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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yaMya Jan 19. 2021

John dillermand. 존 고추씨


John dillermand 라니..

이토록 외설스러운 제목의 글을 쓰게 될 줄은 몰랐다. 

고추씨라고 해야 할까? 음경씨라고 해야 할까? 

팔, 다리, 머리를 부르듯 음경, 음순도 자연스럽게 호명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그렇지 못하다. 이제 나이도 많고, 지금은 21세기이고, 나는 덴마크에 살고 있는데도 성과 관련된 단어들 앞에서는 여전히 불편하고 어색하고 부정적인 기분까지 든다. 구식이다.


나는 구식이지만 내가 살고 있는 덴마크가 성을 대하는 태도는 무척이나 진취적이다. 

얼마 전 한국 국회를 달구었던 '아기는 어떻게 태어날까'라는 책도 덴마크 작가의 책이다. '아기는 어떻게 태어날까'는 덴마크에서는 덴마크 역사를 대표하는 100개의 물건 중 하나로 선정될 만큼 국민적 호응을 얻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김병욱 미래 통합당 의원에 의해 조기 성애화, 동성애·동성혼을 조장하는 책으로 단정되면서 급기야 책을 회수해야 한다는 국민 청원이 등장했고, 결국은 여가부가 초등학교에서 회수해야만 했던 바로 그 책이다. 아무리 내가 구식이라고 하지만 김병욱 의원의 주장과 국민 청원에는 하나도 동의할 수 없었다. 

성을 성으로 보여주는 것이 조기 성애화, 동성애, 동성혼을 조장하는 것이라는 주장은 아이들에게 성을 가르치지 않겠다는 무책임한 태도이거나, 자연스럽고 유쾌한 성과 외설을 구분하지 못하는 무지 그중 하나일 뿐이다. 

내가 성에 자유롭지 못한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아이는 나를 뛰어넘어 자신의 신체를 사랑하고, 수용하고, 타인의 신체를 존중하고, 성을 소중하게 즐기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하여 나는 '아기는 어떻게 태어날까'와 같은 책들의 존재에 감사한다.  


하지만 나의 진취 역시 딱 50년 전 '아기는 어떻게 태어날까'를 발표한 덴마크에 머물 뿐 오늘의 덴마크에는 역부족이다. 

덴마크 국영 방송인 DR의 RAMASJANG이라는 어린이 채널은 2021년 새해를 맞아 4-8세 아동을 대상으로 John Dillermand이라는 새로운 애니메이션을 방영하고 있다. John Dillermand는 우리말로 '존 고추씨'로 번역될 수 있겠다. 존 고추씨는 놀랍게 긴 고추를 가진 성인 남성이다. 성인이지만, 어린이와 같이 천진하고 어린이들도 하지 않을 듯한 실수를 하는 사고뭉치이다. 그가 사고를 치는 데는 그의 긴 고추가 한몫을 하는데, 그의 고추는 마치 독립적인 등장인물인 듯 존 고추씨의 의지와 상관없이 길어져 옆집 아저씨 머리 위로 사과를 떨어지게 하거나, 신호등 위로 아이스크림을 던져 신호등이 고장 나게 하기도 하지만, 존 고추씨가 실수를 인지하고 실수를 바로 잡으려고 할 때는 좋은 조력자가 되어 고장난 신호등 때문에 위험에 처한 시민을 돕고, 아이들이 놓친 풍선을 잡아주기도 한다. 어른의 언어로 표현하니 어딘지 더 음란한 느낌이지만, 애니메이션은 실제 귀엽고 천진하게 표현되었고, 연출되는 상황들 역시 익살스럽다. 

진취적인 덴마크에서도 John Dillermand은 방송 전부터 크게 화제가 되었다. 

'이러려고 수신료 내는 것이 아니다, '내 아이에게 이런 방송을 보게 할 생각은 없다. DR은 도대체 생각이 있느냐'와 같은 개인적인 의견부터, 작년 하반기 덴마크를 달구었던 ME TOO 운동과 애니메이션을 연결 지으며 남성의 성기가 남성의 이성을 벗어나 자발적으로 행동한 다는 발상은 성범죄자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발상이라는 의견, 남성의 긴 성기가 등장했다면 여성의 큰 성기도 함께 등장해서 균형을 맞추어야 한'다는 등의 공적 입장들도 있었다. 반면, '고추라는 이름만으로도 즐거워하는 아이들에게 딱 맞는 만화이다, 자신의 신체를 궁금해하는 연령의 아이들에게 신체를 즐겁게 표현한 것은 신선한 시도이다, 아이들과 함께 시청할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와 같은 긍정적인 의견들도 있었다. 


실제로 프로그램이 방영된 1월 2일 이후 애니메이션은 국제적인 뉴스가 될 만큼 뜨거운 반응을 일으켰다.

