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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yaMya Mar 29. 2021

여섯째 주에는 섹스를 배운다

(작은책 4월호 원문)


덴마크는 주차달력을 쓴다. 덴마크 사람들의 시간은 주를 기준으로 순환한다. 이를테면’3월말 부활절’이 아니라’13번째 주 부활절’, ’7월 둘째 주 여름휴가’가 아니라 ’23째 주 여름휴가’ 같은 식이다. 학교 수업 계획이나 행사도 날짜 대신 주 단위로 공지된다. 몇 월 몇 일 하면 될 것을 굳이 자기들만 아는 비밀처럼 25째 주, 36째 주 할 때 마다, 언제인지 계산이 바로 안되어 소외된다. 주차달력이라니, 사람들이 영 배려라는 게 없다. 

여섯 번째 주부터 작년 12월부터 시행된 락다운이 부분적으로 풀리면서 초등학교 4학년까지 등교가 가능해졌다. 

”내일 학교에 가면 SEX에 대해서 배우겠네. 내일부터 여섯 번째 주 맞지?” 

다시 학교로 돌아갈 생각에 들뜬 딸이 가방을 챙기면서 물었다. 나도 예사롭게 대답했다.

”그러네, 학교가면 SEX 배우겠네.”

작년 이맘때쯤 학교에 다녀온 딸이 큰 소리로 “UGE SEKS에는 SEX를 배워” 라고 하는 것이다. 

딸을 통해 들은 SEX에 놀라 되물었다. “학교에서 뭘 배웠다고?”

“SEX 있잖아. 남자, 여자가 왜 다른지, 몸이 어떻게 생겼는지, 애기는 어떻게 태어나는지, 그런 것들. 이번 주가 여섯 번째 주잖아. 그러니까 UGE SEKS (우 섹스) 인데, SEKS(섹스)랑 SEX랑 소리가 똑같으니까, 여섯 번째 주에는 학교에서 다 같이 SEX를 배운데.”

덴마크어로 숫자 6은 SEKS (섹스)이다. 발음이 SEX와 같아서 안 그래도 말할 때마다 불편했고, 그런 기분이 들 때마다, SEKS (섹스)와 SEX를 연결하는 내가 유치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온 덴마크가 의도적으로 그 유치한 조합을 즐기고 있다는 것이다. 

2008년부터 시작되었다는 ‘여섯째 주, 성의 주’ 운동은 이제 덴마크 대다수의 초중등학교가 참여하는 교육 과정으로 자리 잡았다. 캠페인을 주도하는 ‘성과 공동체(SEX & SAMFUND)’라는 단체는 매년 학년별 성교육 프로그램을 학교에 배포하고, 각 학교의 선생님들이 적절한 교육을 하도록 강연 등을 기획한다. ‘성의 주’ 교육 프로그램은 해마다 변경되는 대표 주제에 맞추어 연령에 따라 성별, 건강, 몸, 관계, 권리, 행복, 사춘기, 성병, 피임, 성관계 등의 문제를 체계적으로 교육한다. 매년 사회 변화와 시대에 맞는 새로운 교육 자료들을 선보이기 위해 다수의 전문가와 교육자가 참여하여 공동 작업을 한다고 한다. 전국의 지자체에서도 관할 학교가 프로그램에 참여하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권장하고 있어, 머지않아 전국의 모든 학교에서 해당 프로그램에 참여할 것을 기대하고 있다고 한다.

‘성의 주’에 실행되는 교육 내용은 상당히 사실적이고 세심하다. 자신의 몸에 대한 이해, 서로의 신체의 차이에 대한 존중은 물론, 성관계와 임신에 대해서도 은유와 비유 없이 명쾌하게 설명하는 듯했다. 예를 들자면, 음경과 음순이 자세히 드러나는 시각 자료를 활용하기도 하고, 나체의 남녀가 등장하는 영상을 통해 신체 각 부분의 차이를 설명하고, 생식을 설명할 때는 ‘성기 삽입’을 구체화 하고, 다양한 성적 지향과 가족의 형태를 다루는 책과 영상을 접한다. 또한 여섯째 주에는 다른 교과 과목마저 성과 연관 지어 수업을 진행한다고 한다. 

