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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yaMya Mar 14. 2021

안녕, 나 별거하기로 했어.

아이 친구 엄마들 몇몇이 모여 있는 단체 대화방 참석자 중 가장 젊고 경쾌한 엄마가 인사를 했다.

"안녕!"

여느 때처럼 열심히 운동하는 사진, 달리기를 하다 찍은 멋진 하늘 사진 같은 것을 보내주리라 기대했지만, 인사 아래 달린 글은 다름 아닌 "나, 별거하기로 했어."였다.

"아이들에게도 오늘 저녁에 얘기할 생각이야. 당분간 남편과 일주일씩 돌아가면서 아이들과 지내기로 했어. 앞으로 우리 아이들 기분이 별로이거나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게 되면 모두 이해해 줬으면 해.  아이들에게도 별거 소식을 모두에게 얘기했다고 할 거야. 그러니 모르는 척하지 않아도 돼. 우리 아이들이 위로가 필요하다고 느끼면 마음 놓고 위로해도 괜찮아."

혹시 내가 덴마크어 이해를 잘 못한 걸까? 단어 하나하나 짚어가며 메시지를 다시 읽어보았지만 역시 그녀는 자신의 별거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엄마들은 하트, 허그와 같은 이모티콘을 보내며 그녀의 아픔에 공감을 표했다. 언제든지 무엇이든지 필요하면 돕겠다고 손을 내미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나도 큰 하트 하나를 띄우고, 그녀와 함께 하리라는 내 마음을 전했다.


아이들과 함께 모이는 자리에서 보았던 그들 부부는 늘 다정했고, SNS를 통해 부지런히 전하는 그들의 일상에도 그늘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던 터라 그녀가 전해준 소식이 무척이나 충격적이었다. 그리고 오래된 친구, 가족도 아닌 아이들 때문에 만나 알고 지낸 지 1-2년 정도 된 사람들에게 공개적으로 별거 소식을 알리는 그녀의 방식도 당혹스러웠다. 

왜 알리기로 마음먹었을까? 왜 우리에게 알려야겠다고 생각한 걸까?

소식을 들은 후 그녀의 아이들을 마주치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쓰였지만, 모르는 척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 어디까지의 관심이나 위로를 허용하는지 판단이 서질 않아서 선뜻 마음을 보이지 못했다. 하지만 다른 어른들은 그녀의 아이들에게 한 번은 더 웃어 보이고, 말장난을 걸기도 하며, '내가 다 알아, 언제든지 힘들면 얘기해.'라는 신호를 드러내 놓고 보내고 있었다. 그러니까 모른 척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은 문자 그대로 알아달라는 뜻이었다. 나도 덴마크 이웃들을 따라 그녀의 아이들에게 장난을 걸고, 엉터리 덴마크 말로 웃음을 선사하기도 했다. 아이들을 별 이유 없이 집으로 불러 같이 놀기도 하고, 산책길에 동행을 청하기도 했다. 우리, 그러니까 동네의 어른들은 한 번도 그녀의 별거에 대해 따로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마치 하나의 작전을 수행하는 사람들처럼 비장한 마음으로 아이들을 살폈고, 언제라도 벌어질 수 있는 아이들의 눈물, 짜증과 같은 상황을 대처하기 위해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다행히 아이들은 큰 상처 없이 엄마 아빠의 별거를 받아들였고, 엄마 아빠는 한 주씩 돌아가며 이전보다 더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해가며 안정을 되찾아가고 있는 듯하다. 


덴마크의 이혼율은 2014년 55%까지 치솟았었고, 이후 하락하였다고는 하지만 2019년에도 여전히 35%의 동거 커플 혹은 부부가 이혼을 했다고 한다. 이혼율이 높은 만큼 이혼은 일상에서 자주 접하는 사건이고, 늘 고려해야 하는 조건이다. 아이들 생일 파티를 하거나 모여 같이 놀 일이 있을 때 초대의 대상이 되는 아이가 엄마랑 지내는 시기인지, 아빠랑 지내는 시기인지 미리 물어 해당 부모와 약속을 해야 한다. 학부모 모임 때 엄마와 새 아빠, 아빠와 새엄마가 모두 참석하는 경우가 있으니 실수하지 않도록 눈치가 빨라야 한다. 전 남편과 전 부인, 지금의 부인이 모두 한 직장에 다니며 쉬는 시간에 복도에서 아이들 졸업식이나, 세례식 같은 행사를 다 같이 의논하는 것을 목격해도 'american style'  (영화 극한직업 중 대사) 뭐 이러면서 당황하는 내색을 하지 않도록 늘 스스로를 단속해야 한다.

2020년 행복 지수 랭킹에서도 단연 2등을 차지한 덴마크에서도 가정은 무너지고, 관계는 소멸한다. 사람 사는 데가 다 거기서 거기다. 덴마크 사람들도 상처 받고 마음 아프고, 싸우고, 울고, 미워한다. 하지만 별거를 극복하는 그녀와 이웃들의 방식은 내가 그녀 혹은 그들이었더라면 취했을 방식과는 달랐다. 


별거는 큰 일이지만, 반드시 한 개인을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비극일 필요는 없다. 

별거 중인 그녀는 전 보다 더 열심히 운동을 하고, 아이들을 돌보지 않는 주말에는 친구들과 클럽에도 다니고, 분위기 좋은 펍에서 맥주를 마시기도 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보라색 털실을 장만해 스웨터도 짜기 시작했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에는 장거리 운전을 해서 다른 도시 구경을 가기도 하고, 긴 자전거 투어를 마치고 특대형 아이스크림을 사먹기도 한다. 가끔 한숨을 쉬기도 하지만, 살아가기를 멈추기는커녕 분명 더 많이 살고 있다. 


별거는 상처이긴 하지만, 부끄러운 일은 아니다. 

그녀는 별거 소식을 전함으로 우리에게 위로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했고, 스스로와 아이들에게는 마음 놓고 아파할 환경을 만들었다. 아이들은 타인의 시선보다는 자신의 상처에 집중할 수 있었고, 당당하게 들어낸 슬픔에 대한 타인들의 따뜻한 시선에 위로를 받았을 것이다. 


별거는 개인의 일이기도 하지만, 공동체가 함께 풀어가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웃들은 그녀와 아이들 곁에 따뜻한 허들을 짜고 묵묵히 함께하며, 그들이 다시 건제하기를 마음을 다해 지지했다. 그녀는 우리와 눈을 마주치고 한숨도 쉬고 미소도 지으며 다시 일어날 힘을 얻었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이웃들은 함께 어려움을 극복하는 경험을 공유하며 결속했다. 나만을 대상으로 별거 사실을 알린 건 아니었지만, 나를 포함한 그룹에 그 사실을 알려주었다는 사실에 아직도 겉도는 외국인인 나는 염치없이 감동을 받아 버렸고, 선을 넘지 않으며 그녀와 아이들을 살피는 이웃들과 나란히 했던 경험은 나도 아픈 일이 생기면 이들을 다소 의지해도 괜찮겠다는 믿음을 가지게 해 주었다. 


여전히 구식인 나는 별거가 재결합과 같은 반전으로 결말 맺어지기를 희망했지만 그들은 차근차근 이혼을 준비하고 있다. 

결국 이혼으로 결말을 맺더라도 광대뼈 언저리에 주근깨가 참 매력적인 그녀는 관계의 소멸에도 행복을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고, 키가 큰 덴마크의 이웃들은 그녀가 그어 놓은 선을 유지해 가며 온기를 전할 것이다. 

행복지수 2등의 열쇠는 아픔이 없는 세상이 아닌, 아픔 그 다음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작은책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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