CNN, THE GUARDIAN, THE INDEPENDENT  등의 외신은 하나 같이 BIZAR라는 표현을 쓰며 덴마크 국영 방송을 비난했고, 덴마크 국내에서도 유아들의 성교육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는 곱지 않은 시선의 평가와, 실제 만화를 시청하는 어린이들이 '너무 즐거워한다. 자신의 실수를 스스로 바로잡는 태도가 교훈적이다. 아이들이라면 모두 할 수 있는 실수를 보여주기 때문에 아이들이 공감할 수 있다'와 같이 긍정적인 의견들이 충돌했다. 


코로나로 암울한 유럽의 2021년에 소란을 일으킨 만화를 우리도 한번 보기로 했다.

얼굴까지 붉혀가며 아이에게 사전 설명을 하고 같이 앉아 애니메이션 한편을 보았다. 이미 열 살인 딸아이는 '존 고추씨'에 대해 아무런 흥미를 보이지 않았지만 눈살을 찌푸리지도 않았다. 조금 웃기긴 하지만 애기들이 보는 거라 재미는 없다고 했을 뿐이다. 


내 아이는 4살도 아니고, 존 고추씨에게는 관심도 없다고 하니, 사실 나와는 상관이 없는, 속을 알 수 없는 덴마크의 선을 넘는 실험이라는 정도로 넘겨버릴 수도 있었지만, 내 마음의 불편함의 정체가 궁금했다. 


무엇이 내 마음을 불편하게 할까?

마법의 고추를 달고 다니는 사람이 성인이기 때문에?

마법의 팔, 다리, 아니 엉덩이까지는 괜찮았지만 고추이기 때문에?

아무리 알록 달록한 크리스마스 캔디의 색이라지만 누군가의 고추를 똑바로 보는 게 어색해서?


애니메이션 제작 과정에 참여한 소아정신과 의사인 마그리트 브룬 핸슨은 나와 같은 불편을 호소하는 시청자에게 다음과 같이 프로그램의 취지를 설명한다.


"어른의 안경을 통해서가 아닌 어린이의 관점에서 존 고추씨를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 마법의 음경을 보고 눈살을 찌푸리는 것은 성인인 우리들의 삶과 경험 때문일 뿐 아이들은 전혀 그렇게 반응하지 않는다. 어린아이들은 발가벗고, 자신의 신체를 탐색하고 들여다보는 것을 즐긴다. 아이들은 의사 놀이를 하고, 서로의 몸을 들여다보며 못된 말들을 하는 것을 재밌어하고 방귀, 고추 같은 말을 하며 크게 웃는다. 존 고추씨는 바로 이러한 세상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내 개인적인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아이들은 존 고추씨를 통해 배우기도 하고 웃기도 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하지만 부모들의 반응은 아이들에게 영향을 줄 텐데, 얼마나 많은 부모들이 존 고추씨를 재미있다고 생각할지 의문이다." 

https://www.dr.dk/om-dr/nyheder/ny-animationsserie-til-ramasjang-udspringer-af-boerns-nysgerrighed

 

아이의 눈으로 봐달라고는 하지만, 내 비록 깔깔거리는 아이가 귀여워 하루에도 몇 번씩  '방귀 뽕뽕, 똥 뿌지직, 오줌 똑똑' 같은 소리를 해 본 경험이 없다고는 할 수 없는, 알만한 건 아는 사람이지만, 그렇다고 또 제 마음대로 늘어나 사고 치는 마법의 고추 같은 건 상상도 못 해봤다. 


며칠을 두고 고민했지만 나는 아직 '존 고추씨'를 받아들일 수 없다. 아이들이 깔깔거리고 웃을 만한 소재라는 것에도 동의하고, 천방지축 고추의 실수를 수습하는 존을 통해, 실수를 두려워하기보다, 실수를 통해 학습하는 태도를 배울 수도 있으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아도, 거북하다. 

나는 음경은 타인과 아무렇게나 공유할 수 있는 신체의 일부가 아닐 뿐 아니라, 희화될 수 있는 소재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구식이다. 4살 아이들에게는 즐겁고 재미난 음경은 나에게는 경계 너머의 것이다. 


또 50년이 지나면 존 고추씨는 고전이 되고, 신체의 모든 요소를 자유롭게 표현하는 것이 하나도 어색할 것이 없는 세상이 도래해 오늘의 뜨거운 논쟁들은 모두 잊힐지도 모르겠다. 

맞거나 틀린 것은 역시 시대와 장소를 넘어 절대적일 수는 없는 것인 모양이다. 내가 아무리 잘난 척을 해도 시대를 앞서지도, 내가 살아온 곳, 사는 곳을 넘어설 수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시대를 타고, 내가 사는 곳을 누리며, 달라지는 세상을 따라 달라지기에 열심을 다할 것이다. 

아직 달라지기에 뒤쳐진 나는 존 고추씨를 응원하지는 못하지만

존 고추씨가 노출증 환자나 소아성애자를 그렸다고는 하지 않을 것이고, 존 고추씨를 즐기는 아이들을 걱정하지 않을 것이고, 존 고추씨 방영을 중단하라고 청원하지도 않을 것이다. 



오마이뉴스 기사 참고: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671072


John Dillermand INTRO

https://youtu.be/_3sGocnMP3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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