학교에서 배운 신기한 성에 대한 인문을 넓히기 위해 딸은 매년 여섯째 주에 질문을 쏟아내고, 우리 부부는 경험해 보지 못한 당혹감을 감내하고 있다. 

“엄마랑 아빠도 SEX 해봤어?, 지금도 하는 거야? 그런데 왜 나는 동생이 없어?”

덴마크가 성을 대하는 태도가 진취적이라는 것은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매년 2월 초등학교 아이들이 입에 SEX를 달고 사는 정도 일 줄은 몰랐다.


얼마 전 한국 국회를 달구었던 '아기는 어떻게 태어날까'라는 책도 덴마크 작가의 책이다. '아기는 어떻게 태어날까'는 덴마크 역사를 대표하는 100개의 물건 중 하나로 선정될 만큼 국민적 호응을 얻었지만, 한국에서는 김병욱 미래 통합당 의원에 의해 조기 성애화, 동성애, 동성혼을 조장하는 책으로 규정되었고 급기야 책을 회수해야 한다는 국민 청원이 등장해, 여가부가 초등학교에서 회수해야만 했던 바로 그 책이다. 

하지만 성은 이토록 진취적인 덴마크에서도 여전히 뜨겁고 어려운 문제이다. 

덴마크 국영 방송인 DR의 RAMASJANG (라마샹)이라는 어린이 채널은 2021년 새해를 맞아 4-8세 아동을 대상으로 John Dillermand (존 딜러맨) 이라는 새로운 애니메이션을 방영하고 있다. John Dillermand는 우리말로 '존 고추씨'로 번역될 수 있겠다. 존 고추씨는 놀랄 만큼 긴 고추를 가진 성인 남성이다. 성인이지만, 어린이와 같이 천진하고 어린이들도 하지 않을 듯한 실수를 하는 사고뭉치이다. 그가 사고를 치는 데는 그의 긴 고추가 한몫을 하는데, 그의 고추는 마치 독립적인 등장인물인 듯 존 고추씨의 의지와 상관없이 마구 길어져 옆집 아저씨 머리 위로 사과를 떨어뜨리거나, 신호등 위로 아이스크림을 던져 신호등을 멈추어버리기도 하지만, 고장 난 신호등 때문에 위험에 처한 시민을 돕고, 아이들이 놓친 풍선을 잡아주기도 하며 실수를 바로잡기 위해 앞장서기도 한다. 어른의 언어로 표현하니 어딘지 더 음란한 느낌이지만, 실제 애니메이션은 귀엽고 천진하다.

‘존 고추씨’는 방송 전부터 언론과 SNS등을 통해 크게 화제가 되었다. 

'이러려고 수신료를 내는 것이 아니다, '내 아이에게 이런 방송을 보게 할 생각은 없다. 국영방송 DR은 도대체 생각이 있느냐'와 같은 분노에 찬 반응과, 작년 하반기 덴마크를 달구었던 ME TOO 운동과 애니메이션을 연결 지으며 남성의 성기가 남성의 이성을 벗어나 자발적으로 행동한 다는 발상은 성 범죄자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발상이라는 의견, 남성의 긴 성기가 등장했다면 여성의 큰 성기도 함께 등장해서 균형을 맞추어야 한'다는 등의 입장들도 있었다. 반면, '고추라는 이름만으로도 즐거워하는 아이들에게 딱 맞는 만화이다, 자신의 신체를 궁금해하는 연령의 아이들에게 신체를 즐겁게 표현한 것은 신선한 시도이다, 아이들과 함께 시청할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와 같은 긍정적인 의견들도 있었다. 

실제 프로그램이 방영된 1월 2일 이후에는 외신을 비롯한 보다 많은 여론이 프로그램을 향한 다양한 평가를 내어 놓았다.

CNN, THE GUARDIAN, THE INDEPENDENT 등의 외신은 하나 같이 BIZAR (비자: 기이한)라는 표현을 쓰며 덴마크 국영 방송을 비난했고, 덴마크 국내 언론에서도 유아들의 성교육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는 부정적 평가와, 실제 만화를 시청하는 어린이들이 너무 즐거워한다거나 아이들이라면 모두 할 수 있는 실수를 보여주기 때문에 아이들이 공감할 수 있다'와 같이 긍정적인 의견들이 충돌했다.

