무섭게 벨이 울렸다.

문을 열고 보니 옆집 여자다.

"우리가 신발장을 하나 샀어요. 다 같이 쓰면 좋을 것 같아서요. 제일 아래칸은 그쪽에서 쓰시고, 중간은 저 쪽 집. 제일 위는 우리가 사용할게요. 괜찮으세요?"

"아.... 고마워요."

웃으면서 감사 인사를 하고 문을 닫고 들어왔는데 기분이 어딘가 묘하다.

튼튼하게 잘 생긴 신발장이 생긴 건 좋은 일이고, 크리스마스 요정 두 개가 복도에 들어앉은 것도 즐거운 일인데, 그래도 뭔가 기분이 묘했다.

뭔가 웃으면서 강요당한, 핀잔 들은 그런 묘한 기분이다.

그리고 하루가 지났는데, 신발장에는 우리 운동화 세 켤레 말고 다른 신발은 없다.

남편이랑 같이 집을 나서는 길에 신발을 신으며 내가 먼저 얘기했다.

"이게 고맙긴 한데 뭔가 기분이 좀 그렇지?"

"응? 뭐가?"

"이 신발장 말이야. 우리가 신발 복도에 벗어 놓는 게 싫어서 산 것 같은 기분인데, 나만 그런가?"

"에이, 그렇기야 하겠어. 그럼 뭐 그냥 신발 밖에 두지 말라고 했겠지."

"아니야. 덴마크 사람들 그렇게 얘기는 또 잘 안하잖아. 그리고 그랬다면 왜 우리 신발만 있고, 본인들 신발은 여기 안 올려둬?"

"그러고 보니 그렇네..."

그렇게 복도에서 대화를 나누고 나갔다 들어왔는데, 신발장에 옆집 신발이 놓여있다.

"뭐야? 한국말 알아듣는 거 아냐?"

"하하하 그럴 리가 있어? 네가 예민해. 그냥 진짜 좋은 마음으로 했을 거야. 복도도 깔끔하게 하고, 자기들도 신발 밖에 두면 편하고."

"거봐. 복도가 이렇게 하니까 깔끔하잖아. 우리 신발만 나와 있을 때보다 지금이 더 깔끔해. 그러니까 옆집 사람들은 우리 신발이 나와 있는 게 싫었는데 말은 못 하고, 신발장을 둔 게 아니냐고. 뭐. 싫으면 싫다고 얘기를 하지. 이렇게 신발장을 턱. 좀 웃겨."

"옆집 사람들은 그냥 신발장을 사면 당연히 우리도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을 거야."

"몰라. 기분이 그냥."

"크리스마스 때 옆집 아기 선물이라도 하나 준비하자. 그러고 나면 네 기분도 풀릴 거야."


좋은 게 좋기만 한 황가수는 허허 웃으면서 내 입을 콱 틀어막아 버렸지만, 나는 신발장을 볼 때마다 '흥' 콧바람이 나오는 것이다. 

뭔가 강요당한 기분인데, 그런 기분이 드는 것은 내가 생각해도 좀 예민한 것 같아, 내 기분을 들여다보기가 무색한것도 사실이다.

"신발 밖에다 두면 복도가 좀 정신이 없어 보이니까 신발 안에 두면 어때?"

"복도 정리하려고 우리가 신발장을 사려고 하는데 같이 살래?"

뭐 이렇게 물었다면 나는 이런 묘한 기분을 느끼지 않았을까? 

아마, 그랬다면. 나는 

"다른 층에도 다들 자기 집 앞에 신발 벗어 두던데. 여기는 우리 집 앞이니까 우리가 신발 벗어둬도 문제 될 건 없을 것 같아." 

라고 대답을 했을 것이고, 그랬다면 관계는 좀 불편해졌을까?...

황가수의 말처럼 옆집 부부는 우리가 신발장이 생겨서 기뻐할 거라고 확신했을까?

내 생각처럼 우리 신발 나와 있는 게 싫어서 신발장을 사서 정리 '교육'을 하는 것일까?

말을 하지. 왜 신발장을 사다 두고 신발장에게 말을 시키는 걸까?


이태리였다면

"안녕! 잘 지냈어? 스타일이 좀 바뀐 것 같네. 예쁘다. 애가 몇 학년이지? 학교는 어떻대? 우리 애는 학교 재미 없다고 해서 큰일이야. 휴가 계획은 있어? 아무데도 못 가겠지만, 나는 자꾸 계획을 세우게된다. 재밌지? 아, 그런데 말이야 신발...... 저렇게 밖에 면 좀 보기가 안 좋은 것 같아." 

라고 사설을 길게. 하지만 결국은 하고 싶은 얘기를 했을 것이다.


러시아였다면

신발을 우리집 현관쪽으로 아주 바짝 밀어 두거나 복도 끝으로 밀어 버렸을지도 모른다. 


한국이었다면

내용 증명을 보냈을지도 모른다.


덴마크. 매사에 웃는 얼굴로 훈수를 두는 것 같은. 같이 웃었어도 뒤끝을 남기는. 

내가 좋으면 너도 좋을거라고 생각하는 순수함 비슷한 강제성을 가진.

덴마크가 그런 건지? 옆집이 그런 건지?

내가 그런 건지?


덴마크의 스산한 겨울은 깊어가고, 팬대믹도 깊어만 가는 겨울이다.

쪼잔하고 집요하게 뒤 끝을 물고 묘해지는 것 밖에 도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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