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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작용 Jan 25. 2020

최상급 대 가성비

혹은 육만오천원 대 삼천원, 2019년 12월 20일, 군산 

수복에서 술을 마셨다.


문을 여니 반가운 얼굴이 보인다. 자리에 앉으며

“저 오늘 술 안 땡기는 데-” 하니 사장이 웃는다.


안주로 무얼 먹을까, 고르고 있으려니 댄디한 할배 넷이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바 의자는 딱 6개. 가게가 좁아 딱히 앉을 자리가 마땅찮았는지, 여섯의 인간이 따닥따닥 어깨를 붙여 앉게 되었다.      



우리는 석화를 주문했다.      


아직은 어른의 음식처럼 여겨지는 굴. 레몬을 뿌려 편으로 썬 마늘과 함께 넘기면 이제는 제법 굴이 향긋하다는 것을 안다. 맥주와 먹기에는 비릿하지만 담담한 청주에 먹기는 좋다. 맛있다며 호들갑을 떨었더니, 어깨를 부딪던 할배 하나가 우리를 따라 석화를 주문했다. 그리고 답례인지 먹던 술을 한 잔 따라주었다. 우리는 잔으로 삼천원 하는 술을 마시는 데 그 할배들은 한 병에 육만오천원하는 술을 마신다. ‘감사합니다-’ 하고 얻어마셨다. 맛있는 공짜 술. 그리고 소개를 하는 할배들. 고대 교수, 연대 교수란다.     


아- 슬쩍, 세상 살기가 싫어졌다.     

그런데 거기서 이야기를 하다 보니 미술사 교수님이시고, 나를 가르쳤던 선생과도 다 알고 지낸다고 했다. (안 반갑다) "이쪽 계열에서 계속 일하고 싶으면 석사를 해야지" 하면서 영업을 한다. (조금 슬퍼졌다) ‘석사 따위 무슨 필요야-’라고 생각하는 내 친구가, “가면 뭘 가르쳐주는데요.” 라고 도전하자, “클래스가 달라지지.”라고 말 한 후, 뒷 말을 아낀다. (살짝, 기분이 나아진 듯 하다)     


그리고 나는 할배가 따라주는 술을 마시며 진탕 취해버렸다.     


'공부, 공부야 더 하고 싶지. 그냥 공부만 하고 살고 싶지. 

세상에서 책 읽고 노는 게 제일 좋다. 그런데, 그렇게 안 되던데, 어렵던데, 난 해야 할 것이 많으니까. 

저 할배는 어떤 삶이었을까. 나 같은 기분을 느껴본 적이 있었을까? 

노력해도 인정받지 못하고,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부정당해본 그 기분을 알까?'


할배가 묻는다.      

“군산에서 제일 비싸고 제일 맛있는 횟집이 어디예요?”     


나와 친구가 대답한다. 

“글쎄요, 거기서 거기기도 하고. 제일 맛있는 곳이라.”

“어딜 가든 평균은 해요.”     


할배가 굳힌다.      

“최고로 맛있는 곳이어야 해요.”     


내가 묻는다.      

“꼭 그래야 할 필요가 있나요?”     


할배가 답한다.      

“어딜가든, 최상급을 맛보아야 하니까.”     


나는 웃는다.      

“다르네요. 저는 어딜가든 가성비, 가격 대비 성능이죠”     


할배는 말이 없다.      


아, 할배는 말이 없다. 이겼다-라는 기분이 든다.    


최상급을 쫓을 수 있는 삶은 어떤 삶일까? 그것은 정말 즐거울까? 아니면 미치도록 지루한 삶일까?      


그런데 오늘은, 아- 우습게도, 내가 이겼다. 

최상급인 삶이 가성비인 나를 부러워하는 것 같아서. 

가성비인 삶이 최상급인 그의 삶을 지루하다고 생각해 버렸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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