애니메이션 제작 과정에 참여한 소아정신과 전문의 마그리트 브룬 핸슨은 프로그램을 둘러싼 뜨거운 논쟁을 향해 다음과 같이 프로그램의 취지를 설명한다.

"어른의 안경을 통해서가 아닌 어린이의 관점에서 존 고추씨를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 마법의 음경을 보고 눈살을 찌푸리는 것은 성인인 우리들의 삶과 경험 때문일 뿐 아이들은 전혀 그렇게 반응하지 않는다. 어린아이들은 발가벗고, 자신의 신체를 탐색하고 들여다보는 것을 즐긴다. 아이들은 의사 놀이를 하고, 서로의 몸을 들여다보며 못된 말들을 하는 것을 즐기고 방귀, 고추 같은 말을 하며 크게 웃는다. 존 고추씨는 바로 이러한 세상의 화자이다. 개인적인 경험에 비추어 아이들은 존 고추씨를 통해 배우기도 하고 웃기도 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영향을 줄 부모들의 반응에 대해서는 확신이 어렵다. 얼마나 많은 부모들이 존 고추씨를 재미있다고 생각할지 의문이다." 

'고추씨’가 유아기 어린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이라면 '고추씨’ 못지않게 뜨거운 관심을 받은 'Ultra smider tøjet (울트라 스밀러 토이: 옷을 벗어던진 울트라; 울트라는 취학기 아동을 위한 국영 방송국의 채널이다)'는 7세 이상의 아동을 위한 프로그램이다. '고추씨'는 다소 은유적으로 신체를 다루었다면’옷을 벗어던진 울트라’는 직설적으로 신체를 다룬다. 4-5명의 성인들이 나체로 등장해 청중석에 앉은 아이들의 질문에 답을 하는 형식의 프로그램이다. 매 회 각기 다른 신체의 특성을 다루는데 이를 테면, 모발, 피부색, 문신, 피어싱, 성기, 가슴, 엉덩이 등이다. '어떤 음경이 보통 음경인가?', '여기 다섯 개의 벗은 엉덩이가 있다', '다섯 개의 음소를 스튜디오에 초대합니다', '모발과 피부', '(신체의) 크기'와 같은 소제목을 가지는 각각의 에피소드는 15분 내외로 방영되고, 처음부터 나체로 등장한 어른들은 방송이 끝날 때까지 나체인 체로 어린이 방청객들과 소통한다. 

예로, 시즌 2의 에피소드 '(신체의) 크기'편에는 키 큰 백인 남성, 키 작은 백인 남성, 과체중의 백인 여성, 마른 체형의 백인 여성, 키 큰 흑인 남성이 출연했다. 출연자들은 키가 크거나 작거나 마른 자신의 신체 조건에 대한 마음을 털어놓았다. 조금 키가 컸으면 좋겠다고 하는 출연자도 있고, 질병으로 인해 깡마른 자신의 몸이지만 아주 만족한다고 하는 출연자도 있다. 방청객으로 초대된 11살 어린이들은 출연자들을 향해 "선택할 수 있었다면 어떤 몸을 갖고 싶은가요?", "뒤로 돌아보세요" "자신의 몸에 대해 불만이 있었던 적이 있나요?"와 같은 질문을 한다. 출연자들을 향한 질문 순서가 끝난 후 '뚱뚱한 사람들은 게으르다, 많이 먹으면 반드시 뚱뚱해지고, 조금 먹으면 무조건 날씬하다.'와 같은 선입견에 대화 하고, 선입견 리스트를 쓰레기통에 버리는 퍼포먼스를 했다. 풍선을 터뜨리며 출연자 중 한 사람의 몸무게를 맞추는 게임으로 프로그램이 마무리되었다.

첫 시즌이 방영된 2020년 해외 언론은 덴마크 어른들의 무책임을 비난하고, 벌거벗은 어른들을 바라보는 아이들의 모습은 아동 성애자들을 자극할 뿐 프로그램의 어떤 장점도 찾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많은 비판과 논란에도 불구하고 ‘옷을 벗어던진 울트라’는 작년에 이어 ‘성의 주’에 많은 초등학교에서 시청하는 프로그램이다.

프로그램의 PD인 모텐 스코우 한슨이 설명한 방송의 취지는 다음과 같다.

