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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작용 Feb 01. 2020

나는 충동적인 인간이다.

1월 29일. 군산에서. 하루를 시작하며. 

충동은 부정적인 단어다. 그것은 성숙하지 못하다는 이야기고 인생을 책임지지 않는 태도를 일컫기 위한 말이다. ‘충동적인 인간’이란 깊은 생각 없이 즉흥적으로 행동을 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로 느껴진다. 

 

나는 충동적인 인간이다.       


이십여 일의 짧은 대구 여행을 마치고, ‘나는 대구에서 살고 싶다’라는 막연한 충동에 휩싸였다. 여행은 충동적일 수 있다. 내가 해왔던 여행의 방식. 책 몇 권 가방에 쑤셔 넣고 마음 가는 대로 떠났던 그 여행들에서 나는 꽤나 충동적이었다. 그날 묶을 곳을 해가 지고 나서야 찾았고, 아침의 목적지를 전날 밤까지 결정하지 않았다. 게스트 하우스에서 처음 만난 친구들을 따라 여행 경로를 변경하는 일에도 겁이 없었다. 자본주의가 전 세계 어디에서도 통하는 가장 기본적인 규칙인 세상에서, 나는 지갑이 만들어 준 얄팍한 자유를 즐겼다. 그런데 삶에서도 충동은 통하는 걸까?     


애초에 나는 왜 대구로 가려하는가. 처음에는 손에 잡힐 듯 분명한 이유가 있었던 것 같은데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점점 더 알 수가 없다. 흐려진 기억을 되짚어 이유를 찾는다. 나의 많은 여행에서 나는 도착하기 위한 여행이 아닌 떠나기 위한 여행을 했었다. 여행의 본질에는 떠나는 것에 있다. 아니, 도망치는 것에 있다. 주거지를 옮기는 것 역시 긴 여행의 한 형태이니, 이 여행은 떠나는 것에 목적이 있다.      


이곳이 아니면 어디라도.   -보들레르     


그러나 나는 군산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아침 집을 나오며 보이는 강변의 산책로를 보며 이곳의 아름다움에 대해 생각했다. 꽃이 휘날리는 봄이 주는 거리의 아름다움, 맥주 한 캔을 쥐고 걷는 선선한 여름밤의 산책에 대해 생각했다. 가슴 가득 애틋하게 사랑하는 친구들과 골목골목 숨겨진 작은 단골집에 대해 떠올렸다. 그러나 나는 떠날 수 있고, 떠나고 싶다. 익숙하고 오래된 것이 주는 편안함이 무척이나 안락하지만, 새로운 곳에서 만나게 될 신선함은 얼마나 짜릿하게 다가올까.    

  

“새로운 건 한 때고 금방 익숙해질 거야.”

친구 J가 말했다. 그는 내가 군산을 떠나는 것을 아쉬워하고 막으려 하는 사람이다. J는 내가 떠나고 싶은 이유를 나의 우울증에서 찾는다. (절반은 맞는 이야기다) 그는 어디를 가든 곧 별다를 것 없이 살게 될 터이니, 그저 아무 곳에나 생활기반을 잡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서울이라면 몰라도.” 

“난 서울은 싫어. 10년 있었잖아. 서울은 질릴 만큼 질렸어. 

너무 복잡하고, 사람이 많아. 공기는 숨 막히고.”

“서울을 살려고 가간, 돈 벌려고 가는 거지.”

“서울은 싫어.”

“차라리, 전주나 익산은 어때?”      

나의 선택을 그는 바보같다고 생각한다. 그는 내가 군산에서 이룬 것이 아깝다고 생각하고 앞으로 나와 함께 하고 싶은 일이 많다. 


“대전도 괜찮지 않아? 대전도 생각보다 매력적인 도시야.”

대전이 고향인 노랑이 말했다. 그는 오래전에 나의 이 방랑벽을 경험한 적이 있었다. 지금보다 얽매인 것이 적었던 젊은 시절. 떠날 이유가 주어졌던 그날 밤 나는, “나 나갈 거야!”라고 선언한 후 짐을 쌌다. “그게 다 외로워서 그래.” 그가 말한다. 그럴지도 모른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고 보니 내가 대구로 가는 이유도 사람 때문이다. 대구에서 만났던 새로운 관계들에 나는 자극받았다.


“사람, 좋지. 그런데 사람이 좋은 것도 여행이니까 그런거야.”

C가 말했다. 여행지에서 맺는 관계는 가볍고 단선적이다. 명백히 보이는 단점도 여행지에서는 별 다른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곳을 곧 떠나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나 역시 사람들의 눈에서 조금은 자유롭다. 나 역시 알고 있다. 달콤했던 관계는 내가 그곳의 일원이 되는 동시에 날카로운 칼이 되어 나를 상처 입히고 말 것이란 걸.      


문제는 내가 고민한다는 것에 있다. 나는 여전히 충동적인 인간이나, 충동으로 벌어질 결과는 두렵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결과 속에 어떤 파국이 숨어있을지 나는 불안했다. 결정하지 못한 채, 사람들에게 묻고 망설이는 하루. 결정했다가, 다시 결정을 뒤집는 갈팡질팡한 마음에 괴로운 하루. 아마도 숙고해보라는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는 이유는 내가 원하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언니, 언니가 거기로 갔던 게, 34살이었지?     

H에게 물었다. 대학의 지인인 H는 34살에 제주도로 거처를 옮겼다. 정말 아무것도 없는 상태로 용감하게 제주도로 뛰어들었다.


“벌써 그리 됐나.”

“어때, 34살에 사는 곳을 옮기는 것은 추천할 만한 일이야? “

“뭐 그냥, 어딜 가든 그렇지 뭐. 충동적인 인간이라고 해도, 그게 너의 삶의 방식이니까.” 

“어떤 걸 선택해야 하는지, 내가 뭘 원하는지 모르겠어. 언니.” 

“어떤 선택이 옳은지는 지금 어떻게 알겠어.” 언니가 말했다. 

“네가 얼마나 노력하느냐에 따라서 이 선택은 옳은 선택이 될 수도 있고, 

옳지 않은 선택이 될 수도 있겠지. “     


“근데 너는 어디 가든 잘할 거야.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언니의 말에 울컥 눈물이 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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