"덴마크 어린이들에게 생활 속에서 거의 볼 수 없는 현실적이고 다양한 신체의 모습을 설명하고자 한다. 소셜 미디어에 등장하는 신체의 모습이 아닌 자연스럽고 다양한 신체의 모습을 접하면서 어린이들이 자신과 타인의 신체에 대해 보다 현명해지도록 도울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어른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어린이 시청자들은 프로그램에 대해 별 다른 저항이 없을 뿐 아니라 지대한 호기심과 흥미를 보인다. 제작진의 설명처럼 아이들은 프로그램을 통해 신체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고, 영화배우나 TV 스타의 몸이 아닌 우리 모두의 몸에 익숙해지는 특별하고 긍정적인 경험을 하는 듯하다. 올 해도 어김없이 찾아온 여섯째 주, 성의 주의 주제는 '평등한 성은 더 재미있게 놀 수 있다'이다. 딸이 다니는 학교에서도 주제에 맞추어 성 평등 포함한 넓은 의미의 평등에 대해 학습했고 함께 울트라를 시청하는 시간도 가졌다고 한다. 다양한 피부색과 모발, 문신과 피어싱으로 신체를 꾸미는 사람들, 사고와 수술등으로 몸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지닌 사람들에 대한 방송을 시청했다는 아이는 ‘다름’에 대해 이야기 했고, 취향에 대한 그간의 선입견을 돌아보았을 뿐 외설적이라거나 성관계와의 연관성에 대한 소감은 없었다. 다양한 피부색, 다양한 환경의 사람들의 다양한 신체를 숨지 않고 성인인 선생님의 지도 아래 친구들과 함께 시청했다는 경험은 분명 아이의 삶에 흔적을 남길 것이다. 그 흔적이 자유이고, 자신의 신체를 긍정하는 지혜이고, 타인의 몸을 존중하는 배려이길 바란다. 

2021년 덴마크에 살고 있지만 마음을 70-80 대한민국에 두고 있는 나는 '아기는 어떻게 태어날까'에는 환호하지만, 아직 '존 고추씨'를 완전히 받아들이지 못했고, 벌 거 벗은 어른들은 어색하기만 하다. 제 마음대로 늘어나 온 동네 사람들을 괴롭히기도 하고 돕기도 하는 음경은 나에게 경계 너머의 것이고, 내 몸을 닮은 정직한 몸을 직시하는 것은 난처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 고추씨를 통한 4살의 즐거움과, 벗은 어른들의 신체에 대한 10살의 호기심을 인정하는 교육이 정답이 아닐지라도, 이와 같은 시도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본다. 핸드폰, 테블릿, 컴퓨터를 끼고 사는 아이들은 어떤 형태로든 ‘라떼’ 보다는 훨씬 이른 시기에 성을 접할 것이다. 교육이 선제적으로 흥미롭고 솔직하게 성을 소개하지 않는다면, 아이들은 얼마든지 ‘독학’을 통해 성에 대한 그릇된 인식을 가질 수 있다. '아기는 어떻게 태어날까'를 회수하고 존 고추씨가 노출증 환자 또는 소아성애자를 그렸다거나, 옷을 벗어 던진 울트라의 어린이 방청객이 성적 학대를 받았을 것이라는 누명에 머물러 있는 사이에 ‘성을 유튜브로 배웠어요’ 하는 어린이들이 늘어갈지도 모르겠다. ‘성을 유튜브로 배웠어요’ 보다는 ‘다소 민망한 국영 방송을 통해 배웠어요’가 더 낫지 않은가? 성에 대한 공식적이고 발측한 시도가 더 많은 세상을 기대한다.  

마그리트 브룬 핸슨 인터뷰 내용 발췌

https://www.dr.dk/om-dr/nyheder/ny-animationsserie-til-ramasjang-udspringer-af-boerns-nysgerrighed

모텐 스코우 한슨 인터뷰 내용 발췌

https://www.dr.dk/nyheder/kultur/dansk-boerneprogram-om-noegne-kroppe-traekker-overskrifter-i-udlandet-det-er

https://sbook.tistory.com/283?fbclid=IwAR2ikaJ6sUHxfeqDOkuu1a4s2vlrzdCamtCORz1kHsvYAfC4X_Z0srAGSh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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